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영아부가 있다.
아이 한 명당 선생님 한분이 예배시간에 맡아서 돌봐 주신다. 영재도 오느정도 나와 떨어져 있을 수 있을 때부터 교회 영아부에 아들을 맡기기 시작했다.
나는 겨우겨우 아이를 품에서 떼어내고, 예배당에 앉아 조용히 숨을 돌리며 예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 이제 한 시간은 자유다…”
하지만 그 자유는 늘 선생님들의 ‘제보’와 함께 끝났다.
예배가 끝나면 선생님들은 내게 다가와 꼭 한 마디씩 했다.
“어머니, 오늘도 영재가 머리카락을 주워왔어요.”
“영재가 먼지를 발견하면 꼭 ‘지지!’ 하고 알려주네요.”
“다른 애들은 블록 쌓고 인형 가지고 노는데, 영재는 꼭 바닥 청소를 해요.”
나는 속으로 민망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아니, 교회까지 가서 청소 요정을 하다니…’
다른 아이들은 찬양 시간에 손뼉 치며 노래 부르는데, 우리 아들은 찬양보다 머리카락 수거에 더 진심이었다.
선생님이 찬양 인도하다가도 중간에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고 했다.
“얘는 하나님보다 먼지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집에서 도대체 엄마가 뭘 하길래 애가 그런가 생각하시는 거 같아 괜히 부끄러웠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늘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영재는 다른 애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려요. 끼어들 때도 눈치 보지 않고 스르륵 들어가서 자기 자리를 잘 찾아요. 그런 게 참 귀여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그래, 우리 애가 비록 먼지 줍는 데 집착은 해도, 혼자 고립되진 않는구나.’
사실 마음속엔 늘 걱정이 있었다.
혹시 다른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선생님들이 ‘사이에 잘 끼어든다’고 말해줄 때마다, 가슴이 뻥 뚫리듯 시원했다.
생각해 보면 아들은 원래 그런 아이였다.
엄청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심하지도 않고, 은근슬쩍 무리에 섞여드는 아이.
딱 그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성격이었던 거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나처럼 모임에서 눈치 보며 벽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남 앞에 나서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그 능력이, 어린 시절의 나와는 달라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집에서는 여전히 ‘엄마 껌딱지’였다.
교회에서 친구들과 어울려도, 집에 돌아오면 꼭 내 무릎에 올라타서 안겨야 했다.
“엄마, 엄마.”불러대는 소리는
늘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아이가 과연 언제쯤 나 없이도 잘 클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 말이 싫지 않았다.
교회 선생님들의 제보는 늘 비슷했다.
머리카락을 줍고, 먼지를 보고, “지지!”를 외치고…
그런데 그 제보가 쌓일수록, 나는 점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구나.’
돌아보면, 그 모든 건 그 당시 사소한 버릇일 뿐이었다.
그러나 초보 엄마였던 나는 그 사소함 속에서 아이의 성격을 발견하고, 또 나 자신을 다잡아 가고 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교회 선생님들은 더 이상 “지지 요정”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허당끼 가득한 영재”라며 깔깔 웃으신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제보들이 잊히지 않는다.
아들이 교회에서 머리카락을 들고 “지지!” 하던 그 모습이, 내 마음속에서는 오래된 필름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 선생님들의 제보는 내게 이렇게 남았다.
“아이는 늘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증인이 있다는 건, 초보 엄마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