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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화 Oct 29. 2022

'고층의 남향'집에서 '저층의 서향'집으로

'유한함'과 가까워지다



창 밖으로 무엇이 보이는가
고층에서 사는 게 행복할까, 아니면 저층에서 사는 게 행복할까?


감히 둘 다 살아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평수나 인테리어 등의 조건들이 비슷하다고 했을 때 은 후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로변과 가까워 절대적으로 자동차 소음에 영향을 받는다거나 주변에 조성된 조경 환경 차이가 많이 난다면 당연히 고층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조건을 갖춘 동일한 아파트 단지 내 같은 동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는 창 밖으로 무엇이 보이는지가 정신건강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이긴 예시이긴 하지만… 63빌딩 꼭대기에서 보는 흐린 날의 전경
이제는 항상 고층을 고집하지 않는다. 흐린날이어도 여름의 파크뷰라면? 오히려 저층방을 배정해주시면 완전 감사하다. 창문 너머의 저 푸르름까지도 이 방의 일부인 듯 하다.


이 질문은 마치 '하늘을 보고 살래, 땅을 보고 살래?'라는 질문과 비슷하다. 당신은 모든 것을 녹이는 따뜻한 봄 하늘과 천고마비의 가을 하늘 각각을 구별할 수 있는가? 맑은 하늘에 귀여운 뭉게구름은 사치일 뿐.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오늘 하늘은 미세먼지가 보통이라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가 감탄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곳은
확률적으로 ‘하늘’보다는 ‘땅’이다.


끝이 없는 무한한 하늘과 달리 땅은 유한하다. 지구의 면적은 정해져 있으며 이 땅에서 피어나는 생명들의 시간 역시 유한하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 우리 인간은 끝없는 하늘보다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땅과 더 닮았다고 볼 수 있고, 그래서인지 우리는 땅에게서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지난 4월의 한옥마을을 더 그리워지게 만드는 건 그때만 볼 수 있었던 저 벚꽃나무 때문일수도.


계절마다 '벚꽃놀이, 수국축제, 단풍놀이, 눈꽃축제' 등을 즐기며 살아가는 우리들.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자연에 황홀해하는 마음도 더 커진다. 우리네 부모님들을 보면 그렇다. 마치 힘들 때면 본능적으로 엄마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과 비슷한 걸까. 우리는 우리의 뿌리인 땅, 즉 자연에게서 치유받는다.     


처음엔 나도 이런 자연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몰랐다. 그래서 신혼집을 고를 때도 이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험난한 바깥 사회에서 돌아와 안식처가 되어줄 '집'을 처음 살 때 내가 고려했던 것들은 외부보다는 내부 인테리어, 혹은 나중에 잘 되팔 수 있을지 등의 경제적인 문제 정도였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그랬다. 오늘의 소소한 행복보다는 좀 더 많은 돈과 거창한 꿈, 이를 위한 좋은 학벌 등을 쫓았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고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었다.

내겐 너무 먼 중앙공원의 싱그러움

그렇게 아파트도 고층을 선택해서 행복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서 보는 하늘은 매일 내게 감동을 주기엔 너무 변덕스러웠다. 생각보다 흐리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이 많았고, 기후변화 탓에 비가 오는 날도 너무 많았다. 창가에서 보이는 자연이라곤 저 멀리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중앙공원 정도였는데, 그 푸르름과 싱그러움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엔 너무 멀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신경 써서 조성한 조경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벚꽃'이 피거나 '단풍'이 들었다는 자연의 강렬한 이벤트 정도는 있어야 간신히 창문에 꼭 붙어서 아래를 열심히 내려다보아야만 아주 잠깐 보고 행복해할 수 있었다.


물론, 가끔씩은 무한한 하늘에도 '끝이 있기에 더 아쉽고 찬란한 유한함'을 볼 수는 있었다. 무한한 에너지를 내뿜는 태양이 땅과 가까워졌을 때, 땅의 푸른 생명의 색을 뛰어넘는 엄청난 에너지의 색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유한함. 바로 '노을'이다.


뒷방 작은 창문에 꼭 붙어서 감상했던 그날의 노을빛


우리는 그나마 이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 중 '주황빛 노을'을 제일 좋아했는데, 그마저도 북서향인 뒷방 작은 창문으로 맑은 날에만 볼 수 있었다. 겨울철 퇴근길에는 이미 해가 져버려서 볼 수도 없었다.


매일 푸르른 땅의 자연과 더불어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보통 남향집을 선호한다. 서향집은 해가 늦게까지 집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여름엔 지옥이라며 말리곤 한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자연이 주는 마지막 위로이자 선물인 노을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깟 더위쯤이야, 여름에 두 달 정도만 고생하면 된다. 다음에는 꼭 서향 혹은 남서향 집으로 가자고 남편과 다짐했다.


집이 많이 업그레이드되긴 했다. 그래도 내심 걱정됐던 ‘서향’ 살이


그리고 현재 우리는 '집 고르기 꿀팁' 혹은 '풍수지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선택한 두 번째 집에 대만족 하며 살고 있다. 집값 문제로 3층의 신혼집 대신 16층을 선택했었던 우리는 지금 3층에 살고 있다. 창문에 딱 붙어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아도 바로 푸른 나무가 보이는 집에서 사계절을 온전히 느끼며 살고 있다.


그리고 남향이 아닌 서향집에서 살고 있다. 노을의 강렬한 에너지는 미세먼지도 뚫는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만 아니면 평일에도 편안히 식탁에서 저녁을 먹으며 주황빛 혹은 보랏빛 노을을 감상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나와 남편 모두 결혼 전과 후 모두 고층 남향집에서 살았었고 '저층의 서향집'에 사는 것은 둘 다 난생처음인데, 드디어 우리에게 꼭 맞는 집 취향을 찾았다. 앞으로는 남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오롯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집에서만 살기로 했다.


다음 집도, 그다음 집도 모두
나무와 노을이 잘 보이는
저층의 서향집에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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