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딱지의 카시트 소동

by 은나무


“애들은 무조건 카시트에 태워야 해요.”

주변에서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그래, 당연하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막상 우리 아들을 태워보니, 카시트와는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었다.


처음엔 잠깐 칭얼거리겠지 싶었다.

아니었다.

아들은 울음을 넘어 거의 ‘성량 경연대회’ 수준으로 울어댔다.

“와아아아앙!”

뒷좌석이 무너지도록 울더니, 토할 때까지 버텼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이 아이는 타협이 없는 아이구나….’




처음에는 원칙대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도 교육은 해야지.”

하지만 토까지 해버리니 마음이 무너져버렸다.

결국 나는 카시트를 조수석에 옮겼다.

앞자리에서 아들과 나란히 앉아, 한 손은 운전대, 한 손은 아들의 손을 잡은 채로 출발했다.


그때부터 운전은 ‘스파르타 훈련’이었다.

나는 초보운전이었는데, 옆자리에서 아들은 울다 지쳐 손을 꼭 잡고 잤다.

나는 “앞만 보고 운전해야 한다”는 교범 대신, “앞은 보되 옆도 보라”는 실전 교육을 받았다.




가끔은 이렇게도 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다른 한 손으로 분유병을 잡아 아기 입에 넣어주고… 앞과 옆을 수시로 보면서....

지금 생각하면 영화보다 더 아찔한 장면이었다.

(이쯤에서 나의 면허 점수와 안전 의식은 하늘나라로 날아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잠드는 순간, 그 고요가 천국 같았는데.

다시 울음을 시작하면 또 손을 내밀어야 했다.

나는 아들의 손을 붙잡고 달리는 ‘육아 운전자’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애한테 질리지 말고, 단호하게 교육을 해야 해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의 떼는 단호함을 초월했다.

“이 엄마는 결국 내 손을 잡을 거야”라는 확신이 아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매번 현실이 되었다.




앞자리 전쟁은 몇 년을 이어졌다.

유치원 시절에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도 아들은 늘 앞자리만 고집했다.

뒤에 앉히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투가 벌어졌다.

그 싸움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끝났다.

그제야 아들은 제 발로 뒷자리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카시트 반란은 단순히 앞자리를 차지하겠다는 투정이 아니었다.

불안하고 무서웠던 아들은 엄마 옆에 있고 싶고, 엄마 손을 꼭 잡아야 안정감을 느낀 아이의 고집이었다.

그 고집이 내겐 힘들었지만, 동시에 마음을 울렸다.


지금은 더 이상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잘 앉아 있는 아이.

하지만 가끔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그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붙잡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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