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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eason 1

동굴 안에 홀로 숨지 않기 위하여

나의 동굴 : 카페 노테 / 그라운드 익산 / 두 번째 집

by Local editor

*Editor. NYEONG


mbti의 첫 글자인 E와 I가 49대 51로 엎치락 뒤치락하는 나는 군중 속에 잘 섞여 지내다가도

(심지어 거의 주도한다.) 불쑥 화장실로 도망가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것, 더구나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그런 순간들의 연속인가.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대뜸 잘 사라졌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왕복 5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격주로 오가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온갖 사람들을 시간을 쪼개 만나가면서 아침 8시에 나가고 새벽 6시에 들어오는 생활을 내내 하다가, 방학 또는 방전의 순간이 왔다 느끼면 갑자기 SNS도 정지, 카카오톡도 삭제해버리곤 했다. 그리고는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우어 어어... 귀찮아, 다 싫어.' 하는 소리만 내는 거다. 혼자 불쑥 제주도로 떠나 바람을 (쳐) 맞으며 무슨 수행하는 사람처럼 해안도로를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도망의 절정에 다다랐을 때는 제주로도 만족이 안되어 뉴질랜드로 떠나버린 적도 있다.


안타깝게도 '정기적으로'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는 사라지고 싶다고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모든 이들의 공식 연락망이 되어버린 카카오톡마저도 지우고 싶다고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 이틀 내는 휴가로 만족이 안 되는 사라짐의 시간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계약직'으로 일해 온 탓에 해가 바뀌고 2주 정도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 숨어있다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일상에 동굴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지금 당장이라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고 싶은 갈증을 느끼면?


그럼 찾는다, 숨어 들어갈 나의 동굴을. 아몬드크림라떼가 맛있거나 계산할 때 시시콜콜한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각자의 할 일을 하는 사장님이 있거나 멍-하게 초점 잃은 눈으로 있어도 아무도 안 보는 공간이 있는 곳들로 찾아 숨어 들어간다. 혼자 있지만 세상에 홀로 있는 외로운 기분은 또 싫어서 서로의 존재만 확인할 수 있는 곳에 간다. 중앙동에 있었던 카페 노테가, 빨간 벽돌집 그라운드의 진열된 빵이 내다보이는 작은 방 또는 2층 다락이, 그리고 시장 안에 책방이란 아무도 생각 못할 것 같은 두 번째 집이 그렇다. 숨고 싶은 날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애정 하는 공간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각 공간마다 또렷이 기억나는 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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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빛 들어오는 시간이 가장 좋았던 카페 노테>


2019년의 9월은 유난히 덥고 아픈 여름이었고 그다음 10월은 거짓말처럼 행복했다. 그 사이에 카페 노테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골목 안에 작은 공간이었던 그곳은 사무실에 혼자 있다가 총총가서 5분만 앉아 있다 와도, 언제나 밝던 사장님과 몇 마디만 나누고 와도 금방 기분전환이 되어서 자꾸만 찾아갔다. 11월도, 12월도 잘 부탁해.라고 혼자 되뇌었지만 그다음 해 봄, 아파트 개발 소식과 함께 어수선해진 거리에서 문을 닫았다. 일 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그곳의 아몬드크림라떼 맛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 괜히 그 자리를 맴돈다. 그러고 보니 그라운드에 대한 기억도 9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눈 뜨자마자 맨얼굴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나왔다. 태풍이 온다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모자를 꼭 잡아야 하는 날이었다. 배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배가 고파서 일주일 내내 먹고 싶었던 짬뽕 라면과 탕수육을 배부르게 먹었다. 배가 부르니 책도 읽고 싶고, 가을이 오긴 오는지 라떼가 마시고 싶어져 그 빨간 벽돌집의 그라운드에 갔다. 군더더기 없는 빵들과 우유맛이 진득한 카페오레가 있는 곳. 매번 앉는 작은 방 같은 공간에 들어가 가사 없는 노래를 들으며 한 가지 나무색으로 가득 찬 그곳을, 각자의 할 일을 착실히 하고 있는 카운터와 부엌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날의 일기를 돌아보니 '아주 단순한 것들이 주는 평온함이 좋다. 하루가 단순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조용하고, 고요하게, 편안하고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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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보면 갈색 벽돌인가 / 작은방 나의 고정석 / 작은방에서 보이는 진열된 빵과 부엌


나의 동굴은 이런 공간이다. 단순한 공간 안에서 성실히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나에게 무해한 공간. 어느덧 노테는 문을 닫았고, 그라운드는 코로나로 매장 내 취식이 불가능해 그 작은 방은 창고방이 된 듯하고, 두 번째 집은 친구들이 늘어 숨기보단 늘 조잘대느라 바빠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동굴이 필요할 때 또는 동굴에 숨어있는 이가 있을 때 그라운드에 가서 빵을 한가득 사 나눠먹거나 뜬금없이 성큼성큼 걸어가 두 번째 집 유리창을 두들긴다. 자연스럽게 카운터 앞에 앉아 조잘대면서.




*Place & Music*


✔️ 그라운드 : 익산시 인북로 108-11 (중앙사거리) / insta@ground_iksan

✔️ 두 번째 집 : 익산시 평동로 11길 12 (남부시장) / insta@2nd_zip_


✔️ 떠오르는 BGM : 권나무 or 글 쓰는 내내 틀어놓았던 노매드랜드 ost 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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