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훼장식 기능사 시험을 준비하며 배운 것
아차, 또 겉멋이 들 뻔했다.
한국 꽃꽂이에 매료된 나는 꽃꽂이를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졌다. 한국 전통 꽃꽂이를 연구하는 협회 홈페이지에서 사범자격증 따는 방법을 검색했다. 정기적으로 전시회에 출품도 해야 하네. 아니지, 한국 꽃꽂이 말고도 다른 유러피안 형태도 다 잘할 수 있어야 어디 가서 플로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얼핏 유학도 다녀온다고 들었는데. 다른 과정은 무엇이 있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플로리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독일 플로리스트 fdf준비과정? 영국 런던 플라워스쿨 유학과정? 런던에서 살구색 장미와 하얀 수국이 가득 들어간 꽃바구니를 들고 웃는 내가 떠올랐다. 와 멋있다. 디자인대학원 화예 디자인 전공? 서울 유명 대학 졸업식에서 석사 학위증을 들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누가 뭐래도 꽃 분야에서 완벽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겠다.
직장인으로서 퇴근 후 대학원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체력이 될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또 옛날처럼 높은 목표만 그리고 있구나. 그림도 안 그리면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홍대 미대를 지원했던 내가 떠올랐다. 내가 왜 꽃꽂이를 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자. ‘내가 꽃을 만지며 치유한 과정을 알리고 한국 꽃꽂이를 통한 생활 꽃꽂이를 알리고 싶다. 그리고 후에 제2의 직업으로 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라는 꿈이었다. 전자는 글을 써서 소셜미디어에 차근차근 공유하면 될 것이고, 후자 역시 학위가 필수적인 꿈이 아니었다. 이 꿈을 꼭 대학원에 가야만 이룰 수 있는 건가? 물론 기초부터 심화까지 꽃에 대해 차근차근 배우면 좋겠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관련 학과와 자격증 없이도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낼 수 있는 시대이긴 하지만 식재료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나 사업 관련 공부를 하면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직장까지 그만두고 비싼 학비를 들여 몇 년간 공부하는 것은 내 꿈에 비해 너무 사치스럽다고 느껴졌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었다. 꼭 미술대학교에 가야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대에 집착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다시는 지나친 목표를 잡지 않기로 했다. 또한 가정이 있는 30대 맞벌이 아내로서 무작정 남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다.
내 꿈에 맞는 현실적인 목표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작지만 내가 올해 피울 수 있는 꽃은 무엇일까? 그래, 대부분의 플로리스트가 가지고 있는 기초적인 자격증인 화훼장식 기능사를 따자. 권위 있는 협회에 입회하거나 대학원에 가는 것보다는 비교적 화려해 보이지 않는 소박한 자격증이었다. 국가기술자격증이라 국비 지원되는 학원도 많았다. 유학이나 대학원 학비에 비하면 학원비도 훨씬 저렴했다. 지금 내 상황과 꿈에 맞는 현실적인 목표였다. 다행히 집 근처 가까운 기능사 준비 학원이 있어서 바로 등록했다. 지금 생각하니 여러모로 기능사 자격증을 목표로 한 것이 잘한 것 같다. 일단 현실적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학원을 다닐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학위를 따는 일이나 너무 어려운 시험은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 준비하기엔 부담이 된다. 돈과 시간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능사가 그렇게 쉬운 자격증도 아니다. 실기시험 합격률이 50% 정도로 나름 만만한 시험이 아니었기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충분히 되었다.
사실 배우고 싶었던 한국 꽃꽂이 작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왕 유학이나 대학원 진학이 아닌 현실적인 목표를 정했다면 바로 하고 싶은 작품들을 배워도 됐었다. 화훼장식 기능사 시험과제들은 정해진 형태를 꼭 지켜야 했다.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꽃꽂이 작품들의 제작 기술을 배우는 일이었다. 실기시험 과제인 ‘반구형, 직립형, 수평형, 이등변 삼각형 등’ 딱 떨어지는 모양이 시각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어차피 예쁘다고 하는 사람도 얼마 없을 텐데,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런 디자인을 왜 배우나 했다. 누가 봐도 요즘 유행에 뒤처진 방식의 작품들이었다. 소셜미디어에 올릴만한 아름다운 형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수업을 들을수록 왜 이 형태들이 실기시험 과제들인지 알 것 같았다. 응용도 기초가 있어야 할 수 있다. 주어진 형태를 구현해보는 경험들이 기초를 탄탄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느꼈다. 정해진 모양으로 꽃을 꽂아야 한다는 정답이 있으니 무엇을 틀렸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잘못된 방법으로 꽂았을 때 선생님이 그 부분을 지적해주시면 나는 충분히 이해한 후 보완할 수 있었다. 이렇게 꽃을 꽂으면 이런 모양이 나온다는 꽃꽂이의 기본기를 잘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 꽃꽂이 입문반 선생님께서도 내가 일단 기능사 시험 준비를 하고 다시 수강한다고 하니 잘한 선택이라고 하셨다. 기초를 알아야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더 쉬울 것이라고 얘기해주셨는데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처음부터 변주와 응용이 가득한 형태만을 꽂아본다면 실력 향상이 더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을 손보아야 더 조화로운 구성과 형태가 나오는지 모르는 채 긴가민가했을 것 같다. 물론 타고나길 잘하는 사람들은 기초 없이도 완벽한 그림을 그리거나 완벽한 노래를 할 수 있겠지만, 나를 비롯한 대다수는 타고난 영재가 아니다. 내가 원근법을 무시하고 있는지, 내가 목으로만 노래를 부르는지 점검해보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제는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형태를 내가 손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릴 적, 내가 상상하는 대로 그림이 그려지던 때가 떠올랐다. 친구들이 넌 꼭 화가가 되어야 한다며 칭찬하던 그때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처음엔 그저 연필을 쥐어봤겠지. 그리고선 찍. 찍-. 아무것도 아닌 점과 선을 먼저 그렸었겠지. 그러다가 점점 자신만의 꽃을 그렸겠지.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이 일을 믿고 계속 꽃을 만지다 보면, 나도 언젠가 아름다운 꽃꽂이 작품을 그릴 수 있겠지.
과거의 내가 차근차근 내 그림실력을 다듬어갔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