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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리밍 Oct 18. 2024

엄마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1.

 며칠 전 엄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요즘 자꾸만 깜빡깜빡 잊고 놓치는 게 많아지셨다는 우리 엄마. 내 생일도 아닌데, 생일인 줄 깜빡하고 과일 택배를 보내셨다고 한다.

 허허.

 그런 엄마가 걱정되었다.


 사소한 스트레스가 있으셨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을 딸에게라도 이야기해 볼까 싶어 내게 전화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셨다고.

 힘들고 불편한 마음을 3일 넘게나 끙끙 앓다가 비로소 딸인 나와 통화하며 마음이 편안해지셨다고 했다.  엄마는 요즘 나와 통화하면 상담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이렇게라도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지만 엄마의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전화를 끊고 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그리고 얼마 전 외할머니를 떠나보내신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외할머니도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도 지금 가벼운 치매를 앓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구나를 깨달았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엄마와 떨어져 살면서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언제든 엄마에게 전화하곤 했다. 그리고 응어리졌던 마음들을 위로받곤 했었다. 그런데 우리 엄만 이제 그런 곳이 없었던 거다. 부모님이 많이 늙으셨고 게다가 아프시니 마음을 나눌 곳이 없었다. 아빠가 계시긴 하지만 우리 엄마아빠 세대의 K-남편은 주로 '남의 편'이 많으니까.


 그날 엄마와 전화를 끊을 때 내게 "고마워~딸."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 언어를 듣는 순간,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아직은 심하지 않은 치매로 도움을 주시는 요양보호사 분들께 늘 "고마워요~"라고 존댓말을 해주시는 외할아버지였다. 그래서 외손주인 내게도 전화를 끊을 때면 늘 "고마워요~"라고 존댓말을 하셨다. 같은 언어가 엄마에게도 들리자, 문득 외할아버지가 스쳤던 것 같다.


 그날 전화를 끊자마자, 외할아버지께 전화드렸다. 그냥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고...

 오랜만에 외손주 전화에 외할아버지는 너무 반가워하셨다.


 '사실은 외할아버지! 엄마도 요즘 자꾸만 깜빡깜빡하시는데 걱정돼요. 외할아버지가 아빠니까, 엄마를 잘 돌봐주시면 좋겠어요.' 이런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곤 그냥 가벼운 안부를 나누곤 통화를 끝냈다.

 이제 곧 60대 중반을 넘어가시는 우리 엄마, 아흔이 다 되어가시는 외할아버지.

 모두 K장녀인 내가 마음을 쓰고 돌봐야 하는 시기구나라고 전화를 끊으며 깨달았다.

 그날 전화를 끊자마자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엄마도 이제 진짜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2.

얼마 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강작가 노벨문학상은 받았지만 그 내용을 마음에 담고 곱씹으며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을 생각을 해보니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이 들더라"


그랬다.

우리 엄마는 작가의 그 마음까지도 보는 분이셨다.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우리들이 어릴 때 일을 다니시면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쓰셨다고 했다.


 그런 엄마께 다시 한번 글을 한번 써보시라고 권해드렸다.

 "엄마, 글을 한번 써보시는 거 어때요? 한강 작가 글을 보며 그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보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이 없는 것 같아요. 문체나 언어, 표현 등을 보지 작가가 그 표현을 해내며 얼마나 아팠을지 그 감정을 공감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엄마의 반짝이는 눈, 상대의 아픔의 깊이까지도 이해하는 눈으로 엄마 자신의 아픔도 스스로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누구나 상처가 있다. 특히 가족 안에서 유독 더 큰 상처를 안고 산다.

 그리고 가족 내에서는 많은 이들이 서로 자신의 상처가 더 크고 깊다고 때론 경쟁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자기 안의 상처, 그 깊이와 정도를 대체 그 누가 깊고 얕다고 가늠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딸들. K 장녀는 보통 엄마의 상처를 보듬으며 사는 듯하다.

 

 과거에 난 우리 딸도 좀 더 크면 글과 책을 쓰며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었다.

 글과 책을 쓰는 일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커다란 내적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엄마와 대화 나누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유명한 작가 혹은 마음을 울리는 작가들은 대부분 자신의 깊은 상처와 결핍을 잘 극복해 내고 헤쳐 나와야 그런 글을 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내가 알고 경험한 내용만 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엄마로서 겪었던 아픔들을 내 아이가 겪는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작가가 되라는 건 어쩌면 같은 고통을 내 아이에게 견디라는 거였던 것 일 수 있었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부족함으로 인해 아이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 준 일들이 있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미처 그때그때 잘 돌봐주지 못한 크고 작은 상처였다.


 요즘 금수저 부모로 자녀들은 한량처럼 회사에 다니는 동료 직원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리고 부모 세대의 부로 자녀 세대는 좀 더 편안한 삶을 누리며 사는 동료도 본다.

 그럴 때마다 나도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 아이를 상처 없이 한량으로 키울 것인가

 상처가 있더라도 좀 더 단단하게 키울 것인가

 어차피 엄마인 내가 고민한다고 해서 그렇게 키울 수도 없단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 아이는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기준으로 키울 것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우연히 아이도 오늘 학교에서 '한강'작가를 배웠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나는 곧 작가가 될 동료와 함께 한강에 다녀와서 책과 인생, 작가이야기를 신나게 나눈 터였다.


 "엄마도 한강 작가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돼야 해."

 "응? 허허. 알겠어... 노력해 볼게."

 아이의 천진 난만한 응원이었지만 괜스레 코끝이 시려졌다.

 엄마가 늘 책을 써왔고 글 쓰는 걸 봐온 딸이라서, 그런 딸이 알아주는 엄마 꿈, 그리고 일이 참 고마웠다.


 나는 언젠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그 책이 해외에 판권으로도 팔리고, 디즈니에도 영화화되어 미국으로 해외 출장을 가고 싶단 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자는 방엔 직접 채색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그림이 있다.

 어느 날 그 그림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세 살 막둥이가 말했다.

 "엄마! 엄마 꿈 떨어졌어. 이거 떨어지면 우리 미국 못 가잖아."

 "ㅋㅋㅋㅋㅋㅋㅋ"



 글쎄, 엄마가 과연 한강 작가님처럼 될진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너희들과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과 그 부모님인 외할아버지, 왕할아버지까지 그 모두에게 애정을 갖고 더 넓은 마음으로 사랑을 나눠야 하는 시기라는 건 분명히 알겠어.

 더 넓고 단단한 마음으로 우선 우리 가족들을 잘 지킬게.

 그리고 엄마의 꿈처럼 엄마와 함께 꿈꾸는 분들의 꿈도 늘 응원하고 지켜줄 거야. 너희들의 꿈도 함께.


 엄마가 더 단단해져야겠다.^^


 너희들 덕분에 엄마가 점점 더 멋진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너희들이 엄마 품으로 와준 덕분에 엄마는 생전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어. 그리고 지금은 그 꿈대로 실행한 덕분에 점점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엄마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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