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고 싶어진 사람이 생겼다.

by 은나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날 우리는

서울에 오픈을 하게 되면

같이 일하는 걸로 입을 맞췄고,

당분간은 여전히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와는 가끔 문자나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이상했다.


그냥 처음 본 손님일 뿐이었는데 우리가 무슨 사이인 것처럼

친밀해지는 느낌.


이상하게 내 감정이 헷갈렸다.


그리고 혹시나 함께 일하게 된다면 결국 업주와 아가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텐데.

괜히 마음이 앞서 가는 게 조금 겁났다.


오늘도 평소처럼 룸에 들어가 손님에게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있었다.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

내가 좋아하던 노래.


다시 돌아올까

네가 내 곁으로 올까…

믿어주면 우린 너무 사랑한

지난날처럼 사랑하게 될까

그때의 맘과 똑같을까

계절처럼 돌고 돌아 다시 꽃피는 봄이 오면


가끔 첫사랑이 생각났다.

내 가난한 삶을 조용히 감싸주던 사람.


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면 이 노래가

괜히 더 아프게 들렸다.


노래가 끝나고 정중히 인사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여운이 계속 남아 괜히 울컥했다.

이 모습으로 그 앞에 서고 싶지 않은 현실이 미웠다.


그때

부장이 나를 불렀다.


“연이야, 손님이 찾는다.”


나는 지명손님을 만든 적이 없었다.

전화번호 주고,

연락 주고받고,

밖에서도 밥 한 번도 먹어줘야 하고…

그런 관계가 싫었다.


여기서만 만나고 끝나면 끝.

그게 내 룰이었다.


그래서 나를 일부러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혼자 왔다던데?”

웨이터 말에 살짝 멈칫했다.


“혼자? 진상 아니지?”

단둘이 있으면 숨 막히니까 그것부터 물어봤다.


그래도 일단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문을 열자

어?

익숙한 얼굴.


그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앉아 있었다.


웨이터는 나가고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어쩐 일이세요? 혼자?”


“연이 씨 보러 왔죠. 힘들까 봐 좀 쉬라고.”


그 말에 괜히 고마워졌다.


“서울 가게는 잘 되고 있어요?”


“그럼요. 문제없어요.”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단둘이.

손님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그 남자는 나보다 12살 많았다.

30대 중반.


듬직했다.

진짜 어른 같았다.


목소리도

말투도

허세 없이

차분했다.


그냥…

그때는 그렇게 보였다.

아니,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이 씨는 어쩌다 이런 곳에서 일하게 됐어요?”


나는

처음으로

가볍게 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작고 여린데… 이런 데서 버틴다는 게 참 대단해요.”


그 한마디.

단 한마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빠의 빈자리,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던 시간들.

그 말 한마디로 갑자기 그 공백이 메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남자는 본인도 어릴 때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너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는 느낌.


“힘들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요.”


그 한 문장.

그날 밤

마음속에

조용히 들어와 앉았다.


혼자 살아내야 했던 내게 처음으로

기대고 싶은 어른이 생겼다.


https://youtu.be/BhClO1wgI1Y?si=WcSTCHb_5Tbr5-AV



이전 10화낯선 다정함의 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