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메시지다"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
『미디어의 이해』 저자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맥루한은 옷, 집, 자동차, 철도, TV, 신문, 잡지, 라디오 등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미디어로 바라봤습니다. 넓은 관점으로 미디어를 이해한 것입니다.
맥루한에 따르면 기차도 미디어가 됩니다. 기차는 시간과 공간을 축소시켜 주면서 일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관점에서는 '이동의 편리함'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KTX를 떠올리면 '빨리 도착할 수 있다'가 연상되는 것과 같이 매체(미디어)의 중요성은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보다 그 내용을 담고 있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맥루한의 주장입니다.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를 출간한 1964년에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주장은 큰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디어는 TV, 신문, 잡지, 라디오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대량으로 도달하는 매체로 이들을 매스미디어(mass media)라고 불러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트브처럼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미디어들이 등장하였고 이를 소셜미디어(social media)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KBS, MBC,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이미지를 그렸던 사람들은 이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합니다. 미디어를 통해서 가보지 않았던 여행지를 구경할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소식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미디어(media)를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매체(媒體)는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물체. 또는 그런 수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어와 한자의 차이일 뿐 미디어와 매체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가 발달되면서 인간의 감각은 확장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카카오택시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개인과 택시는 서로 소통할 수 없었습니다. 대로변에서 택시를 잡는 사람은 뒷골목에서 빈채로 지나가는 택시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은 불편하였고 택시는 승객을 태울 기회를 놓칠수 밖에 없었습니다. 카카오택시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감각은 확장되었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찍고 택시를 호출하는 것만으로 주변의 택시와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른 것에 도달하게 하는 수단’을 미디어라고 정의한다면 카카오택시는 미디어입니다. 미디어가 사물이고, 사물이 미디어가 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면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책상, 자동차, 가방, 나무, 애완견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things)’이 ‘서로 연결되고(Internet)’ 있습니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시대가 되면서 카카오택시가 전통적인 콜택시 산업을 무너뜨린 것처럼, 에어비앤비(Airbnb)가 전통적인 호텔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중입니다.
사물이나 제품 자체가 미디어가 되는 길이 열리면서 오프라인이 미디어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24시간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오프라인의 실세계 공간과 상품 등에 링크가 내재되면 사람과 사물간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집니다. 제품이나 공간이 스스로를 설명하고 스스로를 판매하는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스타벅스의 MD상품이 대표적입니다.
스타벅스의 MD상품은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고 다른 커피전문점들도 MD상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프라인이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몇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20년도 1월에 진행된 방탄소년단의 MD상품입니다. 스타벅스와 방탄소년단이 콜라보한 머그컵, 파우치, 키링 등의 MD상품은 순식간에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서울 명동과 종로 매장에는 온라인을 통해 사전 공지된 것을 보고 급히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일본 팬들도 있었습니다. 콜라보한 MD 상품의 가격은 일반 MD와 비교해 2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지만 방탄소년단의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스타벅스 MD상품 구매를 대신해주는 '구매 대행' 요청을 주고 받기도 하고, 맘카페에서는 스타벅스 MD상품 물량이 더 많은 지점 정보를 공유하는 댓글도 달리기도 합니다. 이벤트가 끝나면 해당 상품이 당근마켓 등에서 처음에 구입한 금액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 접두사 're-(다시)'와 'sell(팔다)'를 붙어 리셀(resell)이라고 합니다.
방탄소년단과 스타벅스의 굿즈(goods) 상품은 공간과 제품이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스타벅스를 통해 사람들의 경험이 확장되었고 사업자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얻었습니다. 물론 방탄소년단(BTS)이라는 강력한 팬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커피를 판매하는 곳에서 다른 상품이나 콘텐츠의 가치를 전달하는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되면 유통채널로도 확장될 수 있고, 오프라인 공간에 광고를 유치해 수익을 낼 수도 있습니다.
오프라인이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뉴욕의 편집매장인 ‘스토리(STORY)’를 들 수 있습니다. 스토리는 오프라인 공간을 잡지처럼 매거진화한 곳입니다. 잡지가 매월 특정 컨셉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스토리는 1~2달 간격으로 매장의 주제를 정해서 인테리어와 상품을 변경합니다. 이때 상품에 엮인 이야기(story)를 발굴해서 소비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스토리는 스스로를 유통이 아닌 매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익모델은 상품 판매수수료가 아닌 입점 업체들로부터 받는 ‘편집비용(editing fee)’을 받습니다. 올림픽처럼 메인 스폰서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텔, 타깃, GE, 리바이스, 펩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의 글로벌 기업들이 스폰을 하고 있는데, 금액도 적게는 7만5천달러에서 많게는 7십5만달러에 달합니다. 이런 것들은 잡지가 콘텐츠 중간중간에 광고를 게재하여 수익을 얻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기업들은 제품을 판매할 목적도 있지만, 브랜딩 관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금 당장 판매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디어가 끌어모은 사람들의 관심을 바탕으로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강화해가는 것입니다.
