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기준을 정한 말은 없었지만
요즘 말로 하면 ‘썸’이라는 분위기가
우리를 조용히 감싸고 있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다 같이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그것도 그의 계획이었다.
영업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고깃집에 모였다.
누가 봐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티가 날 수밖에 없는 그런 자리.
하지만
이제 그런 시선이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급하게 돈을 구해야 했던
절박한 연이가 아니었다.
익숙해졌고,
부끄럽지 않았다.
누가 눈살을 찌푸린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라고
마음속으로 쉽게 넘길 수 있게 된 나였다.
언니들과 웨이터 삼촌들, 그리고 그와 나
술잔이 오가며 화기애애 분위기는 계속됐다.
그는 은근슬쩍 나와 상아 언니 사이에 앉았다.
누가 봐도 자연스럽게 나와 더 가까이 있고 싶어
만든 자리였다.
점점 한 명씩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겼고
결국 상아 언니와 나 그리고 그 남자.
셋이 남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던 그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아 씨.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저, 연이 씨 좋아합니다.”
갑작스러운 고백.
나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살짝 놓칠 뻔했다.
상아 언니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바로 그에게 물었다.
“전무님… 연이랑 나이 차가 몇인데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데
그럼 점점 불편해질 텐데요…”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바보 같이 조용히 있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제가 좋아하게 됐습니다. 상아 씨가 제일 친한 언니니까
상아 씨만 알고 계시면 돼요.
가게에서는 연이 씨 되도록 편한 테이블만 보낼 거고
힘든 데는 바로 캔슬할 겁니다.
상아 씨가 미리 알아두셨으면 해서요.”
상아 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전무님. 우리 같은 애들 데리고 놀겠다면
그러지 마세요. 연이는… 아직 어린애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다고요.”
상아 언니 목소리에 진짜 걱정이 묻어 있었다.
언니가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차분히 말했다.
“그런 여리고 작은 연이를… 제가 지켜주고 싶습니다.”
“곧… 일도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만들 생각입니다.”
나는 그 말에 심장이 조금 덜컥 내려앉았다.
지켜준다.
그 말에
나는 너무 쉽게 흔들렸다.
혼자 버텨온 내 삶에
누군가가 등 뒤에서 팔을 감싸주는 느낌.
다 내려놓고 기대도 괜찮을 것 같은
이상한 안도.
어릴 때 아빠한테 받아보고 싶었던
바로 그 말.
나는
그 남자가
나의 구원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난.
아직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할 때였다.
조금 좋은 말 한마디에
모두를 걸던 나였다.
그날 이후 나는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내어줬고
그는 내 마음을 조용히 잠그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