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자기 계발서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는 숙제가 있다.
방학 때 한 달 치 밀린 일기를 쓴 적도 있다.
여기서 날씨가 관건이다. 그때 인터넷으로 날씨를 검색할 수 있었던 때가 아니다.
아니 검색을 할 수 있었을 때였어도 그것을 지금처럼 상용화되어 쓰던 시절이 아니다. (90년대였으니까;;)
언니의 일기 날씨를 베끼기도 하고, 개학날 친구의 일기 날씨도 베끼기도 하고 사실 언니 일기를 통째로 베껴 쓴 적도 많았다.
이 귀찮은 일기를 도대체 왜 쓰라고 하는 것인지?!
그때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기고 지금도 베프인 애칭 '키티'와 교환일기를 쓰며 감정이 요동치며 뜨겁던 시절, 나는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999. 12.31일 교환일기 라니!!
억지로 쓰던 초등학교 일기는 했던 일에 대한 나열이었다면, 사춘기 시절 나의 일기는 감정으로 꽉꽉 채워졌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나의 친구와 썼던 교환일기. 같은 반 친구의 험담과 좋아하던 남자의 내용으로 가득 찼던 나의 일기장. 지금도 나는 베프와 14살 일기를 보며 여전히 감정 교류를 한다. 고스란히 모아놨던 나의 일기장은 순수했던 시절 예뻤던 마음을 꺼내보며 가끔 힐링을 한다. 서른여덟의 은죠이가 열네 살 은죠이를 보며 귀여워한다.
스물넷의 은정이는, 지금도 똑같이 파이팅이 넘쳤다!!
나는 20대의 절반을 중국 상하이에서 보냈다.
연속해서 5년을 살았던 게 아니라, 왔다 갔다 하며 절반을 보냈다. 가장 힘들기도 즐겁기도 기억에 많이 남는 나의 상하이에서의 이십 대. 정말 치열했고 불안했고 외로웠다.
그 모든 감정과 인연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뒀었다.
지금의 내 삶의 태도를 만들어 준건 그때 내가 차곡차곡 남겨뒀던 기록들 덕분이 아닐까? 상하이에서 막 돌아와 서른이 되었을 때 전혀 두렵지 않았다.
스스로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많이 한 느낌이다.
내가 살아온 모든 날이 나의 히스토리고, 자기 계발서였다. 그리고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인정해 주고 수고했다고 토닥여주고! 사랑해 준다.
열심히 살고자 했던 열정적인 마음에 지금의 나도 동기화되고 그때의 불안했던 마음을 토닥거리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나도.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열정 있고 뜨겁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봤을 때 대견해하라고 더 열심히, 그리고 신명 나게 살아보려 한다.
정말 어떤 책 보다 나에게는 나의 일기장이 최고의 자기 계발서이다. 일기는 나의 과거와 미래와 만나는 아주 긴밀한 연결고리가 된다.
삼십 대의 은죠이도 여전히 일기를 쓴다.
매일의 배움과 느낌, 감정, 깨달음을 기록한다.
내 감정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위로가 된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동기 부여하고, 내 마음을 알아차리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