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사자 Sep 11. 2021

구글 번역기 만세

더 희미해지기 전에 남겨두는 오래 묵은 여행  얘기

응급실


무언가 해냈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순례자들로 가득 차 있는 도시를 걷고 있었다. 오래된 스페인의 한 도시에 이방인이 가득했다. 오우가 숙소에서 쉬고 싶다고 해서 혼자 나와 조금 외롭기는 했지만 들뜬 마음은 진정이 되질 않았다. 일주일밖에 걷지 않았는데 큰일을 해낸 것 같고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내 마음속에 많은 일이 스쳐 간 것 같았다.


오우에게 전화가 왔다. 샤워하다가 물집 부분이 아프지도 않아서 굳은살을 떼어 냈는데 살집이 같이 떨어졌고  피가 생각보다 많이 나는 상태고 발바닥을 바닥에 댈 수조차 없다고 했다. 걷는 내내 물집 때문에 고생했고 물집이 큰 것을 아는지라 서둘러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다. 발끝으로 겨우 걷는 오우를 부축하고 응급실을 찾아가기도 쉽지가 않았다. 응급실로 보이는 건물로 갔으나 영어가 통하지 않아 안내를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겨우 오우의 발 상태를 보이고 응급실로 이동했지만,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스페인 언어를 모르는 것 그 이상이었다.


발바닥에 피가 많이 나며 살점이 떨어져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음을 몸짓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그림으로 발바닥을 그리며 ‘이 발바닥에 피가 bleeding' 하며 ‘아야 아야 엉엉’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간호사들은 병원 내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느라 분주했다. 한 간호사가 우리를 보더니 'Santiago?’ 하며 물었다. 그 순간 우리는 뭔가가 통함을 알고 ‘응! 산티아고!!! 엄청나게 걸어서 아야 아야!!" 말인지 의성어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답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insurance?' 하고 묻는다. “응? 보험?…  No. Insurance. ㅠㅠ”  치료도 문제인데 순간 치료비가 떠올랐다. 과거에 여차여차해서 치료비가 엄청났다는 별의별 에피소드를 들은 터라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또 다른 간호사가 의사에게 우리를 안내했다. 의사는 간호사에게 구글 번역기를 켜놓으라고 했다.  그녀는 꼼꼼하게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뭔가를 엄청나게 바르고 그 위를 붕대로 감았다. 의사는 처치는 잘되었으나 내일 한 번 더 오라고 했다.


걸어도 되나요? 샤워는요?
신발은 어떤 걸 신어요?


구글 번역기를 통해 우리는 궁금한 것을 빠짐없이 묻고 답을 얻었다. 구글 번역기 만세를 외친 순간.


치료는 무사히 끝났으니 남은 것은 카드를 들고 데스크로 돌아가는 거였다. 여행 오기 전에 분실사고를 대비해 카드 한도를 낮춰놓았는데 제발 그 한도는 넘지 말아야 할 텐데…


“병원비는 얼마예요?”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에게는 병원비가 무료야.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웃었다.


이렇게 말한 것 같다. 구글 번역기가 없어서 정확한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작가의 이전글 F.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