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고객경험, 베스트바이(Best Buy), 베타(b8ta)
하이마트에서 제품을 확인한 후 네이버에서 최저가를 검색해보거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의 내용을 확인한 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일이 아닙니다. 오프라인에서 실물을 확인했기 때문에 구매 실패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고, 온라인에서 구매했기 때문에 돈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온라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쿠폰이나 적립 등을 사용하면 혜택은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하루 이틀 기다리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일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구경만하고 구매는 가격이 더 저렴한 온라인을 이용하는 것을 '쇼루밍(Showrooming)'이라고 합니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요. 물론 쇼루밍족이 증가하면 오프라인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판매를 목적으로 매장을 꾸미고, 재고를 보유하고, 판매 직원을 배치했는데 오프라인에서는 구경만하고 온라인에서 구매하기 때문에 존재자체에 위협을 느낄수 밖에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오프라인 기업은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들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스스로에게 이익에 큰 방식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구매하는 것이지 온라인인지 오프라인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기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온·오프라인에서 통합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자체가 디지털로 전환(Digital Transformation)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전환' 자체가 아닙니다. 기업이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다고 해서 떠난 고객이 다시 돌아오거나, 관심 없던 고객들이 눈길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 백화점의 상징으로 꼽히는 ‘시어스(Sears)’와 전 세계 어린이의 지상낙원이었던 ‘토이저러스(Toys R Us)’가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지 않아서 폐업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많은 기업들이 변화를 시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고객관점의 접근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시어스와 토이저러스가 처음부터 온라인에서 구매한 뒤 가까운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온라인에서 구매한 물건에 대한 교환과 환불 등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가능하도록 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어스와 토이저러스는 온라인을 오프라인의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접근했고, 고객관점보다는 기업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아마존에게 고객을 빼앗긴 것입니다.
현재 진행형이긴 하지만 국내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유통강자 롯데는 지난 20여년동안 디지털 전환을 지속적으로 시도했으나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DNA 자체가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온라인을 보조적인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신세계(이마트)는 마켓컬리와 쿠팡의 새벽배송에 대응하기 위해 SSG닷컴(쓱닷컴)을 별도법인으로 분할해서 역량을 키워왔습니다.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서 네이버, 쿠팡과 함께 온라인에서 3강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SSG닷컴 임직원의 절반정도가 IT 개발자이고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등의 오프라인 매장과 물류망 등을 최적화한다면 온오프라인을 통합하는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객입니다. 판매자 관점에서 바라보면 기업은 엉뚱한 의사결정을 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호주의 한 식료품 매장은 오프라인에서 구경만하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자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고객에게는 관람료 받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했습니다. 상품을 구매하면 5달러를 돌려주고, 단순히 구경만 할 경우에는 5달러의 관람료를 받겠다는 발상은 오프라인 매장들이 얼마나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입니다.
하이마트와 같은 미국 최대의 가전제품 유통사인 베스트바이(Best Buy)도 한때 이러한 실수를 했습니다. 쇼루밍 현상을 막기 위해 사진과 음성, 바코드로 가격을 비교하는 아마존의 프라이스 체크(Price Check) 등을 이용할 수 없도록 상품의 바코드를 바꿨다가 소비자들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베스트바이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베스트바이는 오프라인을 단순한 상품의 판매장소가 아닌 고객과의 접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발상의 전환을 하게됩니다. 백화점에 입점한 개별 브랜드가 각자 개성을 살려 매장을 꾸민 것처럼, 베스트바이 오프라인 매장을 쇼케이스 장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삼성,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대형 업체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베스트바이 매장내에서 자체 브랜드존을 선보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존과 같이 진열대 하나 사이로 여러 회사 제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업체만의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이 자체 브랜드 쇼케이스 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베스트바이 매장에 입점한 애플존에는 애플스토어에 있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원목테이블이 놓여 있어 베스트바이 안에서 애플스토어를 방문한 느낌이 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자제품 제조사의 경우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면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해야합니다. 그런데 미국 전역에 오프라인 매장을 확보하려면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매장을 직접 운영하게 되면 여러가지의 고정비가 발생합니다. 이에 베스트바이 오프라인 매장을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임대해주고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형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개편했습니다. 삼성과 애플 등은 오프라인 운영에 대한 비용부담을 해소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베스트바이에서 다양한 제조사의 제품을 비교 체험할 수 있고, 베스트바이는 이를 통해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윈윈인 게임인 것입니다.