스토리가 오프라인의 잡지와 같은 공간이라면 쇼필즈(Showfields)는 쇼룸의 미래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쇼필즈 매장을 경험하려면 사전에 티켓을 예약해야 합니다. 30분 단위로 일정고객을 모아서 입장시킨 후 매장내에서 공연처럼 상품을 소개합니다. 예를 들면 내추럴 커피 스크럽 제품으로 유명한 프랭크 보디(Frank Body) 쇼룸은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커피 원두를 직접 갈아볼 수 있게 합니다. 제품을 다각도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쇼필즈는 상품을 단순하게 진열해서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용하는 환경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쇼필즈에서 공연의 소재는 브랜드입니다. 배우들은 브랜드 쇼룸을 넘나들면서 공연을 하고, 고객들은 쇼룸의 상품과 배우들의 공연을 즐깁니다. 배우와 고객은 서로 호흡하면서 제품을 시연해보기도 하고 배우의 연극을 관람하기도 합니다. 공연의 흐름이 끊길 수 있기 때문에 매장내에서는 직접 제품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구매는 공연을 마친 후 마지막 코너인 '더 랩'애서 가능합니다. 놀이공원에서 하루 종일 신나게 놀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념품을 구입하는 것이 연상되곤 합니다.
쇼필즈의 수익모델은 판매수수료가 아닌 구독료입니다. 쇼필즈 매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수수료는 기업(브랜드)이 가져갑니다. 대신 쇼룸의 위치에 따라 구독료를 받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장소는 금액을 높게 책정하고, 티켓이 있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지역은 조금은 낮은 수준의 금액을 책정합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은 임대료가 비싸고, 이면도로에 위치한 곳은 임대료가 저렴한 것과 같습니다.
스토리와 쇼필즈가 많은 자본이 있어야하는 백화점처럼 느껴진다면 제주에 있는 '해녀의 부엌'은 규모가 크지 않아도 오프라인이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곳입니다. ‘해녀의 부엌’은 제주 구좌읍 종달리 부둣가에 방치됐던 오래된 어판장을 공연장 겸 식당으로 개조한 곳입니다. 사전에 예약받은 손님만을 대상으로 제주도 해녀의 삶을 주제로 150여분 동안 연극을 하고, 연극이 끝나면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로 식사를 제공합니다. 제주만의 콘텐츠인 해녀의 인생과 해녀가 잡은 해산물 요리는 그 자체로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콘텐츠가 됩니다. 연극을 볼 수 있는 공연장이기도 하고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오프라인을 콘텐츠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녀의 부엌'처럼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로 통영의 '남해의 봄날'과 제주도의 '재주상회'도 주목해볼만 합니다.
‘남해의 봄날’ 출판사는 『통영 예술지도』,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 『바닷마을 책방 이야기』와 같은 로컬 콘텐츠 중심의 책들을 펴내고 있습니다. 출판 인프라가 전무한 통영이라는 지역에서 로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곳입니다. ‘남해의 봄날’은 통영시 봉평동에 ‘봄날의 책방’이라는 오프라인 서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로컬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기획해서 책으로 출간을 하면서 지역의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다양한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컬 콘텐츠 기업으로 '재주상회'의 도전도 흥미롭습니다. 제주도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재주상회'는 로컬 매거진 <인iiin>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일 년에 네 번 발행하는 계간지 <인iiin>은 펴낼 때마다 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매거진을 시작으로 단행본을 물론 로컬 푸드 발굴, 굿즈 제작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동네에 오픈한 작은 서점들과 연합하여 콘텐츠 소비를 확장해가는 것도 특징입니다.
출판은 그 자체가 훌륭한 콘텐츠입니다. 과거와 같이 종이책으로만 출판을 규정하기보다는 IP 비즈니스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이책은 전자책으로 판매될 수도 있고, 대여를 할 수도 있고, 굿즈 상품이나 저작권 판매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콘텐츠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출판을 바라보면 가능성은 무긍무진해질 수 있습니다. <콘텐츠의 미래>저자인 바라트 아난드(Bharat Anand)는 "핵심 제품에 집중하는 조직은 콘텐츠를 새로 만들어 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쏟거나 콘텐츠의 가격을 올리려 한다. 하지만 이런 기업은 점점 성공에서 멀어질 확률이 높다. 제품 하나에만 집중하면 제품들 간의 관계를 보지 못하고, 따라서 다른 곳에 있는 큰 가치를 지닌 기회를 놓치게 된다."라는 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