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또다시 문제아로 찍혔다.
싸움 사건 이후, 학생부의 눈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교무실로 불려 가는 일도 잦았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나를 다르게 대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다른 선생님들이 나를 ‘문제아’라고 단정하며 야단칠 때,
그분은 늘 “이 아이는 제가 알아서 지도하겠습니다” 하며 나를 따로 불러주셨다.
친구들 앞에서 감싸 주고, 교무실에서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때는 그마저도 불편했다.
친구들이 “쟤 또 편애받는다” 하며 수군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싫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선생님이 계셨기에 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아로 낙인찍힌 나를 따뜻하게 대해 준 어른이 있었다는 게, 지금은 참 감사하다.
물론 그 시절에도 나는 여전히 사고를 쳤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남자 선생님은 내게 물으셨다.
“지금 여기서 맞고 끝낼래? 아니면 교무실로 갈래?”
나는 주저 없이 “맞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복도 한가운데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한 채,
엉덩이를 있는 힘껏 맞았다.
정말 세게 맞아서, 온몸이 아프고 창피했다.
주변 교실에서 아이들이 몰려나와 구경을 했고,
나는 그 시선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 순간엔 반성은커녕, “차라리 교무실로 갈 걸”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날 나는 엉덩이 통증 때문에 책상에 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나와 버렸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문제아 도장’을 확실히 찍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문제아로 낙인찍히면, 학교는 더 강하게 다그치려 하고,
아이는 더 반항적으로 굳어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 시절, 수많은 야단과 체벌 속에서 오히려 반성보다는 더 버티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한편에는 저를 끝까지 따뜻하게 지켜봐 주는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그 따뜻함은 당시엔 불편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잊히지 않는 감사로 남아 있습니다.
혹시 자녀가 학교에서 문제아로 불리고 있더라도,
아이 곁에는 반드시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어른이 한 명쯤은 있을 겁니다.
부모님께서도 그 시선을 믿고, 아이가 그 따뜻함을 언젠가 느낄 수 있도록
조금 더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