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엄마의 나이는 여든 중반을 넘으셨다. 여느 딸처럼 난 엄마의 나이를 잊고 산다. 그러나 엄마의 나이를 헤아릴라 치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엄마의 나이를 가늠한다. 엄마는 나를 그 당시에 늦둥이라 부를만치 늦은 나이인 마흔에 나를 낳으셨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나이를 40에 나의 나이를 더한 숫자로 그녀의 나이를 센다. 그러나 마흔이 훌쩍 넘은 나에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왜냐면 요즘엔 나의 나이 또한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한국 나이와 만 나이의 혼동도 그 이유 일수 있으나 무엇보다 마흔이 넘으니 점점 나이 세기로 나이 들어감을 직시한다는 것을 외면하고 싶은 맘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지난 2021년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우리 가족 모두 직간접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듯하다. 특히 엄마는 한해 몇 번이나 병원 신세를 지는 상황을 겪었다. 한 번은 침대에서 내려오시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고, 다행히 아빠가 빠르게 발견하여 병원에 옮겨진 덕분에 오래지 않은 병원생활 끝에 그나마 회복이 되셨다. 그 후 독감 주사를 맞으러 가시던 길에, 또 어르신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시다가 그만 넘어지셔서 팔이 골절되는 일을 두 번이나 겪으셨다. 비록 엄마의 병이 크고 작게 병원 신세를 지게 하긴 했지만 팬데믹 상황에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정상적인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이별해야 하는 일과는 무관했기에 지난 한 해는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한 해이기도 했다. 엄마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 "장례식"이란 단어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기에-심적으로는 아직도 낯설기만 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단어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감사한지도 모른다.
지방에 사시는 엄마를 되도록이면 자주 보고 싶은 맘이 더 생기는 요즘이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엄마의 얼굴을 만지고 손을 만지고, 엄마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나이이기에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감사하다.
얼마 전 연말에 엄마 집에 갔더니 외출복으로 입은 엄마의 코트 앞여밈 부분이 삭아서 부스러기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주 오래전 엄마에게 사준 코트이기도 했지만 그 다 헤어진 코트를 인지하지 못하고 입으신 엄마의 연로함에 맘이 더 저렸다. 얼른 엄마의 코트를 새것으로 사드려야겠다는 맘에 조급해졌다. 그래서 곧 다가올 엄마의 생일에 돈을 부쳐 드리고 그 돈으로 엄마 옆에 사는 언니에게 코트를 사서 드릴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언니도 연말이라 바쁘기도 하고, 연말에 내린 폭설로 바깥출입을 못하는 엄마를 핑계 삼아 코트 사기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뭐 하나 사더라도 까탈스러운 엄마의 취향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고 나이 든 엄마를 모시고 옷 가게를 순례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런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새 코트를 얼른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하셔 어떤 코트가 당신에게 적당하다 등의 원하는 스타일의 코트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하신다. 나는 맘이 더 급해졌다. 엄마의 남은 생에 이제 몇 해의 겨울을 더 보낼 수 있을까, 또한 몇 번이나 그 코트를 입고 외출하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더욱더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나의 게으름과 여러 분주함의 핑계로 인해 엄마의 맘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엄마가 이 세상에 안 계신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후회와 회한의 기억으로 나에게 또렷이 남아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지난 주말 차를 끌고 아웃렛 매장으로 향했다.
비록 아웃렛이라 할지라도 눈에 들어온 것은 죄다 비싼 것들뿐이었다. 고작 20만 정도의 겨울 코트에 예산을 두고 둘러본 엄마의 코트 구입 비용은 가벼운 털과 따뜻한 내피로 구성된 비싼 코트들을 사기엔 너무나 역부족인 돈이었다. 최소 50만 원 이상이거나 최소한 40만 원 정도는 줘야 내 맘에 흡족한 엄마 코드 구입이었다. 자꾸만 올라가는 예산에 가성비와 가심비 두 개의 단어가 마치 시소놀이를 하듯 오르락 내리락하며 내 머릿속에서 머물렀다.
그렇다면 가격 대비 효용성을 우선으로 두는 가성비가 팔순이 넘은 엄마의 코트 구입에 적용될 때, 그 가성비 높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몇 번이나 엄마가 겨울 코트를 입을 수 있을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5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서 구순을 바라보는 엄마의 코트를 사는 건 어쩌면 호갱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차라리 적당한 가격선에서 코트를 구입하고 나머지는 어머니에게 맛난 음식을 사드리며 즐겁게 해드리면 되는 일 아닌가. 이렇게 머릿속으로 가성비를 고려해 가격의 셈을 굴리는 나는 엄마의 앞으로 살아가실 나날들에 대한 셈도 함께 하고 있었다. 선뜻 어찌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평범한 엄마의 새로운 겨울 코트 사기가 이렇게 복잡하고 서글픈 일이었던가. 나는 언니의 도움이 필요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언니의 대답은 "엄마가 맞이하는 겨울이 몇 번이나 되겠니, 그러니 적당한 걸로 사"였다. 그렇다. 언니의 대답이 나의 주저함에 끝을 맺게 했다. 결국 나는 어머니와 나의 가심비에 선뜻 손을 들어주지 못한 채 가성비에 충실해 적당한 가격의 코트를 구입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따뜻하고 가벼운 코트"를 샀다고 전화했다. 수일 내로 택배로 받게 될 것이라며 말씀을 드렸더니 날마다 귀가 더 안 들리시는 엄마는 제대로 들으셨는지 어쩐지 알았다고 고맙다란 말씀만 하셨다. 그날 오후 난 우선 엄마에게 새 코트를 사드렸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엄마에게 적용된 가성비란 단어의 냉혹함에 불쑥 엄마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졌다. 밖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