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송장자 1
"안빈낙도", 가난은 받아들이되 배움을 즐기며 산 장자의 말이다. 그러면 나는 "안빈낙도"의 삶을 살수 있을까? 그러한 삶을 꿈꾸며 동경할 수는 있지만 내가 태생적으로 가진 인성과 나를 둘러싼 현실이 "안빈낙도"를 어렵게 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멍때리기"류의 활동이 무척이나 힘든 사람인 듯 하다. 잠자는 시간 이외에 깨어있는 동안 몸이든 마음이든 무엇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나에게 끊임없이 보고 듣고 말하고, 먹는 활동은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나의 일상적인 활동이다. 또한 그렇게 정체된 듯 반복되는 일상속에 엄습하는 또다른 불안감의 해소를 위해 나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도전을 시도한다. 그것들은 나의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의 짜릿함을 주고 나를 일시적이나마 자유케 하고 삶의 에너지가 된다. 그러나 그 새로운 도전을 열정적으로 대하며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항상 의기롭게 새로운 일을 시도하긴 하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나는 기존에 내가 감당하고 있었던 책임과 역할, 나의 적당주의 습관사이의 느슨한 줄타기를 하며 뜨겁지 않은 미지근한 태도로 도전을 이어나간다. 결국 그러한 나의 태도는 치열함과 열정, 최선의 노력을 요구하는 이 사회에선 퇴출이라는 마침표를 찍게 한다. 장자가 말한 "안빈낙도"의 삶에서 나에겐 "낙도"가 있긴 하나 뜨겁지 않음으로 장자의 "안빈낙도" 실천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도전을 중간에 포기하는 법은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비록 도전을 행하는 나의 태도가 뜨겁진 않았어도 그 도전이 끝을 볼 수 있었던건 내가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도전이 되는 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점 이후 나의 도전은 짜릿함과 불안감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상실한 채 남의 이목에 신경쓰며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과 강박감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도전은 어떻게서든 끝내야하는 "일"이 되고 이로써 그 도전은 나의 삶의 보여주기식 좋은 이력으로 남는다. 그 도전의 결과는 나의 삶의 빛나는 흔적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 바뀌게 된 그 도전의 동기 부여의 주도권은 내가 아닌 남의 잣대와 평가가 됨으로써 나의 도전은 칭찬받기 위해 꼭 완수해야 할 목표가 된다. 결국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도전의 시발점이 나를 또다른 불안감으로 구속하는 귀결점이 된다. 따라서 장자의 "낙도"는 역설적으로 나의 현실에선 빡빡하게 돌아가는 기계처럼 나의 삶을 지치게 만든다.
그렇다면 정말 장자의 "안빈낙도"의 삶이란 나에게 힘든 것일까? 그러다 문득 법정스님의 "인생"이란 시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삶에 "안빈낙도"가 작동할 수 있는 해답을 그 시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의미를 가지고 사는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예요.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과 같습니다.
길가의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나는 남의 가치와 이목으로 나를 규정짓고 그러한 규정안에서 나의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해내야 하는 "일"로 치환해 버림으로써 그 완수한 "일"은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질 수 있을까에 삶의 의미를 둔 또다른 불안감으로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안감에서 벗어나고자 해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은 다시금 또다른 불안감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되었다. 즉, 장자의 "낙도"에는 "내"가 없었다. 삶의 의미라는 것이 결국 내가 아닌 남이 지운 의미로 나를 증명하려고 하고 그것이 내 삶의 굴레가 되면서 나는 나를 길가에 있는 평범한 풀꽃이 아닌 눈에 띄는 꽃이 되고자 했다. 그 화려한 꽃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결국 그들의 손에 꺽여 잠시나마 그 아름다움의 특별함을 뽐낼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그 꽃의 아름다움의 효용가치는 시들어버리는 순간 사라지고 버려지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법정스님의 "인생"이란 시에서 말한 것 처럼 비록 눈에 띄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생명력을 이어가는 한포기 풀꽃의 자유함을 내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 삶에서 결핍된 뜨거운 열정을 만들어낸다면 나의 삶에 "안빈낙도"는 불가능한 꿈은 아니지 않을까. 내 삶에 작동할 수 없을 것 같던 장자의 "안빈낙도"가 이제 막 내 삶에 스위치 ON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