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꽂이를 시작하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쓰레기’를 사는 사람들 같았다. 생일이나 졸업 같은 이벤트 없이도 꽃을 사는 사람들 말이다. 일주일 정도면 어차피 져버릴 텐데 뭐 하러 죽을 꽃들을 사는 거지? 예전의 나는 꽃에 돈 쓰는 것을 싫어했었다. 분명 플로리스트인 친구의 수업에서 꽃꽂이를 배울 때 그렇게 좋아했었으면서. 단순히 친구에 대한 의리 때문에 수업을 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이렇게 ‘꽃을 만질 때 행복했다’는 명확한 내 기호를 ‘금방 죽을 것이니 다 소용없다’라는 효용성의 잣대로 덮어버리며 무시했다.
내가 옛날에 그림을 그렇게 포기했었지. ‘어차피 부모님은 나를 미술학원에 보내지 않을 것이고 그럼 난 미술대학교에 절대 갈 수 없으니 그림을 그리지 않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얀 종이 위에서 손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나는 이제 무언가를 보고 따라 그리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그림 그리는 방법을 까먹었다. 내 손은 그림 그릴 때 쓰는 모든 근육이 퇴화된 상태이다.
그렇게 아무 그림도 그리지 않다가 19살, 21살, 23살에 한 번씩 미술대학교에 비실기 전형으로 지원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미대 선망생이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 논술로 연대 디자인학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간절히 원하고 차근차근 준비해도 떨어지는 입시전형을 로또 복권 사는 마음으로 지원했다. 이게 되면 대박이다! 그런 놀부 심보로 지원한 후, 기적적으로 최종까지 가더니 결국 불합격.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지원조차 안 하는 건데.
‘그림’을 공부하고 싶어서 미술대학교에 가고 싶다는 본질을 오래전에 잊었기 때문에 지원 방식도 잘못되었고 그 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기존에 다니고 있던 대학교에도 미술대학교가 있었는데 복수전공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부모님께서 인정해주지 않을 테니까. ‘돈만 더 들지, 차라리 혼자 취미로 하겠어!’라고 생각하고서는 아무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25살 첫 직장에 들어가고선 취미로라도 그림을 시작할 줄 알았다. 절대 아니었다. 난 아무 꽃도 피우지 않았다. 내가 떨어진 학교들을 포함한 전국의 수많은 미대 졸업생들이 1년에 몇천 명씩 나온다. 미술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건 그들의 일이다. 어차피 내가 핀 꽃은 예쁘지 않을 것이니 피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꽃은 피워야 그 꽃이 무슨 종인지를 안다. 어릴 때 저마다의 떡잎을 빼꼼 드러내지만 그대로 노력해서 꽃을 피워내는 사람은 소수이다.
온 기력이 다 빠진 채로 퇴근한 나는 꽃을 피우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땅 속에서 숨죽여 잠만 자는 것을 택했다. 직장인이 된 후로 난 줄곧 무기력 환자였다.
무기력할 땐 모든 것이 사치스럽다.
에너지를 뺐는 모든 것을 더 빠르게 ‘해치워야’ 했다.
난 요리할 때도 가성비를 따졌다. 간단히 할 수 있는 원팬 요리를 좋아했다. 밥 따로, 반찬 서너 가지 따로, 국 따로 요리하는 것보다 요리시간과 설거지 시간을 모두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프라이팬 하나에 김치든 버섯이든 넣고 다양한 소스와 버무려 볶다가 밥을 얹어 먹는 음식들. 메인 요리 하나도 이렇게 가성비를 따지는데 그저 곁들일 뿐인 반찬들은 더욱더 홀대했다. 접시는 사치. 메인 요리 위에 김치를 숭덩숭덩 올리고 진미채, 계란 장조림도 밥에 스며들든 말든 철퍼덕 얹어 식탁으로 가져갔다. 심지어 남는 식재료들을 처리하다 보니 사 먹는 편이 가성비가 좋다고 판단해서 배달음식을 많이도 이용했다.
그렇게 노력 대비 효율성을 따지던 나는, 서른이 넘을 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하루하루 그저 열심히 자라고 꽃을 피워내는 자연을 보며 반성하게 된 나는 꽃꽂이를 시작했다. 어쩌면 3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갈 때 심경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랄까? 이제는 정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합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꽃이 있어서 시작한 것일 수도.
막연히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오롯이 내가 좋아서. 꽃을 다듬고, 꽂고, 함께 살고 있다. 무언가에 몰두해서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어본 게 얼마만이지? 꽃꽂이를 하는 내 모습이 옛날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림을 그렸던 내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그렇게 나는 요즘 그토록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죽어가는 것에 물 주기’를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지금의 하루가 오롯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해야만 하는 회사일이 아니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순수하게 내 의지로 하는 일들은 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만들어준다. 내가 온전히 삶을 내 의지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또한 일주일, 길게 가면 이주일을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을 보면 마치 모래시계를 보는 것 같다. 예전 TV와 소파만 있던 아파트 거실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무기력증에 핸드폰만 보고 자기 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때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낮은 주택으로 이사 온 지금은 ‘창 밖’에서는 푸르른 자연을, 그리고 집 안에서는 직접 꽃꽂이한 화병으로 ‘유한함’을 눈으로 보며 살고 있다. 단풍이 드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알아차리듯, 집에서 보는 꽃 역시 우리에게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어제와 오늘은 엄연히 ‘또 다른 하루’ 임을 보여준다. 월화수목금 출근-퇴근을 반복하다 보면 깜빡하게 되는 하루의 ‘유한함’과 그로 인한 ‘소중함’과 ‘아쉬움’을 느끼게 해 준다.
오늘은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이라는 꽃말을 가진 ‘마트리카리아’를 화병에 꽂아보았다.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었다.
일주일 동안 또 열심히 꽃 피워보자.
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