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아빠의 남은 30년 인생을 위하여!
아직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꿈만 오지게 커지고 있다. 안 그래도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인데.... 나에게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바로 아빠에게 다시 사회적 생산자로서의 삶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아빠는 59년 올해 65세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30여 년을 해오신 건설현장의 프로다. 아빠가 젊었을 때 안정적인 회사를 취업을 했지만 금방 그만두고 나왔단다.(할머니피셜) 그랬던 아빠가 이 일은 30여 년을 해오셨으니 우리 가족은 아빠의 천직이라 인정했다. 천직까진 아니어도 잘 맞는 일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언니도 2년제 정보통신과를 다니면서 졸업 무렵 평생 대학원에서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더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었다.
어렸을 때 아직도 기억나는 게 언니가 "나는 나중에 고아원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사실 충격이었다.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언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더니 지금은 11살, 7살, 5살의 최강 난이도 아들 셋의 엄마 되었고 그 와중에 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지금은 장애인 학교에서 시각 장애인 교사의 보조 일을 2년째 하고 있다.
나도 그렇고 우리 집 식구는 내향형 엄마를 빼고 에너지가 외부로 향해있는 외향형이다. (아빤 잘 모르겠지만) 외부로 에너지를 써야 에너지가 채워지는 사람들인 것 같다. 집에 있으면 병이 나는 스타일이
그렇게 활동량이 많은 아빠가 지금은 집에 계신다.
아직 퇴직을 하신 건 아니고 간헐적으로 일하러 가신다. 집에 있는 예전보다 시간이 많아지셨다. 요즘 건설현장 경기도 안 좋고 나이도 있고 얼마 전엔 외국으로 일하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나이 때문에 못 가게 되었다고 하며 속상해하셨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일을 하실 수 있을까? 한다고 해도사실 걱정이 많다.
일을 할 때는 여름엔 폭염이라 걱정,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걱정이었는데. 집에 계시는 지금이 더 걱정이다. 몸을 쓰던 아빠가 답답한 집에서 우울하진 않을까? 집에 있으면 오히려 아프시진 않을까? 중년 남자의 고독을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지만 그냥 추측만 해본다.
무뚝뚝한 경상도 토박이 아빠는 요즘 집에서 설거지도 거의 다 하시고 청소를 하신다. 어렸을 땐 한 번도 부엌에 들어오지 않으셨던 가부장적인 아빠였다. 그런데 지금은 살림을 얼마나 꼼꼼하게 잘하시는지 오히려 이게 진짜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깐 한 적이 있다. 아빠의 일상은 습관적으로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유튜브를 하루종일 귀에 꽂고 다니시거나 (알고리즘으로 확증 편향이 더 심해질까 걱정이다) 며칠 전 사드린 중국 태블릿 PC로 맞고를 치고.... 집안일과 살림을 맡아서 하고, 엄마와 가끔 남포동 시장, 광안리, 해운대로 데이트를 하러 나가신다.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는 아빠는 쉬는 중이고 지금이 편안하다고 좋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빠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다.
나는 작년에 퇴사하고, 처음에 주어진 24시간이 버거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날도 많았고 어떻게 하루를 써야 할지, 잉여인간처럼 느껴졌고 사회의 무쓸모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긍정이 근본인 나였는데, 편안한 몸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 때도 있었다. 은퇴를 한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짧게 은퇴 후의 삶을 경험해 본 느낌이었다. 아빠도 혹시나 이런 기분일까 봐... 나의 이런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나는 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를 지난 아빠 나이 또래의 아저씨들을 많이 봤다. 경제적 자유를 누렸어도 그들 또한 사회적 생산자로서의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고, 진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직은 너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한 번은 올 내 미래의 고민이기도 했다.
이렇게.... 남은 30여 년을 살 수 있을까? 65세는 아직 건강적으로도 사회에서도 너무 젊은데, 아빠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본다. 공상을 좋아하는 내 머릿속에는 이미 있다. 실현 가능한 일인지, 지금 실체를 알아보는 중이다.
돈을 얼마를 벌던 상관없이 나는 아빠를 다시 사회적 생산자로 만들어 드리고 싶다. 내 꿈에 나의 가족도 있다. 부양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아빠가 스스로도 고민하고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지금 경험하고 보는 세상은 평생 하나의 일만 해온 아빠의 관점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이니까, 내가 지금 세상에 맞는 아빠의 일을 찾아 드리고 싶은 것이다.
우리 가족이 모이면 항상 집에서 이렇게 신문지를 깔고 고기를 먹는다. 언니네 5명,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여기서 술멤버는 늘 아빠, 형부, 나다.
난 아빠의 술 유전자를 물려받아, 소주를 아주 잘 마신다. 20대부터 나는 아빠의 술친구였다. 형부가 생기고 이제 형부가 아빠의 술친구가 되었다.
이렇게 술을 마시는 날이면 아빠는 해준 게 없어 미안하고, 항상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나는 공부까지 시켜주고, 이렇게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자라게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진심이다. 나는 한 번도 마음이 가난해본 적이 없고, 결핍을 느낀 적이 없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거의 마흔 다되어가는 인생이 항상 행복했다. 행복의 스위치가 잘 켜지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 줘서 진심으로 엄마, 아빠에게 감사하다.
그래서 더 가족과 함께 그릴 수 있는 미래를 만들고 싶다. 나는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미래의 꿈을 살짝 흘렸다. 그냥 뭐든 함께 할 수 있다면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늦지 않게 실행하고 싶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서울 집으로 오는 기차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생각을 하고 또 해본다.
아직 생각만큼 실행력이 받쳐주는 건 아니지만, 시작할 수 있는 작은 그림부터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