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대면
그림 : 윌리엄 호가스
분류 : 그림으로 읽는 막장 소설
제목 : 결혼 세태(Marriage a-la-Mode) (총 6화)
배경 : 18세기 런던
등장인물 : 스퀀더필드 자작, 스퀀더필드 자작 부인, 집사, 스위스 하인 등
2화 : 대면(The Tete-a-Tete)
정략결혼을 한 스퀀더필드 자작과 헤로디아는 이번 생은 포기하고 각자의 삶을 즐기기로 결심한다. 헤로디아는 부자 아버지를 둔 덕분에 하루아침에 자작부인이 되었다. 자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하루하루가 지루할 틈이 없다. 방금 전에도 시끌벅적 한바탕 파티가 끝났다. 자작부인은 사람들과 카드 게임을 늦게까지 한 뒤였다. 탁자 밑에 카드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미처 치우지 못했다.
자작부인은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노는 것도 피곤한 모양이다. 우아한 귀부인의 자태와는 거리가 멀다. 결혼 전에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그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 씩 올라간 입꼬리에서 금방이라도 웃음이 새어 나올 것만 같다. 남편이 아닌 어딘가를 실눈으로 슬며시 보며 '오늘은 왜 이리 일찍 들어왔데'라고 생각한다.
시계는 자정이 넘은 1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자작은 부인에게 "부인도 위스트 게임할 줄 아십니까?"라고 묻는다.
부인은 "이거 안 하면 사교 모임에 껴주질 않으니 배워가며 하고 있어요."이라며 별 걸 다 묻는다 생각한다. 자작은 부인 발밑에 떨어져 있는 책 <Hoyle on Whist> 표지를 흘깃 보며 '두뇌 싸움이 엄청난 게임인데 할 줄 안다고?'라며 무시하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위스트 게임에 대한 규칙을 적어 놓은 책이다. 이 게임에 한번 맛을 들여놓으면 밤을 새우는 것이 다반사이다. 저렇게 찌뿌둥해하며 기지개 켜는 꼴을 보니 게임에 한창 빠져든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자작이 따져 물을 처지도 아니다.
자작은 여기저기 사창가를 돌아다니느라 외박을 하고 아침에 귀가하기 일쑤다. 오늘따라 외출에서 일찍 돌아와 모자도 벗지 않고 의자에 축 늘어지게 앉은 것이다. 옷매무새도 흐트러지고 얼굴빛도 병색이 완연하다. 결혼 전에 자신만만한 모습이 전혀 없다.
자작은 '요즘 왜 이러지?' 라며 좀 전에 만났던 매춘부를 생각한다. '그래 내 문제가 아니라 그 여자가 매력이 없어서야.'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방금 전 발기부전으로 관계하지 못한 것이 신경 쓰인다. 자작부인은 남편의 발 밑에 널브러져 있는 칼을 보며, "어머 여보, 칼 끝이 부러졌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라며 호들갑을 떤다. 자작은 마치 자신의 발기부전을 들킨 것 같아 더 의기소침해진다. 그러고 보니 자작의 목에 검은 점이 더 커진 듯하다.
그 사이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 주인이 반가워 다가온 강아지가 킁킁 대며 냄새를 맡는다. 자작의 상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여자 모자에서 달콤한 냄새를 맡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댄다.
집사는 집안 재정에는 관심도 없는 자작 부부에게 질렸다는 듯 '오 하나님, 이 집안을 어찌하오리까' 라며 눈을 치켜뜨고 있다. 집사의 손에는 지불해야 할 청구서 더미가 한가득이다. 꼬챙이에 꽂혀 있는 청구서는 달랑 하나인 거 보면 겨우 한 장의 청구서만 지불 완료된 모양이다. 자작에게 회계장부를 보여 주려고 겨드랑이에 끼고 왔지만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작의 상태를 보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집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Regeneration이라는 책자를 항상 주머니에 들고 다닐 정도로 감리교 독실한 신자이다. 자작 부부의 사치와 방탕함에 진절머리가 나 있다.
벽난로 위에 놓여 있는 정체불명의 조각상과 부처상들과 작은 유리병들이 조잡하게 늘어져 있는 것이 고상한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로마시대의 조각상은 코가 부러져서 접착제로 붙여 놓았다. 마치 스퀀더필드 자작의 발기부전을 대놓고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뒤의 그림 속 큐피드는 무너진 고대 건물에 앉아서 고장 난 백 파이프를 연주하고 있다. 정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집안이다. 벽난로 옆에 프랑스 로코코 스타일의 벽시계가 있고 그 밑에는 중국 부처상이 자리하고 있는 등 '우리 집안은 엉망이야'를 여기저기서 나타내고 있다.
벽에는 자작 부부가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고자 성자들의 그림을 걸어 놓기는 했다. 일말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일까? 그런데 커튼으로 가려진 곳의 그림 속에 맨발이 침대 위에 올려져 있다. 비너스의 누드 그림일까? 부부의 은밀하고 대담한 방탕함은 어쩔 수 없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스위스 하인은 자작부인이 방금 어떤 남자와 요란하게 키스하며 애정행각 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남자가 자작이 나타나는 바람에 갑자기 달아나느라 의자를 확 쓰러트리면서 악기와 악보 등도 널브러졌다. 미처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어딘가에 숨어 있는 듯한데 하인은 자작이 눈치챌까 봐 안절부절이다. 자작부인은 이런 상황이 스릴 넘치고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