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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eason 1

However, both A and B

Editor. 궁화

by Local editor

독특한 이름,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나에겐 연필.


- 그러나, A와 B 둘 다


해왔던 것들이 지겨워지고, 재미있던 것들이 싫증이 날 때.

그런 상태를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번아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번아웃이 3개월 정도 지속되었을 때,

결국 나는 지겹도록 마주했던 불안과 우울을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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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그런데 우리 이제 그만 만나면 안 될까.‘


카페 HB 외관과 카운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쯤 다소 낯선 이름의 카페를 발견했다.

'에이치 비'라고 읽는 게 맞을까? 하고는 잘 안 되는 발음으로 '하우에버 보쓰 에이 앤드 비'라고

읽어보다가 줄여 쓴 데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읽는 건 포기한 HB.


어쨌거나 일련의 과정으로 나는 '카페'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곤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번 가볼까 싶어 카페의 SNS 계정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무리 코로나 시대가 오면서 안 돌아다녔거니와

익산에도 그림을 접할 수 있는 공방이 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물어 물어 찾아보면 있겠지만 흔히 말하는 취향 저격을 당한 느낌이랄까.




캔버스, 그리고 준비된 모습.


'너는 그림은 괜찮은데 색칠을 못하는 것 같아.'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초등학교 시절이 '나의 미술'의 마지막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색칠 못해서 그림 못 그려.'라는 말을 달고 살게 되었고,

점차 미술과는 담을 쌓게 되었다.

그런데 왜 다들 마음 한구석에는 품고 사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게 나에게는 '그림'이었던 것 같다.


스모어 쿠키, 그리고 형형색색 음료

-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찾는 '나'에 대한 애정

패기 있게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해놓고 나니 수업이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 재료 대여도 하신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참을성 없는 본인은 정말로 예약 날짜까지 참지 못해 재료대여 먼저 하러 무작정 HB에 찾아갔다.

고요한 분위기와 오브제 하나하나 모두 본인 취향이었으나 본의 아니게 긴장을 해버렸다.

긴장한 게 어찌나 티가 났던지 후에 재방문 때 사장님 왈,

'긴장하신 것 같아서 제가 자리 피해드렸는데 모르셨어요?(웃음)'

.. 네,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손길이 닿은 본인 그림

세 번째 방문하고 나서야 알았다.

정말로 나는 계획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꽤나 창의적이라는 것.

고로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을 말이다.

글이나 그림에서 그 사람의 성향이나 취향을 알 수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같이 함께한 사람들과 똑같은 아크릴 물감으로 똑같이 하얀 캔버스에 시작했으나

그 끝에 내 그림은 항상 유화처럼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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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딘가 추상적인 꽃밭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더욱 즐겁다. 모두 다른 그림.


그동안 취미가 일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취미에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뒤늦게 다시 시작한 미술은 꽤나 나의 번아웃과, 우울과, 불안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연히 발견한 HB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2년간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하고, 잘 해내야만 한다는 압박과 틀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리고 다시 펜을 잡아 글을 쓰게 했다.

그래서 HB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감정과 능력 사이에 모순을 허용해 주며 해소시켜주는 연필 같은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할 수도, 진할 수도 있는 연필처럼 나조차도 그 어떤 방향으로 기울던 결코 그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메시지.

애정 하는 이와 함께 가도 좋고 혼자 가도 좋다.

그저 그리고 마시고 이야기하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 석 자, 아니 몇 자가 되었든 그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테니

- 그래서 공유하기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청년 셋이 모여 <로컬 에디터>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일상에 치여 시들어가는 날들이 아까워 잊고 있던 개인의 취향을 다시금 찾고 공유하기 위해 만났다.

'우리 같이 재미있는 거 해볼래?'라는 누군가 던진 한마디가 지역에 발 담그고 있던 청년에게 일상에 대한 애정과 생동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기록하려 한다. '나'라는 사람이 가진 개인적인, 사적인 취향을 부끄럽지만 공유해 더 많은 이들이 일상과 그들의 지역에서 재미를 느꼈으면 한다.

그렇게 필자의 첫출발은 카페 HB, 그림과 커피가 함께하는 공간이다.

취미가 많은 에디터의 앞으로 소개할 '공간'에 기대하길 바라며 첫 번째 글을 마친다.

에디터의 세 번째 그림.




*Editor Nyeong's comment.


-첫 경험이란 언제나 설레고 낯설다. 나에게 미술은 유치원 대신 다닌 미술학원에서의 오래된 기억과 정물화 소묘가 싫어 울며불며 그만둔 것이 미술과의 인연 전부였다. 성인이 되고 취미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색연필에도 기웃, 오일 파스텔에도 기웃거려봤지만 나의 실력은 보잘것없고 돌아보면 ‘잘’하는 이들이 넘쳤다. 그러다 만난 아크릴화란, 오 – 역시나 설레지만 낯설어.

다른 게 있다면 선생님처럼 잘해야 한다고 혼낼 이가 아니라 ‘못하겠어요’라고 하면 ‘괜찮아요, 잘했어요,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해주는 든든한 헬퍼가 있었다. 그녀가 하는 아크릴화 클래스 두 시간, 세 시간도 모두 그런 시간이었다. 그림에 각자의 모습과 취향이 잘 담길 수 있도록 계속 묻고, 찾고, 나누며 우리는 세장의 아크릴 화를 완성했다. 똑같은 모습의 그림이 아닌,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각자의 취향이 온전히 담긴 그림이 완성되었다. 아마 그녀에게도 이렇게 시끄럽고 다른 에디터 셋은 처음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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