악처는 아무나 하나!

by 김은진

내가 악처라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악처가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잔소리 때문이란다. 예전에는 안그랬다고 했다. 뭐든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해주었는데 이제는 못한다 못한다는 아니지만 칭찬 비스무리한 것은 아예 없다고 했다. 휴대폰 챙겼냐? 왜 이렇게 빨리 걷냐? 운전할 때 딴 짓 하지 마라. 신호를 지켜라. 밥 먹을 때는 신문 보지 마라. 멋진 남자에서 어린 아이가 된 듯 하다고도 했다. 물론 현모양처는 아니었지만 미소는 사라지고 악처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하니 도대체 뭘 보고 크산티페 취급하냐고 따져물었다.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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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악처는 크산티페(Xanthippe)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이름 자체가 크산티페이다. 그래서 악처하면 언제나 1등 자리를 차지한다. 소크라테스는 매일 밖으로 쏘다니며 길거리의 아테네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답을 찾아내도록 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테네 시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돌아다닌 소크라테스는 옷 한 벌로 잘 씻지도 않으며 1년을 버티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남편, 생각만 해도 괴롭다. 하루는 아내가 소리소리 지르며 소크라테스 머리 위에 구정물을 쏟아 붓기 까지 했다.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창피할 만도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화도 내지 않고 '천둥 뒤에는 소나기가 쏟아지는 법'이라며 미소지었다. 한 제자가 결혼에 대하여 묻자, "결혼하라,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하고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되겠지"라고 답했다. 밖으로만 쏘다니는 남편 누가 좋아할까? 거기다 잔소리를 하는데도 무반응이면 답답해서 미칠 노릇일 것이다. 크산티페는 철학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질문해주고 응대해주는 남편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톨스토이는 34살이 되던 해 18살의 소피아와 결혼한다. 이 기간 동안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리나> 등의 명작을 집필했다. 그는 사회운동에도 헌신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는 하였지만 정작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소피아는 13명의 아이를 유모도 없이 혼자 키워냈다. 톨스토이가 모성으로 길러야 한다는 명분으로 유모를 들이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자녀양육과 가사일 뿐 아니라 남편의 일도 도왔다. 톨스토이의 악필은 유명하여 아무도 알아 볼 수 없었다. 아내는 그의 초고를 옮겨 적는 일을 했다. 물론 그는 돈도 많이 벌었고 사람들에게 성자로 불릴 만큼 추앙 받았다.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남편에게 소피아는 늘 잔소리를 하였다. 남편이 자신의 재산과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하자 소피아는 분노하여 크게 다투게 되었다. 이를 견디다 못한 톨스토이는 82세에 가출하였다. 한 시골역에서 객사하였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아내 소피아 때문이라고 하며 악처라고 부른다. 아내의 가사일과 육아일 그리고 숨은 노력은 아무 것도 아니냐고?


26세 때 모차르트는 19살의 소프라노 가수 콘스탄체와 결혼했다.그녀가 악처로 불리는 이유는 심한 낭비벽 때문이다. 모차르트 아버지가 결혼을 극구 반대한 이유이다. 천재 아들을 내조할 조신하고 알뜰한 여자를 원했다. 결혼 후 그 유명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가 성공하여 돈도 많이 벌고 음악가로서의 명성도 얻었지만 사치와 낭비가 심해 항상 빚에 쪼달리며 살았다. 특히 콘스탄체가 몸이 좋지 않아 고급 온천 여행을 자주 다녔다. 또한 그녀에게는 바람기도 있었는데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경박한 말과 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이런 면이 뭇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모차르트 역시 항상 밝고 농담을 좋아한 터라 콘스탄체의 그런 면에 끌렸던 것이다. 콘스탄체가 악처에서 벗어나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이 위대한 모차르트의 유골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장례식 날 비바람이 세차게 쳐서 병석에 있던 콘스탄체는 참석하지 못했고 묘 살 돈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합장됐는데 지인들 조차 그 자리에 없었다. 사실 둘은 사이가 좋아 9년 동안 함께 살면서 6명의 아이를 낳았고 모차르트는 아내에 대한 애정 넘치는 편지를 많이 남겼다. 어쩌면 둘은 좋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의 이른 죽음의 이유를 아내에게서 찾으려 한 것은 아닐까?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아내 메리 토드 역시 사치와 잔소리로 악처의 반열에 올랐다. 사실 링컨은 메리가 임신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서 '지옥문이 열렸네'라며 하나도 기뻐하지 않았다. 링컨은 변호사 시절 다른 지역 법정을 순회하며 사건을 맡곤 했다. 그런데 다른 변호사들은 주말마다 집이 있는 스프링필드로 돌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지만 링컨은 값싼 여관에서 지냈다. 메리의 잔소리를 견딜 수 없어서였다. 메리는 워낙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돈 씀씀이가 헤픈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옷과 장신구를 비롯해 몸 치장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영부인으로서 품위 유지를 위해 항상 우아하고 멋지게 옷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전쟁 중에도 한 달 동안 85켤레의 장갑을 구입했다. 남편이 암살당해 장례를 치를 때도 자신이 입을 고급 상복에 신경 썼다. 그녀는 성질도 몹시 급했다. 링컨이 중요한 사람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조차 자신이 부탁한 것을 당장 들어주지 않았다고 화를 내며 소리를 질러댔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링컨은 자신이 선택한 아내와 끝까지 함께하며 아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맞춰 살았다. 이 또한 훌륭하지 아니한가.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아내 몰리 바젤리도 악처로 꼽힌다. 영국 성공회 신부였던 웨슬리는 47세 때 런던의 어느 다리에서 심각하게 다리뼈 골절상을 입었다. 이 때 지나가던 몰리가 그를 돌보고 극진히 간호하였다. 웨슬리는 너무나 가난했고 몰리는 사업가로 아이가 4명 있는 싱글맘이었다. 둘은 곧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4년 후 웨슬리는 동생 찰스에게 "사랑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속마음은 겉으로 들어나는 법. 몰리는 남편에게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지 말것, 외출할 때 상세히 보고할 것 등을 요구했고 웨슬리의 돈을 몰래 가져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에게 온 서류나 편지를 먼저 뜯어보고 남에게 함부로 공개하였다. 남편을 중상 모략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손바닥에 남편을 올려놓고 쥐락펴락했다. 한번은 사람들 앞에서 웨슬리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기도 했다. 사람들은 웨슬리 목사를 매우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결국 감리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아내 덕분에(?) 다른 것에 관심 두지 않고 기도에 매진하여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웨슬리 목사가 힘들때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공하니 그 때 그 일을 잊은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어진다.


대부분 알려진 악처 이야기를 간략하게 풀어보았다. 소크라테스, 톨스토이, 모차르트, 링컨, 웨슬리까지 그들 옆을 지켰던 아내들이 과연 악처이기만 했을까? 남편이 성공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악처는 필수조건이 아닌가 싶다. 훌륭한 사람 옆에 악처 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식사를 하며 악처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당신의 성공을 위해 나는 악처가 되리라"고 선언했다. 남편은 훌륭한 사람이 될 자신이 없으니 악처 되는 것은 포기하란다. 나의 종알거림은 애정의 소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렇게 나는 악처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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