베스트바이의 핵심 강점은 규모의 경제입니다. 미국에서만 1,000개 이상의 매장을 갖고 있는 베스트바이는 규모에서 절대적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신제품을 출시한 기업에게 베스트바이는 제품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채널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베스트바이가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장소였다면, 지금의 베스트바이는 전자제품을 체험하는 장소로 변한 것입니다. 온라인이 편리하고 저렴하기는 하지만 온라인에 올라면 몇 장의 사진만 보고 구매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구매 전 제품을 만져보고 경험할 수 있는 체험존으로 변신하자 수많은 기업들이 비싼 입점료에도 베스트바이에 입점하고 있습니다.
베스트바이는 온라인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매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이 아마존이 아닌 베스트바이에서 구매하도록 구매연결성을 높인 것인데요. 대표적으로 '프라이스 매치(Price Match)' 가격전략을 들 수 있습니다. 제품 가격을 온라인 최저가를 기준으로 판매하고, 만일 베스트바이에서 판매한 제품의 가격이 온라인 최저가보다 비쌀 경우 차액을 보상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더이상 베스트바이에서 체험한 제품을 온라인에서 검색해서 구매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수많은 오프라인 매장이 어려움을 겪은 것과는 달리 베스트바이는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바로 베스트바이 오프라인 매장을 풀필먼트(Fulfilment) 거점(Epicenter)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풀필먼트'는 고객의 주문에 맞춰서 물류센터에서 제품을 고르고(picking) 포장해(packing) 배송(delivery)하고 고객 요청에 따라 교환·환불까지 해주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베스트바이는 이를 위해서 매장은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상품을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당일에 상품을 원하든지, 한 시간 안에 상품을 원하든지, 매장에 직접 방문해서 상품을 픽업하고자 하든지, 고객이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는지에 따라서 타임 프레임 전략을 짜고 있는 것입니다.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디지털 경험, 배송과 관련된 플필먼트 인프라에 투자를 하지 않은 기업은 고객의 니즈에 충분이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점에서 베스트바이의 '풀필먼트 전략'은 그 자체로 큰 진입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비용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오프라인은 온라인에 비해 불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프라인은 매장을 오픈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고정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특정 상권을 중심으로 운영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도 온라인에 비해 불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프라인의 단점을 뒤집으면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존, 무신사, 카카오프렌즈처럼 온라인 기업들이 왜 오프라인에 매장을 오픈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에 비해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고객에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고객경험을 제공하고, 온라인을 도입해서 상권의 한계를 극복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오프라인은 상품을 전시해놓고 파는 곳이라는 상식을 뒤집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전자기기 매장 '베타(b8ta)'가 대표적입니다. 2015년도에 창업한 베타는 매장 천장에 20여대의 특수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매장에 방문한 고객들의 움직임을 수집 및 분석합니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판매하는 것으로 오프라인 유통의 미래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베타는 체험형 매장인 플래그십스토어와 쇼룸 등을 통해 소비자 경험(행동) 데이터를 제조업체에 제공하는 비즈니스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데이터로 수집된 데이터뿐만 아니라 직원과 고객의 대화를 통해 얻은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기 때문에 제조업체는 제품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베타(b8ta)는 다른 매장에서 볼 수 없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과거 오프라인 유통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 EX)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타는 베스트바이와 같이 제품판매로 돈을 벌지 않습니다. 매장 내에서 판매된 금액은 100% 메이커에게 돌려줍니다. 대신 오프라인 매장의 진열공간에 대한 비용을 받습니다. 제품하나를 8개의 베타 매장에 진열하는 조건으로 월2,000달러를 과금합니다. 베타는 매장 천장에 15~24대의 카메라를 설치하여 고객들의 움직임을 분석합니다. 성별과 연령대와 같은 인구통계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어떤 제품 앞에서 주로 발걸음을 멈추는지,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를 분석해서 메이커에게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제조사는 우리 제품에 관심이 있는 고객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사용자들의 평가는 어떤지 등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베타를 찾은 고객들도 즐거워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는 신제품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습니다. 제품을 사용해본 후 구매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담도 적습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베타의 각 매장 월 평균 방문객은 2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온라인의 가격경쟁력에 밀려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것만 갔던 오프라인 매장이 새롭게 변신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의 강점을 흡수하면서 온라인이 할 수 없는 일들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