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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도 발동하는 눈물 버튼

오늘 생각 8

by 은진

제목을 쓰고 나니,

'오늘 생각' 시리즈를 한데 모아 퍼즐 맞추듯 조각조각 끼워 맞춰 보면 '정말 이상한 나'가 결과물로 나오는 거 아닌가 하고 멈칫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꾸 요상한 모습만 부각되면 안 되는데 이다.




오늘의 나는 '감수성이 희한하게(?) 풍부한 나'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속상한 상황을 제외하고도 나는 잘 운다.

책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도는 일은 너무도 흔해 가족들도 놀라지 않는다. 감정이 조금 격해지면 책을 덮고 엎어져 펑펑 울기도 한다.


슬퍼도 울고 감동을 받아도 울고, 무언가 웅장한 것을 보아도 그에 압도되어 눈물을 흘린다.

심지어 어릴 적 어느 날에는 부모님과 담소를 나누던 중, '아! 우리 가족이 이렇게 행복하구나'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감정 이입이 너무나 잘 되는 스스로를 알기에, 드라마를 보더라도 결말이 좋지 않거나, 생활의 고단함이 적나라하게 묻어나는 내용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한다. 재밌게 보다가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질라 치면, 서둘러 결말부터 찾아본다. 주인공이 죽는다고 해서 단박에 정주행을 멈췄던 적도 있다. 진짜 이런다고?!... 몇 날 며칠을 속상해했다.


50이 다 되어가는 이 나이에, 아직도 중학교 때 보았던 드라마 속 한 장면이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기억의 조작이 좀 있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여자주인공이 일본군 장교인가에 접근해 유혹한다. 잠깐 등장했던 상대 남자는 여자에게 곁을 주지 않는 철벽남이었으나 이내 진심으로 여자에게 빠지고 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예정된 수순대로 배신을 당한다. 통쾌하다. 그러나 속이 후련하기만 해야 할 이 장면에서 나는 남자의 눈빛을 보고야 말았다.


처음으로 마음을 준 여자에게 배신당한(그냥 한 사람의 남자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다) 남자의 상처받은 표정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끔 생각이 난다. (착하게 살자.)


배우의 연기가 좋았던 건지, 그 나이 또래의 넘치는 감수성 탓에 상황이 잘 못 해석된 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드라마 속 (시원하면서도 요상하게) 슬픈 장면 중 하나로 기억에 남겨져 있다. 정작 그 드라마 속 화제의 장면들은 따로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를 낳고는 '아이', '마음', '부모님'이라는 단어가 주로 눈물 버튼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부모가 되어 보고서야 그때는 몰랐던 부모님의 심정을 짐작이나마 하게 되었다. 얼마 전 식사자리에서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하시며 '부모란 그런 거야...'라고 하시던 아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태도를 지적하며 아이에게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란 말을 할 적에도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어땠던가,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지금의 나는 또 어떠한가.

'당연한 것이라고는 없는 세상의 이치도, 백에 아흔아홉은 같은 부모의 마음도 나는 입으로만 헤아리고 있는 것 같아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요즘 즐겨 보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세상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매 회차마다 재능에 노력을 더해 최선을 다하는 무대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매주 빼먹지 않고 챙겨 보고 있다.

잠은 자야겠고, 노래도 들어야겠고 해서 듣다가 잠들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휴대폰을 옆에 두고 눈을 감았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떴을 때는 등 뒤에서 한 심사위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다시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빼려는데,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의 떨림이 정신을 탁 하니 잡아다.


'부모의 심정', '부모의 마음'이었나... 하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자, 자다 깨서 앞 뒤 상황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울음기 묻어나는 그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길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아이의 마음도, 부모의 마음도, 말하는 이의 마음도 어쩐지 다 알 것 같았기에 순식간에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아이', '마음', '부모'.

이런... 이제는 자다가도 버튼이 눌리는구나...



아침에 일어나 그 부분을 다시 돌려보았다.

역시 부르는 이의 서사가 묻어나는 노래는 더 큰 감동을 준다.

부르는 이의 어릴 적 이야기, 선곡의 이유에 심사위원은 한 사람의 부모로서 감상평을 내놓았다. 자다가 말고 눈물을 흘려버리게 한 것은, 그렇게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를 울먹이게 했던 그런 장면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를 묵혀둘 수는 없지.

<<엄마가 어제 ***를 틀어 놓고 자다가 깼거든, 근데.....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야.'

근데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거든, 너도 한 번 들어봐. 혼자 보았던 장면을 다시 재생한다.

어때? 눈물 날 것 같지? 엄마 마음 알겠지?>>


알긴... 개뿔...?! 너는 그 나이에 알았을까 보냐.

그래, 너는 몰라도 된다. 나도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으니.


때 되면 다 알게 된다. 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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