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을까? 백화점 리테일러의 비즈니스모델
백화점은 부동산 임대로 돈을 벌어왔습니다. 좋은 위치에 대규모 건물을 짓고 유명 브랜드들을 입점시킨 후 이들에게 판매수수료를 받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힘의 논리가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백화점은 브랜드로부터 상품을 외상으로 매입합니다. 그리고 기간 동안 판매된 제품에는 수수료를 받고, 판매되지 않은 제품은 반품을 하는 방식으로 재고 위험을 헤지(hedge) 해왔습니다. 명품 브랜드에게는 낮은 수수료를 받고,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브랜드에게는 높은 수수료를 받는 차등을 두었습니다.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브랜드들에게는 불공평한 일이었지만 기업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화점은 표면적으로 유통업으로 분류되지만 업(業)의 본질은 부동산 임대업입니다. 소비자에게 백화점은 고가의 상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포지셔닝되었고, 실제 백화점을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들이 있었기 때문에 백화점의 이러한 전략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온라인은 저가 상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인식되었고, 해외직구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번거로움과 리스크가 존재했습니다. 아웃렛이나 온라인몰, 해외직구, 병행수입 등으로 명품 브랜드가 판매는 되고는 있었지만 백화점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변화는 천천히 진행되는 듯싶다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격변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슈퍼갑(甲)의 위치에 있었던 백화점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D2C(Direct to Consumer·DTC)와 플래그십 스토어를 들 수 있습니다.
D2C는 제조사가 백화점과 같은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온라인으로 직접 판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경 기업 와비 파커, 면도기 기업 달러쉐이브, 화장품 기업 글로시에, 매트리스 기업 캐스퍼와 같은 신규 브랜드뿐만 아니라 나이키, 로레알, 구찌, 루이뷔통 등 오프라인 채널 의존도가 높았던 기업들도 D2C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스포츠 의류·용품 업체 나이키는 "아마존에서 안 팝니다"라며 탈(脫) 아마존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제조기업이 매출이 보장된 거대 유통망을 등지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그럼에도 제조기업이 D2C에 뛰어든 이유는 수익 개선과 고객 경험을 최적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유통 채널에서 판매하지 않으면 지불하는 수수료를 아껴서 수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통업체의 프로모션 등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적인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브랜드 경험은 플래그십 스토어 방식을 활용합니다. 나이키가 명동에 선보인 '나이키 서울'이 대표적입니다. 3층 규모로 구성된 나이키 서울에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스포츠와 소비자를 더욱 가까이 연결하는 나이키 라이즈(Nike Rise) 콘셉트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정보는 물론 나이키 NTC, NRC 앱의 활동 통계 등 스포츠에 필요한 영감, 정보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3층 높이의 디지털 아트리움 스크린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나이키는 혁신적인 디지털 경험을 통해 스포츠, 도시, 그리고 소비자를 하나로 연결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여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고, 리테일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백화점 일변도의 전략을 버리고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전략을 취하면서 서울 한남동과 청담동은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 둥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태원과 한남동 일대는 유명 글로벌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 성지로, ‘감각'으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려는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프랜차이즈와 레스토랑 등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내놓라 하는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고 있습니다.
이태원에 문을 연 '구찌 가옥'이 대표적입니다. 구찌 가옥은 자기표현과 개성을 중시하는 구찌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태원의 문화적 전통과 자유로움, 한국 전통의 집이 주는 멋스러움에 구찌만의 우아하고 폭넓은 컨템퍼러리 감각을 더했다고 합니다.
강북에 이태원과 한남동이 있다면 강남에는 청담동이 있습니다. 백화점과 면세점에만 입점해있던 이탈리아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앤아펠,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펜디, 프랑스 패션 브랜드 생로랑, 스웨덴 가전 브랜드 일렉트로룩스 등이 청담동에 새롭게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습니다. 공실률이 높았던 청담동 명품거리는 2019년에 샤넬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한 후 루이비통과 디올 등이 매장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청담동 명품거리 플래그십 스토어 운영은 임차료와 운영비 등을 고려할 경우 백화점에 입점하는 것보다 수익성이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이 앞다퉈 청담동에 매장을 개점하는 것은 명품거리라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청담동에 대표 매장을 두면 그 자체로 ‘명품 브랜드’로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화점만을 고집하던 명품 브랜드들이 D2C와 플래그십 스토어로 생각을 바꾸고 있고, 온라인을 활용해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결되면서 백화점 업태는 과도기에 놓여있습니다. 확실한 건 과거와 같이 특정매입 시스템을 통해 임대수수료로 안정적인 이익을 내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백화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신세계 스타필드와 같이 부동산 임대업의 특징을 강화하거나, 더현대 서울과 같이 고객 경험을 강화하거나, 직매입과 자체 브랜드(PB) 비중을 높여 유통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동산 전략으로 성장전략을 취하고 있는 곳으로 신세계를 들 수 있습니다. 신세계는 스타필드 하남, 코엑스, 고양 등 복합쇼핑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스타필드 하남'은 이마트의 부동산 개발 계열사인 신세계프라퍼티와 미국 쇼핑몰 개발사 터브먼이 합작해 만든 부동산 임대업자입니다. 