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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화 Oct 29. 2022

이 땅은 정말 최악이야

라는 불평도 없이,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 생명들을 만나다


오전 7시에 일어나서 퇴근하면 오후 7시. 하루 12시간의 자유를 돈과 맞바꾸었다. 아니 딱 그 정도 시간만 팔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절여진 나는 퇴근 후에도 온전한 나로 돌아가지 못했다. 마치 간장에 푹 재워진 달걀장조림처럼. 간장에서 빠져나왔어도 다시 새하얀 달걀이 되지 못하는 그것처럼 나 또한 퇴근 후에도 나로 돌아가지 못했다. 원래부터 회사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나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내 안에 있던 모든 욕망들을 무시했다. 그림? 미술? 예~술? 급하지도 않고 그런 거창한 것을 하기엔 지금은 이미 너무 늦었다. 지금 해봤자 무엇이 달라질까 싶었다. 더욱이 내 안을 가득 채운 피곤함과 스트레스는 퇴근했다고 내 몸 안에서 말끔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퇴근 후, 당장 맛있는 것으로 배를 채우거나 흥미로운 남의 이야기가 가득한 자극적인 유튜브로 시각과 청각, 미각을 채웠다. 그게 훨씬 더 달콤했으니까. 내 개인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모든 것을 미뤄두었다. 더욱더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오감을 뛰어넘는 깊은 만족감도, 성취감도 없었다.


앞마당 배롱나무에서 핀 백일홍. 까치가 앉았다.


집 앞 배롱나무에서 붉은 백일홍이 피기 시작했고, 연분홍 수국이 빈티지한 색감을 내며 지기 시작했다. 이제 막 중복이 지난 시점에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내년에도 똑같은 패턴을 보여줄 것이다. 고운 아이보리색 목련을 시작으로 연분홍 벚꽃과 보랏빛 라일락, 진분홍의 진달래, 하얀 이팝나무, 빨간 장미 순으로 피어나다가 푸른 수국으로 여름이 왔음을 알려줄 것이다.

이번 여름에 만났던 수국. 앞마당보다 차 소음이 더 큰 뒷마당이어도 불평 없이 꽃을 피워냈다. 꽃이 진 후, 늦지 않게 가지치기를 해주었다. 다음 해에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죽음이 올 것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 생명들을 만났다.


우리 집 마당에서 시기에 맞게 꽃을 피워내는 생명들을 보니 새삼 신기했다. 자연스레 집이 아닌 다른 곳의 꽃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시의 조경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계획되어 설계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푸르른 계절에 큰 덩치로 연분홍빛 꽃을 만개시켜서 온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벚꽃나무 정도의 존재감에만 심장이 반응하던 무심한 나였다. 그런데 이번 봄부터 꽃과 나무에 관심이 생긴 후에는 굳이 애써서 꽃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꽃을 실컷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월에 덩굴에서 피어나는 주황빛 꽃이 보이면 그건 이름도 우아한 능소화이다. 8월에 낮고 둥그런 나무에서 연보랏빛 잎에 빨간색이 언뜻 보이는 꽃을 보게 되면 그건 무궁화이다. 세상에서 제일 연약해 보이는 얇고 고운 빛깔의 무궁화는 가까이서 관찰하면 생각보다 바람에 얼굴이 마구 흩날리지 않는 올곧은 강인함을 보여준다. 누가 대한민국 국화 아니랄까 봐.



남산 밑에서 8월에 보았던 무궁화가 이제는 다 진 줄 알았는데. 9월 말이 되어가는데 무궁화나무들이 또 보였다. 인천 국제공항 고속도로 옆 무궁화나무 무리들을 보고 저 나무들이 언제부터 저기 있나 싶었다.


작년에도 꽃을 피웠었던가? 나는 지금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왼편에는 매연과 소음 가득한 고속도로, 오른편에는 웬만한 차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공항철도를 두고 저렇게 씩씩하게 꽃을 피워내다니? 자연의 사이클을 관찰하며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꽃을 피우지 않았지?


이번 봄과 여름에 보았던 생명들은 이제 모두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를 잃고, 겨울이 되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매년 꽃을 피워내겠지. 나는 지금까지 약 30년의 시간을 '대학'이나 '취업' 등 좀 더 거창해 보이는 것에 신경 쓰다가 결국 내 마음에 드는 성과를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그동안 나와 나이가 같은 어떤 생명은 30번의 꽃을 피워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이 비옥하지 못하더라도, 소음이 심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벌의 선택을 받거나 씨를 날리기 위해 묵묵히 꽃을 피워냈다.


작더라도 내가 올해 피울 수 있는 꽃은 무엇일까?

 

하루에 단 두세 시간밖에 여유가 안나는 직장인이라도 그때 내가 작게나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먼저 어디서 보고 들은 ‘글쓰기’부터 시작했다. 현재 내가 왜 직장에서 만족하지 못하는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쓰고 또 썼다. 따로 부업은 왜 하고 싶은 것인지, 더 많은 돈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무언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기고 싶은 것인지.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글로 풀어놓으니 그 모습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는 직장인에게 글쓰기는 아주 효과적인 ‘꽃 피우기’ 방법 중 하나다. 글을 쓰고 나서야 내 꿈의 형태를 이제 좀 알게 되었다. 내 안의 무언가를 형상화하는 것. 나만의 꽃의 모양을 잡아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였다.    


미술을 공부해서 미대에 가고 싶었고, 언젠간 기부 관련 소셜 벤처 사업을 하고 싶었다. 꽃과 나무를 만나게 된 후, 이 모든 꿈들을 엮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동안 출근하기가 싫어 아침이 두렵던 내가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고, 일주일이면 죽을 텐데 돈 아깝다며 사지 않던 꽃을 사기 시작했다. 자연을 안으로도 들여오기로 한 것이다. 퇴근 후 깜깜해진 저녁에도 맘껏 꽃과 함께하기로 했다.


프리츠한센 이케루 화병에 꽂은 화이트 리시안셔스. 꽃이 적어도 멋지다.


매일 화병의 물을 갈아주고 줄기를 다듬어주며 자연의 정수인 꽃과 나무들을 돌보았다. 티슈만 올려져 있던 식탁엔 이제 꽃이 놓여있다. 창 밖이든 집 안이든, 자연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잠시 엄마품에 들어온 것 같은 아주 옅은 황홀함을 느낀다.

저 꽃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에너지를 주기 때문일까.

그 생명력에서 오는 에너지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것 같다. 내 오랜 친구인 무기력이 요즘은 어딜 갔는지 도통 다시 찾아오질 않는다. 우울함과 무기력에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던 30대 직장인이 자연을 만나고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그저 사는 대로 죽어가던 인간에서, 자연처럼 온 힘을 다해 꽃과 잎을 피워내며 죽어가기로 했다.


뒷마당에서 피었던 보랏빛 아네모네. 지금은 사실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렇게 자연처럼 살고, 자연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더 건강하던 10대, 20대를 지나 몸도 피로하고 한정된 시간만 쓸 수 있는 30대 직장인이 되어서야 뒤늦게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비록 뿌리를 내릴 땅이 비옥하지 못하더라도,
주어진 환경에서 후회 없이 노력해서 꼭 나만의 꽃을 피워내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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