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Place 읽고 쓰는 공간 / Editor. Nyeong
‘갈 때가 되었는데...’ 생각할 때 즈음 시골쥐는 서울로 상경할 핑계를 만든다. 토박이로 지역에서 살아가는 일은 손을 뻗지 않아도 서로의 손이 척척 맞닿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손이 목을 조르기도 한다. 숨이 차오르는 걸 느낄 때면 단 며칠 밤의 짐을 싼다. 가방 하나에 쏙 들어갈 만큼의 짐만. 작은 짐에 노트와 필기구, 얇은 책 한 권은 무거워도 챙겨 넣는다. 이번엔 아날로그키퍼의 초록색 핸디다이어리와 유니볼스타일핏 볼펜, 연필 모양의 자주색 펜코샤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세 가지. 준비는 되었고, 이제 상경할 핑계를 찾아야 한다. 예약에 실패한 적 있는 서촌의 공유 서재를 이용할 수 있는지 묻는다. 띵동! “예약 가능합니다.”
자, 준비는 모두 끝났다.
① 독서공동체·한옥공유서재, 호모북커스 / insta_@homobookers71
서촌 누하동 골목의 끝자락, 작은 마당을 가진 호모북커스. 이곳에서 눈뜨는 아침을 애정한다. 한옥답게 창살에 쪼개진 빛이 책장들 사이로 들이치기 때문. 커피 한 잔을 가지고 마당에 가만 앉아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방명록에 글을 옮기고 싶어 진다. 머무는 동안 읽은 책과 방명록을 정리하지 않고 책상에 놓아두는 것이 공유서재의 규칙인데,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한 장을 빼곡히 적어 내려간다.
② 기록광을 위한 문구점, 올라이트 서촌 / insta_@allwrite_shop
하얀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엽서들을 보고 저장해 둔 곳. 분명 지도에는 휴무라고 적혀있었지만 아쉬운 마음에 앞이라도 지나가 보기로 한다. 럭키비키, 열려있잖아? 이름답게 온갖 쓰는 도구들로 가득하다. 한참을 서서 친구에게 쓸 엽서를 고른다, 여행하는 귀여운 할머니 두 명이 나란히 찍힌.
③아날로그키퍼의 오프란인 기록공간, 파피어프로스트 / insta_@papierprost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원래 너무 좋으면 헛웃음만 나오고 할 말은 잃는다. 파피어프로스트가 그랬다. 왜 이렇게 다 알려주지? 싶을 정도로 그녀들의 기록이 모두 담긴 공간. 백 마디 나의 소감보다 그녀들이 전하는 문장들을 남긴다.
④ 라잇요라이프의 작업실이자 예약제 사색과 기록의 공간, 라이팅룸 / insta_@the__writingroom
Welcome to the writingroom, Where you listen to yourself.
공간의 시그니처 블라인드 안으로 들어가면 창가를 둘러싸고 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독립된 공간은 아니지만 트인 공간 속 전자기기는 넣어두고 셔터 소리조차 망설이며 쓰고 읽는 행위에 집중하게 한다. 문 앞에 놓여있는 운영자들의 공간 아카이빙 북은 지나치지 말고 열어보시길.
사실 읽고 쓰기 위해 떠난 서울행은 아니었다. 짧은 도망에 가까웠고 왜 가냐는 물음에는 커피 마시러요,라고 대답하길 다반사. 마음이 복닥한 때면 자연스럽게 일기장을 펼치듯, 이번 여행은 나조차도 모르게 소진된 마음을 펼쳐두고 공간에 시간을 썼다. 말없이 비워낼 공간이 필요한 당신에게, 장소들을 빌어 나의 시간과 마음을 전한다.
Local Editor Nyeong 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