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명소 ; 앵발리드
파리에는 방문객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황금빛 건축물이 있다. 파리를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 들, 앵발리드 교회의 황금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 불리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의 황금 동상이 그것이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지나치면 앵발리드에 도달한다. 사이에 아름다운 건물은 쁘띠 팔레와 그랑팔레이다) 개인적으로 에펠탑보다 앵발리드의 황금빛 돔을 봤을 때 가슴이 더 뛰었다. 석회빛 건물과 파란 하늘 그리고 앵발리드의 황금빛 돔이 어우러진 풍경, 그리고 유럽의 공기는 황홀감을 선사한다. 앵발리드는 불어로 환자라는 뜻으로 원래 전쟁 부상병을 치료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나 현재는 무기박물관 및 나폴레옹 1세의 묘가 있는 교회 등 여러 건축물로 이루어진 역사적 건축물이다.
앵발리드 내 돔 교회에는 나폴레옹 1세의 무덤이 있다. 내부는 웅장하다.. 말이 적합하다. 나폴레옹이 궁을 설게한 것은 아니겠지만 "힘"을 보여주는 방식을 건축물에 투사한 것 같다. (이런 웅장함의 현현은 개선문에서 느낄 수 있다. 개선문을 실제로 보면 건축물이 뿜어내는 승리감과 위엄에 압도되고 만다..) 영화 '코코"를 보면 망자의 영혼은 지상에 망자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더 이상 없을때 사라진다고 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 세계에 존재한 후 몇몇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마저 그 기억을 잊었을 때 사라진다.. (참 찰나인 삶이다. 이 찰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고분군투 하는지.. 그나마도 후세에 남겨질만한 어떤 것보다는 하루하루 삶을 부지하기 위해 노동하는 삶을 살고 있다. 쓰다 보니 피라미드의 노동자며, 중세의 농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폴레옹은 앵발리드에서 아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후세가 기억하겠지. 죽음 이후에도 영속하고자 하는 열망, 불멸의 열망이 이집트 파라오 무덤이나 나폴레옹의 묘에서 보인다..
앵발리드(Invalides)는 파리의 역사적 건축물 중 하나이다. 1671년 루이 14세가 부상병을 간호하는 시설로 계획하고 리베랄 브뤼앙(Libéral Bruant)이 디자인을 지휘하여 1674년부터 부상병들이 간호를 받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건설은 1677년에 시작되었고, 1706년에 완성했다. 돔 교회의 지하 묘소에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관이 중앙에 놓여있다. 또한, 주위에 나폴레옹의 친족이나 프랑스의 유명한 장군의 묘가 놓여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프랑스어: Napoléon Bonaparte, 코르시카어: Nabulione di Buonaparte, 이탈리아어: Napoleone Bonaparte, 독일어: Napoleon Bonaparte 1769년8월 15일 ~ 1821년 5월 5일)는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자 1804년부터 1814년, 1815년까지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였다.
코르시카 출신의 하급귀족으로 시작해 프랑스 혁명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통해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며 유럽의 모든 열강들을 굴복시키고 황제 나폴레옹 1세가 된 인물이다. 샤를마뉴 이후 프랑스 최초의 황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근대 유럽이 배출한 최고의 군사적 천재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가 남긴 나폴레옹 법전은 전 세계의 민법 관할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나폴레옹이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면서 법치주의, 능력주의, 시민 평등사상 등 혁명의 정신들이 온 유럽에 전파 되었다. 근대 유럽은 영국의 산업혁명이라는 경제적 혁명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정치적 혁명을 통해 탄생한 세계였으며 결국 이후 전 세계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근대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럽화, 된 만큼 유럽 뿐 아니라 전 세계 역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