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다정함의 초대

by 은나무


그들과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이미 서울에서 룸살롱 업소를 몇 개 운영 중이라 했다.
요즘 성행하는 1종 노래방이 계속 늘어나
경기도 쪽 시장 분위기를 보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룸 아가씨들은 노래방 하고는 안 맞아요.
테이블 비용도 다르고, 손님 층도 다르니까요.
그래서 노래방은 노래방 도우미로 별도로 구해야죠.”



그가 말할 때마다
그의 손목에 반짝이던 시계가
조명 아래에서 번쩍였다.



깔끔한 정장 차림.
번들거림 없는 머리.
또렷한 눈빛.
명확한 말투.



지금까지 내가 봤던
술 취한 손님들과는
모든 게 달랐다.



그는 진지했고
어딘가 현실보다 한 발 앞서 있는 사람 같았다.



“저희가 서울에서 영업하면
아가씨들 대우는 확실히 할 거예요.”
그의 목소리와 눈빛은
그 말에 대한 신뢰가 되어주는 듯했다.



나는 의심 한 톨도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닌 곳 중
조건은 단연 최고였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혹시 생각 있으면 연락 주세요. 언제든.”


그런 대화로 1시간을 채우고 그 방에서 나왔다.


대기실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에 잠겼는데
얼추 취한 상아 언니가 들어오자마자
나는 방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언니, 진짜 괜찮아 보여. 서울이면 더 좋잖아.
조건도 완전 최고고.”



상아 언니도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렇게 우리는
“한번 보러만 가보자”
그런 마음으로
서울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며칠 후
나는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오세요. 저희 가게 구경도 하시고
이야기도 더 하죠.”



평일 낮이었고
우리는 편안한 차림으로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채
덜컥 택시를 탔다.



그 남자는
첫날과 똑같이
깔끔하고 세련된 정장 차림에
검은 안경을 쓰고 우리를 맞이했다.



그 이미지.
그 느낌.
변함없었다.



아직 노래방으로 바꿀 예정인 가게는
문을 열지 않은 상태라며
그 동네에 운영하고 있다는 룸살롱으로 우릴 데려갔다.



룸을 잡고
술과 안주가 들어왔다.



그 순간
우리는 손님이 되어 있었다.



잡다한 음악이 흐르고
발끝부터 기운이 빠지는 소파에
몸이 파묻혔다.



그는
상아 언니에게도,
나에게도
똑같이 세심하고
매너 있게 대해줬다.



“연이 씨. 상아 씨. 술 너무 빨리 마시지 마세요.
천천히 기분 좋게.”



그 말투는 나를 아껴주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그때의 나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술잔이 몇 번 오가고, 상아 언니는 금방 얼굴이 붉어졌다.
자기도 모르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같은 속도로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가 나를 바라봤다.
너무 부드러운 시선이었다.



“연이 씨는 너무 여리고 연약한데 어찌 이런 험한 데서...

남자들 상대하기 힘들지 않아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 같은 애한테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으니까.


조명이 퍼지고 음악이 흐르고
상아 언니의 웃음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의 눈빛만
또렷하게 들어왔다.


그 순간에는
나는 몰랐다.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을 뒤틀어 놓을 문을
조용히 열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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