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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점에서 파는 것은 문구가 아니다.

오늘 생각 5

by 은진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 문구점이 사라졌다.

그곳에서 문구를 사는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하교 후 뽑기 기계를 돌린다던지 저렴한 장난감을 구입한다던지 아이들이 쪼르르 뽀르르 잘도 드나들던 곳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이었는지 사장님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어느 쪽이든 어쩐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학교 앞 문구점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기억을 쏟아내는 곳이기에.




시간을 돌려 돌려 호랭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한 번 들여다보자.

** 국민학교 교문을 나서는 내가 보인다.

교문 앞에서부터 집에 도착하기까지 참으로 여러 단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엄마가 불량식품 사 먹지 말고 바로 집으로 오라고 하셨는데... 말이 쉽지, 느닷없이 치르는 받아쓰기 시험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물론 피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땅만 보고 걷거나, 앞만 보고 걷거나, 귀를 막거나, 혹은 코를 막거나 그것도 아니면 하니에 빙의해 마구 달리면 될 일이다.


하나같이 굉장히 위험하군...


정확히 교문 앞에 하나, 몇 걸음 걸어 첫 번째 골목 입구에 또 하나 언덕을 내려가 정면에 하나.


문구점만 셋이 포진해 있다. 온라인 쇼핑도 없었던 시절, 아이들이 많았던 그 시절의 문구점은 언제나 복작복작했다. 특히 이 세 번째 문구점이 골치다.


그곳엔 악마의 유혹보다 한 수 위라는 연탄불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었다. 공책 사러 갔으면 공책만 사면 될 일이지 왜 연탄불 앞에 자리를 잡고 서는가 말이다.

연탄불로 도대체 뭘 하냐고?

이런... 이렇게 묻고 싶다면 당신은 최소 국민학교 출신은 아닌 거다.


"축하합니다."



추억의 쫀드기, 인내와 정성으로 구워 베어 물면 꿀이 쭈욱 흘러나오는 쫄쫄이, 비릿하지만 구우면 또 기가 막힌 어포(쥐포는 굉장한 사치다).

이것들이 바로 연탄불의 쓸모다. 물론 굽는 것은 셀프다. 엄청난 난이도의 꼬드김이었으므로 나는 그냥 마음 편히 굴복해 버리기로 한다.


문구점에서 아폴로로 하나 사서 일단 주머니에 넣는다. 이건 집에 걸어가면서 하나씩 쪽쪽 뽑아 먹을 거다.


아부지한테 걸렸다가는 그대로 뺏겨버릴 것이었으므로 최대한 열심히 먹고 나머지는 아까워 가슴을 부여잡을지언정 버려야 한다.


이제 구점과 세트인 문구점 옆 떡볶이집으로 가도록 하자.

떡볶이는 특별한 사유 없이 통과하면 불법이다. 어쩔 수 없이 먹어 준다.


새끼손가락 보다 작고 가늘고 보들보들한 떡을 주걱에 딱 두 개씩 떠서 한나, 두울, 서이, 너이 하며 그릇에 담으시던 할머니의 얼굴, 몸짓,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갔을 리도 없는데 떡볶이와 함께 맘껏 떠먹을 수 있던 국물까지도 내 평생 그보다 더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없다.


설거지할 공간 따위 없는 작은 부스, 연탄을 사용해 나던 매캐한 냄새... 요즘 시대엔 기겁을 할 환경이었지만, 그곳 음식을 먹고 탈이 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먹고 싶어서 탈이 났으면 몰라도.


솔직히 아들에게 권할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그립다.




맛있는 간식을 잔뜩 주워 먹고 무거워진 몸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아폴로는 반드시 해결하고 들어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매일 반복해도 질리지 않을 일이다.


학교 앞 문구점은 나에게 이런 의미다.

즐거운 학교생활에 점점이 박혀 있는 속상했던 기억들, 그 얼룩진 부분을 뒤로 쭉쭉 밀어 묻어버릴 만큼의 추억을 양껏 만들어 준 곳.


엄마가 기다리시는 편안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린 나에게 조금은 길었던 그 길에 반짝이던 터.


1학년 때 한 번씩 들렀던 문구점 기억나니?
없어졌다니 어쩐지 섭섭해.



아이는 어디에서 초등시절 추억을 찾게 될까?

이름만 들어도 어린 시절 기억이 촤르르 자동으로 재생되는 곳이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설마,

편의점? 이케아? 스타필드?

아니길 바라...


너무 낭만이 없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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