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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y Jul 11. 2023

제 그릇이 작은 게 아니에요.

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한 것입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스타트업도 여러 번 해보시고 지금도 스타트업의 공동 창업자를 찾고 있는 분을 소개해줬다. 

우선 나를 좋게 보고 추천해 준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열정과 의미만 있는 나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카톡으로 연락처를 받고 간단한 대화를 하고 만나는 약속을 정했다. 


나는 그분의 사무실로 갔다. 그동안 했던 일이나 그분이 했던 일, 한 시간가량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500억~1000억짜리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일이나 투자를 해오는 일을 주로 한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흥미가 떨어졌다. 난 단 한 번도 꿈이 그런 회사를 만들고자 한 적은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의미 충이라 일에 의미를 담아서 일하고 그것이 나의 동기부여가 되고 일이 반복되거나 지루해지면 과감하게 떠났던 것 같다. 시간을 돈으로만 바꾸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나와서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원하는 건 비즈니스 모델을 근사하게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내가 소소하게 쌓아서 내가 하는 일을 오래 즐겁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꿈이 너무 작은 거 아니냐? 스스로 한계를 짓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 수 있지만 20대부터 나는 나와의 대화를 많이 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내가 가장 행복한지? 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고 나에 대한 이해와 나 스스로의 관계를 아주 돈독하게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다. 

비즈니스 규모의 크기는 모르겠고 확실한 건 남이 그려준 화려한 그림보다 초라하더라도 내가 그린 그림이 훨씬 나에게는 가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20대에 내 열정과 의지를 싼값에 사려는 어른이 많았다. 나는 기꺼이 열정착취를 당했다. 그때는 돈이나 힘든 것보다 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열정착취도 덕분에 정말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때는 지금보다 돈이 부족해도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들은 게 있다. 한 어른은 나에게 마치 엄청 난 기회를 준 것처럼 그것이 엄창 난 것을 가져다줄 것처럼  가스라이팅 비슷한 것을 했지만 결국 그의 그림에 내가 수단과 도구로 필요했던 것뿐이고 나의 미래에는 1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정체성이 없었을 땐 나에게 손 내밀어 준 것만으로 그저 황송했지만 지금은 달콤한 말들이 적어도 나를 위한 것인지, 이용하려는 것인지정도는 살짝? 파악이 된다. 


남을 위해 사는 삶도 남에게 보이는 삶도 의미 없다. 

20대에 중국 상하이에서 일할 때 대기업 빼지를 달고 주재원으로 계시다가 사업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몇몇 분들은 정말 대기업 빼지를 내려놓고 제로에서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사시는 분도 계셨지만 또 몇 분은 예전의 영광을 내려놓지 못하고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수용하려 하지도 않았고 말만 번지르하게 있어빌리티로 사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때 내가 뭘 안다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명실상부(符)' 

하며 이름과 실상이 꼭 맞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들의 마음속 구멍이 느껴졌었나 보다, 그리고 다이어리에 그 말을 썼던 기억이 난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시절 내가 먹은 마음이 너무나 또렸했다. 그 말을 계속 곱씹으며 살았던 것 같다. 


크다고 무조건 좋은 그릇은 아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그렇다. 나는 여태 살면서 궁핍한 적은 있어도 마음이 가난해본 적이 없다. 늘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았다. 엄마, 아빠가 엄청난 지원을 해준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마음으로 두 손 두 발 건강하게 자라게 해 준 것만으로 감사했고, 엄마 아빠의 적당한 방임과 두터운 신뢰가 나를 독립적이고 강한 생존력을 갖게 했다. 그런 마음과 튼튼한 육체면 그다음 살아내는 것은 나의 몫이다. 우리 언니와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인데 우리 자매는 서로 그런 말을 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응원을 한다. 

코칭을 하면서 배우면서 너무 많이 느끼고 있는 진실 하나는 타인을 이해하기 전에 나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30대 후반에 서서 20대 후반에 상하이에서 나 자신과 대화하며 나를 채워가던 그때로부터 딱 10년 후인 지금 나는 또 나와 깊은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한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하는지? 잊고 있던 나와 다시 재회한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다.  

또 이렇게 열심히 10년을 살다가 40대 후반 어디쯤에서 또 한 번 이런 시간들을 만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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