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커서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나는 보통 회고 글을 쓰며
'나는 어떻게 해결했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편이다.
그렇게 내면의 '불안'을 인생 처음으로 제거했던 기억을 내면 회고 글쓰기를 통해 삶을 역순으로 되짚어보며 떠올릴 수 있었다.
초등학교 내내 밤만 되면 무서워했던 나.
온 현관과 창문. 방문까지 잠가야 편안해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그 행동이 사라졌다. 그때가 언제였지?
돌아보니 그 계기는 공부. 몰입 덕분이었다.
중학교 시기와 맞물리며 전교 회장을 하던 오빠 덕분에 늘 OO오빠의 동생이라는 주변의 평가를 달고 살았다. 그 덕에 늘 공부를 잘하고 싶은 내적동기가 있었고 그로 인해 밤늦게까지 공부를 스스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목표를 달성하려고 몰입하다 보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불안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 거다.
그렇게 몰입과 노력하면 성과를 얻는 경험들이 자연스레 학습되었다. 그리고 그 방법들을 모든 삶에 이용했다.
돌아보건대 단순히 일의 성취뿐 아니라 관계, 그 외의 영역들까지도 모두 단 한 가지 방식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오면서 다른 문제가 생기는지 몰랐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해보겠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우리 집 아이들도 밤만 되면 늘 불안해하고 무서워한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작은 방에 가거나 화장실을 가기도 한다.
이건 정말 기질인 건가. 싶을 때도 많다.
우리는 엄마, 아빠로서의 소명이 있다.
지금까지 나는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한 소명만을 생각해 왔었다.
엄마로서 해야 할 역할.
가족이 언제든지 돌아와 쉴 수 있는 편안한 품이 되어주는 사람.
언제든 사랑을 주는 단 한 사람이 바로 엄마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런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단 한 사람.
엄마. 단 한 사람이어도 된다.
문제는 그 한 명이, 엄마가 자기 자신을 돌보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온전히 주는 환경이
늘 쉽지 않기 때문에 엄마가 아닌 곳, 그 외의 다른 곳에 가서 엄마의 사랑을 찾는다.
때론 아이와 마음의 다툼이 있을 때
나와 과거의 엄마의 관계를 돌아볼 때가 있다.
그리고 나의 엄마와 외할머니와의 관계도 때론 떠오른다.
우리 엄마도 그랬으니까...라는 핑계가 무의식 속에 떠오르기 하는 게 결국 가족이라는 환경이
내 삶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좋든 싫든
엄마, 아빠의 삶이
자녀의 삶의 기준점이 된다.
엄마란, 부모란 그렇게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돌아와 쉴 곳이 되어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엄마다.
그런 사명감으로 아이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환경적 요인으로.
일로 바쁘다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등의 여러 핑계들로 등한시해오던 가장 중요한 가족의 사랑과 표현의 부재.
어쩌면 그 시대 어른들이 모두 그래왔던 게 당연했던 기나긴 터널을 지나
자신이 자라오며 느껴왔을 사랑의 결핍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사실은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행하는 모든 일들이
가족 품 안에서 온전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최근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단순히 엄마의 역할 말고, 우리 아이들의 엄마로서의 또 다른 소명이 있음을 깨달았다.
어찌 되었던 내가 자라오며 겪어온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들의 잔재가 아이에게도 조금씩 남아있거나 기질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기질이 되었던 자라온 환경적 이유가 되었든 간에,
부모는 그것을 자신이 스스로 극복한 방법으로 자신의 자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평생 살아오며 힘들었던 지점들, 스스로를 단단하게 지켜준 고정관념과 가치관들을
스스로 극복하고 자신의 자녀에게는 그런 가치관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자녀들이 더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환경을 제공하고 도와야 한다.
부모가 자신이 살아오며 쌓아온 기준과 삶의 방식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닌
자녀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도록 안전한 울타리 같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
쉽진 않지만 이게 내가 부모로서, 엄마로서 다해야 할 소명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바로 서야 온 가족이 스스로를 지키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적당히 단단히,
그렇다고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길 바라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잡아두는 글.
얼마 전 스쳤던 기록을 꺼내어 발행해 본다.
오늘 아이와의 오랜만에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눴다.
방학 일상에 관해 시간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엄마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를 안 낳고 싶어."라는 말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결혼하면 아이들을 봐야 하니까 그럼 내가 하고 싶은 꿈인 피아니스트를 못하잖아."라고...
늘 꿈꾸는 엄마 곁에서 항상 함께하는 딸이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걸까....
나는 아이에게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를 꺼내어 이야기해 주었다.
"OO아, 엄마가 OO이 뱃속에 있을 때, OO 이를 키우면서 책을 읽으며 다짐한 게 있어.
우리 OO이 딸 생기면 엄마가 꼭 키워줘야지.라고..."
"엄마가 부와 시간을 모두 이뤄서 자녀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 주는 부모이고 싶단 다짐을 했었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러니 OO이도 그런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고 살아.
외할머니가 엄마를 이렇게 키우셨다고 하더라고. 자식은 부모의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엄마가 해외에 나가서 한창 일 할 때 할머니가 좋아하셨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딸에게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단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고 싶단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렇다고 애쓰고 노력하지도
또 무관심하지도 않게
아주 적절하고 서로의 성향에 맞추어 잘 해내갈 것이라 믿는다.
지금껏 지나치게 기울어져보기도 또 지나치게 멀어져 보기도 하며 결국에는 회복해 오며 잘 지내왔으니까.
오랜만에, 아버지와도 전화통화를 했다. 외할아버지는 딸에게.
"OO아, 친구 100명 만들었어? "라고 물어보셨다.
"음? 친구 100명이요???? 아니요 ㅋㅋㅋㅋㅋ"
내가 어릴 적엔 늘 출근하고 퇴근하고 오셔서 마음의 여유가 없으셨던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씀은 1도 안 하셨던 아빠였다.
그런데 손녀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빠는 이런 가치관으로 살아오셨구나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빠 주변엔 늘 친구들이 그렇게나 많았구나라고.
그 덕에 우리 오빠도, 나도, 돌아보니 엄마도 늘 주변에 친구가 많았구나를 알 수 있던 부분...
그리고 오늘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행복에 관여하는 큰 요소.
유전,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외향성.
기침은 감기의 증상이지 원인은 아니다.
인사를 잘하는 것 같은 행복의 지침들은 행복의 증상을 원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이미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 부분 타고난 기질이다. - 행복의 기원"
나는 유전적으로 행복, 외향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행복의 씨앗을 가슴 안에 모두 품고 있다. 놓치고 살뿐이었다.
단 하나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항상 사랑이 머물러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부모는 부모 자신의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삶의 방식을 자녀에게도 건강하게 물려줘야 하는 것이 부모로서 소명인 것이다.
부모, 엄마로서의 다해야 할 소명은 결국 사랑이 전부다.
내면 회고로 찾은 꿈이 브랜드가 되기까지
우리 함께 행복한 꿈 꿔요! 우행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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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꿈 여행, 우행 꿈 리브랜딩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내면 회고로 찾은 기억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교정하며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브랜드로 만드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할 꿈, 행복, 문제의 답도 모두 내 안에 있었더라고요.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나가며 나부터 주체적인 삶을 선택함으로써 가족 문화를 변화하고 나를 둘러싼 세상의 변화까지도 만들어가는 세계관을 만들어가길 응원합니다.
아이들은 사랑의 말을 먹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