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Playlist 에디터 플레이리스트 / Editor.궁화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건조하게 식은 내 눈이 보이지 않게 질끈 감고 싶었다. 그리고 든 생각은, ‘아, 나도 저런 눈을 했었지.’ 그런데 언제였더라.
어느 작가님은 글에 과거를 적는다고 하셨다. 그러자 어떤 이는 이렇게 질문했다. ‘그럼 글로 담아 지나간 것은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나요?’ 그에 작가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답변했다. ‘글에 과거를 적지만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그럴 때 저의 슬픔 극복 방법이 있어요. 내가 다른 차원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함께 있는 것. 너는 거기, 나는 여기.’ 어쩌면 내가 각색하고 싶은 대로 들었을지언정 그간의 모든 내가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오랜만에 눈물이 고였다. 작가님의 대답을 들은 다른 청취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아, 고였던 눈물이 생명력을 얻은 듯 흘러내렸다. 누가 볼 새라 얼른 훔쳐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이제 희미해 사라지고 있는 나 자신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존재였다니. 어쩐지 조금은 과거를 기록하는 일에 대한 슬픔이 덜어진 것 같다.
내가 오늘로 소멸된다면, 동시에 살아있는 어린 나는 슬퍼할까? 상상해 보았을 때 지금의 나는 슬프지 않다. 단지 소멸 직전의 나를 글에 담고 싶을 뿐. 어쩌면 소멸 후에도 나는 살아있겠지. 그것이 명을 쓰는 일이든 애를 쓰는 일이든 어느 시대에 있을 나는 또 다른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 글에 담는 나의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야금야금 꺼내어 쓰지만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생각나는 과거의 기억.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미묘하게 이야기가 달라지는 건 아마도 그 기억에 도착한 나와 내가 충돌하니 기억에 금이 간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덧붙여서.
그 이유로 지금 내 마음을 유영하는 몇 개의 노래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작가님의 기억 속에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던 중 아나스타샤 OST <Once Upon a December> 이 불쑥 떠오르셨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어쩌면 또 다른 나를 상기시켜 주기 위해 존재하는 테서랙트˚ 속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과거를 잊을 수 없다. 여전히 나를 괴롭게 했던 일로 심장이 쿵쾅거리고, 일상 속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행복한 기억으로 하루가 즐거워지기도 한다. 그 조각을 기우며 상상을 덧대 글을 쓰는 사람. 다만 아픈 기억에 잠식될 때면 출구를 알 수 없는 차원에 빠져버리곤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나온 혹은 다가올 나를 만나게 된다. 무한한 차원에서 다시 3차원의 세계로 돌아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간은 일부만 보인 채로 흐른다. 두 손에는 아무것도 쥐고 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기억한다. 나를 만나고, 나를 안아주고, 같이 보낸 시간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도 파헤쳐 보면 분명 아름다운 기억은 있다. 내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 나를 잃지 않아야지. 그래서 나는 과거를 쓰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언젠가 만날 나를 기대하기 위해서.
˚Tesseract : 영화 인터스텔라 속 4차원의 시공간을 모든 방향에서 보게 하는 5차원의 세계
*Editor's Playlist
The fifth dimension's a tesseract. You add that to the other four dimensions and you can travel through space without having to go the long way around.
5차원은 테서렉트야. 다른 4차원에서 테서렉트를 추가하면 아주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우주를 통해 여행을 할 수가 있어.
「Madeleine L'Engle, A Wrinkle in Time」
Local Editor 궁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