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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의 사라진 일곱 시간: 잠은 밤에 자는 겁니다

오늘 생각 7

by 은진

현재 시각 21시 32분.

아직 뇌가 깨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느낌인데 몇 시간 뒤면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 하다니 기가 차 헛웃음이 난다.


밤 잠을 설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설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날은 눈을 감고 있어도 정신이 점점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


밤을 새우고도 그럭저럭 지낼만한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잠이 부족하면 대번에 어지럼증이 심해진다.


오늘은 꼭 일찍 자야지 매일 다짐하는데도, 잠은 꼭 초저녁 무렵에만 잠시 찾아왔다가 달아나버리는 거다. 습관이 참 무섭다.


잠이 오는 타이밍에 그냥 누워버릴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아들의 드림렌즈를 담당하고 있는지라 그럴 수도 없다. 초저녁 잠을 못 이겨 잠깐 졸다가 깨면 그날은 밤샘 예약이다.

렌즈를 끼워주고 잘 준비를 마치고 나면 마치 제2의 아침이 밝아오는 듯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며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 나도 모르게 머릿속이 주해진다.

책을 좀 읽을까? 뭘 먼저 읽을까?

오늘 무슨 드라마가 있었더라??

아니면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 뜨개질을 좀 해볼까?

이러니 잠이 달아날 수밖에.


혼자 쓰는 새벽 시간은 유난히 빠르게 흐르는 듯 아깝기까지 하다.


자라고, 자!




어젯밤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늦게 잠들기도 했지만 중간에 깨버려서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아이의 패딩 점퍼를 하나 더 장만해야겠다 마음이 급해져 옆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럴 때 시간은 날개를 단다.


알람에 맞춰 아이를 깨우고 렌즈를 빼줬다.

김치볶음밥을 먹겠다고 해서 참치를 넣은 김치볶음밥을 만든다. 만드는 김에 조금 넉넉히, 내 몫도 함께 준비한다.


거의 매일 이용하다시피 했던 단골 샐러드가게가 폐업을 했다.

대체할만한 것을 찾아 이것저것 먹어보았지만 딱 맞는 조합을 만나지 못했다.

찬 물에 샐러드 채소 씻는 일은 내키지 않으니 그냥 아이가 먹는 것을 함께 먹어보기로 한다.

게으른 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아침부터 밥이 들어가나 싶었는데, 웬걸... 술술 잘만 들어간다. 오히려 식욕이 샘솟는다.

이놈의 식탐은 아침부터 참 성실하기도 하다.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해치우고 잠시 뒤 아이를 배웅했다.


"조심해서 잘 다녀와."

코로나 이후 고정멘트다. 요즘은 독감이 기승이니 빼놓지 않는다.


잠을 거의 못 잔 것 치고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겨울이면 한 번씩 생각나는 따뜻한 믹스커피도 한 잔 마시고 다시 열심히 패딩을 검색했다.

주문했다가 취소하고 다시 찾고, 몇 번을 반복한 끝에, 드디어 가격은 사악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찾았다.

일단 주문해 놓고 아이가 하교하면 다시 의견을 물어야지 하고 고개를 든다.

뭔가 큰일을 한 가지 해결한 것 같다.


이제 여유롭게 책을 좀 읽어 볼까, 서평을 쓰기로 되어 있는 청소년 소설을 집어 들었다.

다섯 편의 단편 중 첫 번째 이야기를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완전히 눈을 뜬 것은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였다.

두 번째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다가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 밤이잖아?!


잠이 잠을 불러 눈을 떴다 감았다 하길 여러 번.

혹시 잠이 들 때를 대비해, 아이가 하교하기 전에는 일어나려고 맞춰 둔 알람도 끄고 다시 잠이 들었다가, 도어록 터치하는 소리에 눈을 떠 하교 한 아이와 비몽사몽간에 몇 마디를 나눴다.

다시 암전, 그리고 냄비를 꺼내는 소리를 들었다.

가끔 우동 정도는 혼자서 끓여 먹는지라 오늘 간식은 우동이구나, 끓여준다고 해볼까 생각하다가 다시 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후 시간이 삭제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모든 일들을 기록한 것은 그것이 내가 긴 낮잠에 빠져들기 전에 했던 전부이기 때문이다. 모두 나열해 보았으나 역시 특별하달 게 없다. 하하하.


아침에 잠들어 오후에 일어난 것과 오후에 잠들어 저녁에 눈을 뜬 것은 느낌이 아주 많이 다르다.

'한 것도 없이 하루가 다 가버렸다'의 극단적인 예랄까. 계속 웃음이 샜다.




저녁밥을 하려고 급히 뛰쳐나와 마주친 아이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세상에 어떻게 7시까지 잘 수가 있지?

왜 안 깨웠어? 뭐 좀 먹었어?


곧 저녁시간이라 조금만 늦었어도 밥 달라며 깨웠을 테지만, 딱히 곤히 자는 엄마를 깨울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중간에 뭘 좀 먹겠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밥 먹었다고 대답도 하더라나.


굳이 변명을 하자면 잠이 쏟아질 특정일이기도 하고 게다가 잠을 제대로 못 이루기도 했고...

괜히 미안한 마음에 묻지도 않은 이유를 늘어놓는다.




7시까지 잤는데도 귀신같이 이 시간이 되니 하품이 나기 시작한다. 저 녀석도 엄마를 닮아 올빼미인가 조금 일찍 자면 좋으련만 은근슬쩍 취침시간이 12시로 고정되어 버린 것 같다.


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 치를 수행 준비를 하고 있다는데 그만하고 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왜 미리미리 안 하고 늦게까지 이러고 있느냐고 잔소리를 늘어놔 봤자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을 아이를 억울하게만 만드는 일이 될 것 같다.

(종일 자는 모습을 보여줘 버렸으니 더더욱 오늘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은 제발 일찍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밤새 푹 자고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지금 식탁 위의 빵들이 나를 향해 래를 하고 있을지라도, 오늘 밤 야식은 절대 안 되는 거다.

요망한 빵들.(내가 샀다.)

어서 자리를 피해야겠다.


잠은 밤에 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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