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an Sep 05. 2020

독서일기 20200905 도시를 걷는 여자들

 - 안주를 거부하는 도시의 관찰자들 (플라네르) (로런 엘켄 지음)

뉴욕 출신으로 파리에 거주하는 작가가 뉴욕- 파리-런던-베네치아-됴쿄의 거주 또는 여행 경험과 각각의 도시에 거주하거나 여행했던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다룬 에세이이다. 


플라뇌르( flâneur) 란 특별히 목적 없이 거리를 거니며 주변을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프랑스어인 이 단어에 여성명사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거리를 자유롭게 거닐고 관찰할 수 있는 특권이 남자에게만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여성은 공적인 영역에 속하지 않으며, 사적인 영역인 가정에서만 존재를 인정받는다. 남자의 보호 없이 홀로 거리를 거니는 여성은 그러므로 낯설어서 위험하고 불안한 존재이다. 거리의 여자란 종종 부정적 함의를 담아 쓰인다. 


존 리스, 조르쥬 상드, 버지니아 울프, 소피 칼, 바르다 등 사회가 규정한 종속에서 벗어나서 길거리로 나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사회를 발견하고 도시를 탐사하는 여성 예술가들을 각각의  도시 파리, 런던, 베니스에서 그 흔적을 찾는다. (존 리스는 제인에어를 재해석하여 소설에서 주인공 로체스터의 "미친" 것으로 기술되는 부인의 관점에서 소설을 썼다는 점, 조르쥬 상드가 남자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인간을 제약하는 모든 구속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였다는 점등이 흥미로왔다.)


이 책은 여성이기전에 독립적인 한 주체가 되기 위해  사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비범한 여성들의 탐사를 다루되 장소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며, 장소에 영향을 받는다. 레베카 솔닛도 기댈 사람보다 언젠가는 기댈 수 있는 " 장소"를 먼저 발견해야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혼자 카페나 거리를 가기만 해도 외로움은 조금은 달랠 수 있다. 거리는 사람들이 모여 정부나 권위에 대항해 시위를 벌이는 장이기도 하다. 작가는  프랑스혁명, 68 혁명 등을 보며 파리 사람들이 시위에 능하다는 점에 감명받았다.


작가는 도쿄의 은행에 취업한 남자 친구를 따라 도쿄에 거주하게 되는데 도쿄의 호화 맨션에 살면서 그 맨션이 시설 같다고 느낀다. 이 느낌 왠지 이해할 것 같았다. 파리는 사람이 우위인 도시로 느껴진다.  보행자 중심의 넓은 인도, 사람들이 곧잘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하는 도로조차 서울의 그것(왠지 정신을 곤두서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과 느낌과 사뭇 느낌이 달랐다.  곳곳에 있는 공원, 카페는 이 곳이 거주자를 위한 도시이지,  초고속 빌딩과 빽빽한 아파르로 가득한 산업화와 자본을 위한 도시처럼 느껴지는 도쿄, 서울 등 대도시와  대조적이다. 


이 책은 파리, 런던, 도쿄의 여행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몇 몇 장소들에 대해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손잡이를 꽉 붙잡게 하는 방콕의 빠르게 달려가는 듯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서울과 비슷한 회색빛 도시에 고층건물과 우에노 공원이 기억나는 도쿄,  과거로 이끄는 듯한 말바자국 소리와 곳 곳에 카페가 숨어있던 비엔나 거리, 모든 것이 너무나 컷던 뉴욕과 브루클린의 평온한 강가, 아마츄어 화가들의 전시회가 열리던 보스턴 쇼핑몰, 보스턴 뮤지엄의 댄스 파티와 보티첼리 그림 투어가이드,  프루덴셜 빌딩에서 보던 보스턴 전망,  사진을 찍어달라는 내 요청에 응했던 여학생들, 프로방스 고몽 뮤지엄의 시슬리 전시회, 고풍스런 찻잔, 니스의 푸른 바다..


방문한 도시중에서 살고 싶고 떠나기 싫은 도시는 파리였다. 파리의 흑인과 소매치기들에 시달렸지만,  투어버스를 타려고 지갑에서  티켓을 꺼내려는 나를 향해 괞찮다고 말하는 버스 운전자가 있는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도시이기도 하다.  매일 센 강을 보고, 로댕 정원에서 보이는 엥발리드의 황금빛 돔을 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세계 각 국 도시에서 거주할 수 있었던 작가가 부러웠다. 작가도 이 점을 특권이라고 인정하였다. 이 책에 나오는 비범한 여성들은 부르주아 집안 출신, 매력, 재능 그리고 결정적으로 안주하지 않고 속박에 굴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이 있어서 이러한 삶이 가능한 것 같았다.


자신의 출생지를 떠나 살 곳을 결정하고 이행할 수 있는 실행력이 부러웠다.


같이 보면 좋은 영화 - 바르다의 얼굴들, 레볼루셔너리 로드


작가의 이전글 독서일기 - 파리는 언제나 축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