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Essay, Editor 궁화.
가게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 낙엽이 제법 오래 버틴다. 며칠 전 강원도에서 받은 복숭아 사과라는 새로운 품종도 꼭 백설공주가 먹은 독사과처럼 붉었다. 그 새빨간 것들을 보고 있으면 주변이 흑백으로 느껴지곤 한다. 일종에 내가 고독으로 빠져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루 매출 삼만 원짜리 가게에서는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편안히 공상할 수 없다. 엉덩이가 무거울 수 없는 상황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자존심도 눌러가며 일거리를 찾는 주인장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겠지. 그래서 종종 숨 돌릴 틈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즉시, 서있든 걷고 있든 간에 깊은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찾은 무언가를 잔뜩 어질러져 있는 머릿속 책장 속에 욱여넣고 다시 숨을 몰아쉬며 오픈한 지 3시간 만에 첫 등장한 손님을 맞이한다.
대개 붉은 것을 보면 강렬한 충동이 일곤 한다. 그게 무엇이든 갖고 싶고 그것에 대해 표현하고 싶다. 내 고독한 흑백 세상에 유일한 대비로 짙어 보이는 탓이 아닐까 싶기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꾸밀 거리를 준비하는 가게나 거리를 보면 온통 붉다. 그 안에는 로마인들의 축제에서 사용된 호랑가시나무 열매에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혹은 종교적인 이야기도 덧붙여지지만 나한테는 어떤 생기와 현혹으로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고독은 내 무의식과 같다. 눈이 아플 정도로 붉은 것에서 나오는 에너지, 이야기, 의미 등 이 모든 것들을 파헤치고 싶어지는 집착 같은 것이라. 혹은 삼켜질 것 같은 압도감일 수도 있겠다. 흔들리는 황무지 잡초 같은 나를 꽉 잡아 집중시키는 힘. 어쩌면 내가 본디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일지도 모르는 어떤 힘을 주체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흰 종이에 쏟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글자가 되기도, 문장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완성되지 못한 채 낡은 종이 더미에 파묻힐 때도 있지만 색 바랜 낙엽 더미에서 가을을 기억하듯 고독의 순간을 기억하게 되는 것으로나마 남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끊임없이 쓰는 이유와 같은 생각을 매번 다른 언어로 뱉어내게 되는 이유도 불완전에서 오는 미지의 감각을 붉은 것을 보면 끓어오르는 것과 같이 탐닉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한 것이 오롯이 나만 들어갈 수 있는 고독이지 외로운 감정과는 별개라 이해받지 못해도 여전히 숨을 멈추고 흑백 속에 붉은색을 찾게 되는 것은 나만 할 수 있는 본능과 숙명인 것이다.
언젠가는 잘 정돈된 책장에 나의 이야기가 꽂히길 바라며 늦은 시간까지 머물다간 손님의 뒷자리를 정돈해 본다. 잘 치우고, 잘 닦아내고, 수고한 공간에게 인사를 한다. 내가 고독에 빠질 동안 나를 지켜주어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잠깐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과 함께 소등.
대개 붉은 것을 보면 강렬한 충동이 일곤 한다. 혹은 삼켜질 것 같은 압도감에서 찾아내는 본능과 숙명을 나는 붉은 것에서 출발해 고독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급히 빠져나와 둘러보면 주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흘러간다. 나만 아는 고독, 나만 보이는 붉은 것.
Local Editor 궁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