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은 작가의 글
<글썸 첫번째 이호은작가님의 글입니다>
나에겐 엄마가 둘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낳아준 엄마,
20년 넘게 나를 키워준 ‘엄마 같은’ 이모가 있다.
내 엄마는 35년간 교직에 계셨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워킹맘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지금처럼 어린이집, 유치원 같은 보육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집에서 외할머니와 이모와 함께 살았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는 이모가 나와 남동생을 전담해서 돌봐 주셨다.
커리어에 욕심이 많았던 엄마는 늘 바쁜 선생님이었다.
늘 나의 입학식, 졸업식 땐 오지 못하셨고, 방학 땐 연수를 듣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다.
엄마는 내가 잠에서 깨기도 전에 출근해서
어둑해져서야 매우 지친 얼굴로 바깥공기를 끌고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셨다.
이모는 그런 엄마를 대신해 나와 동생, 우리 집 살림까지 살뜰히 보살펴주셨다.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새로운 간식이 식탁에 놓여 있었고, 삼시 세끼를 정성스럽게 챙겨 주셨다.
무릎이 아플 법도 한데 늘 맨바닥에 엎드려 걸레질도 열심히 해주셨다.
덕분에 우리 집은 늘 청결하고 뽀송했다.
우리 이모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 한쪽이 불편하다. 그런 이모가 바닥에 무릎을 대고 온 집안을 걸레질했으니, 남들보다 다리가 몇 배는 더 아팠을 텐데 불평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을 해서 이모와 외할머니의 생계를 책임져 주셨다. 바쁜 언니를 대신해 어린 조카들을 돌봐주는 것도 이모가 선택한 길이지만,
그때 이모가 좀 더 이기적인 마음으로 우리 가정에 헌신하는 일 대신 남들처럼 가정도 이루고 직업도 가졌다면 어땠을까?
이모에게 당신의 자식이 있었다면,
조카들을 자식처럼 여기며 자신의 삶을 그저 우리 가정을 위해서 희생만 하고 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어느 날 방 청소를 하다가 이모의 증명사진을 발견하곤 몇 시간을 울었다. 흑백 사진 속의 이모는 젊고 단아하고 꿈 많은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이모의 잃어버린 20대를 되찾아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기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팠고, 우리 가족의 평안한 삶을 담보로 이모의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맞바꾼 것 같아 한없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모는 나와 동생이 모두 20대 중반이 된 뒤로 더는 우리 집에 오지 않으셨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지내시며 10년 넘게 어린이집 주방에서 일을 하셨다.
이모는 남들이 보기엔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초라하고, 가여우며, 도움이 필요한 약자다.
하지만 이모는 내게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해 준 분이다.
나는 이모가 돈이 없어도 되고, 번듯한 직장이 없어도 좋다. 내게 이모는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하다.
그저 바쁜 일상에서 이모가 떠오를 때마다 카톡을 보내고 통화를 하며 실없는 농담에 낄낄거리다 끊기 전에 서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매년 음력 생신을 양력으로 헤아렸다가 잊지 않고 함께 생일 파티를 하는 것만으로도 늘 내곁에 이모가 있어 감사하다.
그저 항상 건강하게, 나랑 오랫동안 웃으며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빚쟁이다.
세상이 계산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이모에게 빚을 졌다. 평생을 갚아도 부족한 사랑을....
오늘도 이모에게 사랑하고 고맙다고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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