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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지 Nov 11. 2020

스타트업 생존 1년을 맞는 소회

버텼다 1년!!

개의 1년은 인간의 5-7년과 같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타트업에서 보낸 1년이 마치 개의 시간과 같다고 말한다. 스타트업에서의 1년이 일반 기업에서 보낸 시간의 몇년과 같다는 뜻이다. 그만큼 회사가 빠르게 움직이고, 일도 많이 하게 되며 ㅠㅠ, 그렇기에 일반 기업에서 몇년 동안 배울 것을 1년만에 압축해서 배울수 있다는 뜻이다. 


약 3주 전에 입사 1년 마크를 찍었다. 체감상으로는 한 3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나 자신도 엄청나게 성장했다. 매일매일 comfort zone에서 벗어나도록 도전을 받고 있으니 정말 몇년동안 성장할 것을 1년에 압축해서 경험한 느낌이다. IC로 시작해서 두달만에 매니저를 달고 초보매니저로서 10개월을 보냈다. 여러모로 도전받는 느낌이 많았는데 몇개를 나열해 보자면:

- CMO의 직속 데이터 사이언스 파트너가 되어 그로스와 마케팅 분야의 데이터를 총괄했기 때문에 회사 c-level, 마케팅 vp들과 계속해서 일해야 했다. 임원들과 말하는 경험이 많이 없었기에 그 자체로도 하나의 벽이었다. 어떻게 적당한 레벨의 정보를 전달하고 (너무 자세하지도 않고 너무 뭉뚱그리지도 않게) 어떻게 비즈니스의 큰 그림을 보는지. 

- 입사할 당시 동료였던 사람들이 내 밑의 직속 팀원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전부터 있었던 팀원들을 제치고 2달전에 들어온 내가 매니저가 된 상황을 다들 크게 달갑지않아 했다. 그들의 신뢰를 얻고 매니지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  B2B GTM (Go-to-Market) 은 내가 전에 겪었던 B2C 프로덕트랑은 아예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했다. 이 세계는 전혀 다른 단어들과 개념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몇년씩의 경력을 가직 왔기 때문에 컨텍스트를 얻고 도메인 지식을 얻는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이 외에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만큼 별의 별 어려운 일들이 다 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버티다 보니 1년이 되었다! 


실리콘 밸리에서의 1년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주식 혹은 스탁옵션을 줄때 4년치를 약속하는데 보통은 처음 1년치는 1년이 지나야만 준다. 1년 마크를 찍으면 25%를 주고, 그 이후에는 매분기마다 혹은 매달마다 남은 주식 혹은 스탁옵션을 주는 것이다. 1년을 버티면 어느정도 인정해준다는 의미이려나. 아무래도 스탁옵션이 훨씬 가치가 크고 중요한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1년을 넘긴다는게 재정적으로도 큰 마일스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딱 입사 1주년에 다다를때쯤 정말정말 미친듯이 바빴다. 하루에 몇시간 자지도 못하고 꿈에서도 일을 하고, 잠에서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랩탑으로 달려가서 미친듯이 일하고, 저녁을 먹으면서는 남편에게 일 이야기를 하고 조언을 받고, 다시 일을 자기전까지 한다음에 일을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작은 하나하나가 너무나 스트레스가 되었고 마치 일이 내 전부인것 만 같았다. 아마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집에서만 박혀있으니 더욱더 이런 상황이 가중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미친듯한 시간을 보내고 도저히 물리적으로 더 이상 일을 할수 없을 것만 같을때, 샌디에고로 1주일동안 휴가를 갔다. 우리 팀도, 보스도, 파트너들도 다들 내가 얼마나 미친듯이 일했는지 알기에 제발 일하지 말라고 쉬라고 모두가 내 등을 떠밀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거의 10개월만에 처음으로 일을 거의 하지 않는 진정한 휴가를 보낼수 있었다. 휴가 내내 라호야 해변이 보이는 에어비앤비에서 별일 하지 않고 남편과 놀고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코딱지 만한 산호세의 아파트에서 벗어나 라호야 해변에 있어보니 세상엔 일보다 더중요하고 재밌는게 많더라. 승진에 (혹은 승진에 따라오는 스탁옵션에) 목매어서 집착하며 살다가 한발짝 벗어나 보니 1) 미친듯이 일해는 것보다 전략적으로 스마트하게 잘 일하는 게 중요하고 2) 일이 인생의 다가 아닌데 승진과 연봉에 너무 집착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돌아와서는 어떻게 하면 내 시간을 최대한 우리 팀을 위해서 좋은 매니저가 되는데 쓸수 있는지 궁리하고 있다. 1년동안 배운 것들에 대해서는 차차 시간이 생기면 남겨볼 생각이다. 브런치 서랍에 저장된 글이 한가득인데 조만간 다듬어서 세상에 내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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