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며 바리바리 책을 구겨 넣던 시절이 있었다. 새로운 시각과 의미를 가져다줄 그 무언가를 기다리며 여행의 벗으로 가져갔던 책들은 들쳐보지도 못하고 다시 오곤 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독서란 어떤 의미에서 사치스러운 행위이다.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 권력자들과 주변인들의 행위를 반추하고 모니터자판을 뚫어져다보다 퇴근을 하고 나면, 어떤 지적 탐구를 할 정신적 여유라는 게 남아있지 않다. 그냥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시각적 매체에 주의를 빼앗기고. 그도 아니면 신체를 이완시켜 감각을 쉬어주는 것만이 필요할 때가 있다. 독서라는 행위가 주위와 어떤 단절을 필요로 하는데 시간적, 물리적 그리고 시간적 여유 그리고 일단 번잡한 현실세계와의 단절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사치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책을 잘 안 읽게 된다.
여행을 갈 때면 책 한 권을 가져가곤 한다. 가벼운 마음, 원제는 la folle allure. 매력적인 미친 여자. 책을 읽어보면 원제가 이해가 간다. 제목을 번역하기 매우 까다로울 듯했다.
서커스에서 일하는 부모밑에서 자라나 늑대와 벗하며 살이 가는 주인공은 열 살 때부터 가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성장하며 파리에서 중상류계급의 로랑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그 와중에 괴물(아방. 같은 아파트에 사는 첼리스트)과 사랑에 빠진다. 어렸을 적 가출을 일삼던 그녀의 성향은 결혼생활에서도 나타나 수시로 가출 (우리나라말로는 바람)을 한다. 사회적 인습에 구속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책의 타이틀이 정해진 듯 싶다. 마지막은 로랑과 괴물 모두와 결별하고 부모에게 돌아온 주인공이 요양원 할머니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는데 할머니는 어렸을 적 서커스를 찾아가자고 하며 끝난다.
시, 에세이와 소설 그 어딘가에 속하는 텍스트. 인생이라는 고행에 가벼운 태도가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