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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eason 1

"걷고 싶은 만큼 걷고,걸은 만큼 돌아오기"

일상을 여행하는 가장 단순한 행위, 카페 브루온 / Editor.초록

by Local editor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아무 말 없이 화가 풀릴 때까지 얼음 평원을 걷고 또 걷는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걸어 화가 다 풀리면 그때 비로소 멈춰 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은 뉘우침과 이해와 용서의 길이라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출처를 알 수 없는 글이 캡처된 사진을 어느 저녁, 친구가 내 생각이 난다며 보내왔다. 저녁마다 한두 시간씩 걸어대는 내가 생각난다고 했다. 함께 덧붙인 말과 글이 웃겨 다른 친구에게 보냈다. 도대체 왜 그렇게 걷는 걸 좋아하냐고 다른 친구가 물었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인지 오래된 습관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걷기”라는 행위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봄과 가을, 초여름과 초겨울, 너무 뜨겁거나 너무 춥지 않은 날들에는 언제나 걸어왔는데 그것이 차가 있기 때문에 줄어든 활동성을 위함이었는지, 진짜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는지, 과한 운동은 싫어서 쉬운 운동을 선택한 의지박약의 나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며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인지, 그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인지, 나를 계속 걷게 하는 것에 대한 이유는 너무 많고 시작은 오래되어 희미해졌다.


괜히 중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뱅뱅 돌던 게 아니었다며 이유를 이야기하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걸었던 걸까 하며 깔깔 웃어댔다. 이렇게 나의 걷기 역사는 그렇게 학창 시절부터 계속해왔던 것이니 그 이유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에 따라 다른 이유를 붙이기로 했다. 함께할 때는 함께여서, 혼자일 때는 혼자여서 좋은 것이 걷기라고.




“그 여행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해끔한 햇살 아래를 걷고 싶은 만큼 걸었고 걸었던 만큼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평서문 같은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고, 충분히 만족스럽다.”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中


나는 여행에서 늘 걷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걷는 것은 내가 두발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일상의 걸음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서의 걷기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어쩌면 가장 익숙한 방법.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내가 긴장을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온몸으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숙소 주변을 빙빙 돌면서 내일 아침을 먹을 밥집을 탐색하고, 저녁에 들어오면서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아주 일상적이지만 새로운 일.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나는 그곳들을 누비며 즐겼다.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곳을 선호하고 함께이기보다 혼자인 시간을 좋아하는 내가 적당히 거리를 두며 함께이면서 혼자이고, 새로웠지만 곧 익숙해질 거리를 누비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빠져버릴 만한 행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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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불면 아닌 불면의 날들이 계속되면서 나는 걷기에 더 매달렸다. 일찍 일어나는 시간에 다시 잠들기 어려워질 때면 일어난 김에 일찍이 움직여 몸을 더 피곤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걷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집 앞 공원이나 집 근처 쭉 뻗은 도로에서 미륵사지로 이어지는 자전거 길을 걷는다.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자신의 땅과 곡물을 보살피는 움직임, 오늘의 업을 향해 떠나가는 움직임, 건강을 위한 사람들의 자전거와 파워워킹을 향한 움직임. 다양한 움직임들 사이에 강제 기상으로 시작된 나의 움직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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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오를 때 비치는 빛에 손을 갖다대어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고, 논밭의 풀내음과 벌레소리를 들으며 걷고 걷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아침에 일찍 눈 떠지는 것이 그리 억울하지 않아 진다. 삶에 대한 찬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 삶에 대한 의지가 늦은 졸음과 함께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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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길을 쭉 따라 돌다가 오는 길에 “브루온"이라는 카페가 있다. 주위에 건물이 없는 탓에 펼쳐진 논 뷰를 2층에서 누릴 수 있는 카페이다. 오전에 “탑천 따라 마을 따라” 자전거 길을 걸었다면 저녁에는 노을이 지기 전 브루온까지 걸어가 논뷰의 노을을 마주해본다. 시원한 날에는 테라스에 앉아 바람을 만끽해도 좋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오후에 테라스의 스테인리스 의자에 앉아 라테 한잔을 쭉 들이키는 것도 좋아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큰 창에 펼쳐진 논을 보며 가만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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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큰 창의 묘미를 논 뷰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운 좋으면 마주하게 될 애월 바다가 떠오르는 보랏빛 노을까지. 없던 사랑도 잔뜩 피어날 그 풍경을 눈과 몸으로 느낀 사람이라면 다시 이곳을 찾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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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브루온을 더 찾게 되는 이유는 바로 포르투가 떠오르는 페스츄리식 에그타르트에 있다. 아주 피곤에 찌든 날, 퇴근 후 브루온으로 달려가 오븐에 뜨겁게 데워진 에그타르트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면 달콤한 커스터드가 입안으로 퍼진다. 뭉근하게 퍼지는 달콤함에 어쩐지 그날의 근심과 피로가 조금 가볍게 느껴지게 만든다. 운이 좋지 않은 날에는 에그타르트가 모두 소진되어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 바란다.



*Place*


✔️카페 브루온: 전북 익산시 부송동 423-4 2층 / insta@cafe_bru_on

- 영업시간: 월~토 10시 30분~22시, 일요일 10시 30분~21시 30분



*eat-walk-drink*


걷기의 작고 큰 기쁨은 걷기에 빠지지 않은 분들이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걷기 위해 날씨를 체크하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하지만 비가 오더라도, 꼭 운동복이 아니더라도 산책의 기쁨은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위에 이야기된 것들 이외에도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걷는 즐거움, 혼자 라디오를 들으며 걷는 즐거움.

마음이 어지러운 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걷는 즐거움. 등등의 여러 즐거움이 걷기를 시작하는 당신에게 펼쳐질 것이다.


여러분도 지금 제시되는 루트가 아니더라도 집 앞이나 주위를 그냥 한번 걸어보시길 추천한다.

평범하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하나로 도로를 따라 미륵사지 길을 걷고 카페 가기 (카페 : 브루온/검이블루/카페202)

✔️레스토랑 뜰/삼층집에서 점심 먹고 영등 공원 걷기

-뜰 : 익산시 마한로 119

-삼층집 : 익산시 마한로 141 3층 / insta@samcheungjip

✔️RM까지 걸어가 건강한 샌드위치와 같이 아침 즐기기

-RM : 익산시 인북로 390 1층 / insta@rm.ncng

✔️쿡커피 로스터즈에서 테이크아웃 후 동천로 저녁 산책하기

-쿡커피로스터즈 : 익산시 동천로 41 / facebook@iksancoffee


아, 문득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어서, 또 걷기 위한 준비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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