1조 원을 들여 쇼핑몰을 지었고, 이 쇼핑몰에 입점한 300여 개 브랜드로부터 임대료를 받고 있습니다. 쇼핑몰 운영사업자가 아닌 부동산 임대사업자인 것입니다. 쇼핑몰을 관리하는 신세계 프라퍼티는 쇼핑몰의 총괄적인 관리와 마케팅만을 담당하고 쇼핑몰에 매장의 운영에는 별다른 관여를 없이 임차인으로부터 임대료를 받으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의 경우 규모나 운영 형태와 상관없이 법적으로 백화점 업종의 경우에는 본사 직원을 30% 이상 고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복합쇼핑몰은 매장 직원들을 매장에서 직접 고용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복합쇼핑몰의 운영 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입점 업체가 매장을 직접 시공하고, 세부적인 판촉행사도 직접 진행하기 때문에 복합쇼핑몰의 인력과 자본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통산업에서 백화점 시대가 저물고 복합쇼핑몰이 각광을 받을 거라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고객 경험을 강화하고 있는 곳으로 현대백화점을 들 수 있습니다. '더현대서울'은 절반 가량의 공간을 실내 조경과 고객 휴식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쇼핑을 통한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1층 입구에서부터 6층까지 건물 천창을 통해 내려오는 자연 채광을 맞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건물 전체를 오픈시키는 건축 기법인 보이드(Void)를 적용해서 한 위치에서 전체 층을 모두 볼 수 있는 개방감이 특징입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비즈니스가 전환되면서 시장 점유율보다는 고객의 관심과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쇼핑 자체로 보면 온라인이 더 편리하고 가격도 더 저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쇼핑을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현대 서울'은 상품을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되려는 것입니다. 시간 점유율로 백화점 비즈니스를 새롭게 정의한 것입니다.
'앨리웨이 광교'가 가능성을 보여줬던 것처럼 시간을 가치 있게 쓸 수록 해주는 오프라인은 매력적입니다. 멀리 나가지 않고 한 곳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방식대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생활을 즐길 수 있다면 사람들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을 찾을 것입니다. 가격이나 프로모션을 중심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소소한 문화를 즐기고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백화점 전체적으로 직매입과 PB상품을 강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직매입은 유명 브랜드의 재고 상품을 백화점 등이 직접 매입해서 기존 아울렛 제품보다 할인율을 높여서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오프 프라이스 스토어' 라고 정의합니다. 롯데백화점의 '탑스', 신세계 백화점의 '팩토리 스토어', 현대백화점의 '오프윅스'가 대표적입니다. 통상 '오프 프라이스 스토어'의 할인율은 최초 판매가 대비 40~70%로 통상적인 아울렛 제품 할인율인 30~50%보다 10~20% 포인트 가량 높습니다.
오프 프라이스 스토어는 온라인과 맞설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데다 다양한 브랜드들을 한데 모아 차별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 중심으로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데 모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오프 프라이스 스토어' 는 백화점의 새로운 수익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백화점은 자체 브랜드를 키우는 것에도 심형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백화점 이탈전략과 온라인 판매비중 확대는 백화점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백화점을 방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사만의 브랜드를 기획하는 것입니다. 자체 브랜드인 PB(Private Brand) 상품 비중을 높여가면 중간의 유통 단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가성비적인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제조와 유통은 각기 다른 역량과 전문성을 요구합니다. 제조업체가 아무리 D2C를 잘해도 유통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 만큼은 될 수 없습니다. 유통의 경우에도 직매입과 자체 브랜드(PB)를 넓혀간다고 해도 전문 제조기업보다 제조를 잘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비즈니스모델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유연성과 속도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온라인 전용상품으로 D2C를 강화하는 한편 자체 매장인 플래그십 스토어로 백화점을 이탈하고 있는 중입니다. 머스트잇, 트렌비, 캐피패션, 발란 등 명품을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명품 구매 플랫폼의 공격도 거세지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에 면세점 발목을 잡고 있던 내국인 면세 구매한도가 폐지되면서 백화점은 여러 곳의 도전에 직면한 상태입니다.
과거와 같이 안정적인 임대수수료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백화점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프라인에서는 디테일한 감성을 제공할 수 있고, 다양한 IT기술을 도입하여 고객경험을 높여갈 수 있습니다. 백화점을 '유통업'으로 정의하기보다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정의한다면 다양한 확장이 가능해집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되려면 공간과 상품의 매력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더현대서울'과 '스타필드 하남'과 같이 백화점은 이미 공간의 매력성을 키워가는 중입니다. 여기에 브랜드 헌터를 강화해서 백화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품과 브랜드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해외 명품 수입상으로 시작한 브랜드 헌터는 백화점 편집숍 시대를 거쳐서 온라인 명품 플랫폼으로 진화했습니다. 백화점이 오프라인에서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게 해 준다면 다른 어떤 채널보다 경쟁력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상품을 제안'하는 것이 유통업 본연의 역할일 것입니다.
오프라인은 오프라인의 장점이 있습니다.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들은 온라인이 할 수 없는 영역을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모델, 취향과 경험을 판매합니다 도서를 저자 직강 이러닝 강의와 도서, 강의교안 PDF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취향과 경험을 판매합니다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모델 사용설명서>에서 백화점과 같은 리테일업의 비즈니스모델을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