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대기실 공기는
담배연기와 드라이기 냄새가 뒤섞이고,
언니들은 이미 술기운에 볼이 붉어져
서로의 이야기에 파묻혀 있었다.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티브이 화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송혜교, 정지훈 주연의
‘풀하우스’ 드라마 재방송.
배경음악, 대사 하나하나가
세상 가장 달콤한 현실도피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도 저런 사랑…
있으면 좋겠다.”
잠시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연이! 들어가자!”
불려 간 방.
언니들이 한 번씩 들어갔다가
얼굴을 찌푸리고 나온 방이었다.
‘아, 씨… 진상인가?’
속으로 욕하며
억지로 방에 들어섰다.
나는 최대한 무표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 남자들,
분위기상 크게 문제없어 보였는데
이상하게 계속 초이스를 외치고 있었다.
“미안한테 웨이터 좀 다시 불러 줘요.”
‘노래방 와서 무슨 쇼핑하냐?’
‘에이, 개진상 맞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
대기실로 도망치다시피 돌아왔다.
다시 ‘풀하우스’ 속으로 빠져 들었다.
비가 송혜교에게 웃는 장면에서
진짜 잠깐
심장이 철렁했다.
저렇게 나를 웃게 하는 사람…
어디 없나.
그때,
또다시 문이 열렸다.
부장이다.
“연이! 다시 들어가. 아까 그 방.”
나는 드라마 화면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얼굴을 찌푸렸다.
“싫어. 거기 진상 같은데.
언니들 다 보고 이제 와서 왜 나야?
짜증 나.”
언니들이 피식 웃었다.
평소 조용한 내가
진심 섞인 짜증을 내자
조금 귀엽다는 듯.
부장은 눈을 흘겼다.
“어쩌냐.
그 많은 애들 중에
연이 네가 제일 낫대.”
“아 진짜… 싫다니까.”
“진상이면 나와.
내가 금방 바꿔줄게.”
결국
나는 또 등 떠밀리듯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나와 같이 들어간 언니가 자리에 앉자
공기부터 달랐다.
남자들이
우리를
주의 깊게,
오래 바라봤다.
불편해서
괜히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그들 중 내 옆의 남자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아까 언니들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았죠?”
놀랐다.
말투가
되게 매너 있었다.
“아… 괜찮아요.”
내 목소리는
조금 날카롭고,
조금 경계했고,
조금… 젊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사실 저도 서울에서
업소를 하는 중인데 그중 하나를 이런 식으로 영업해 볼 예정이라 요즘 시장 조사를 하는 중이에요.”
‘업소?’
한 번 더 눈빛이 움찔했다.
“그래서…
아가씨들 분위기도 보고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한 박자 쉬고,
날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중에
이왕이면 연이 씨가 제일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 목소리,
낮고 차분했다.
술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들 특유의
가벼운 농담도 없었다.
그게 더 위험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아… 그러시군요.”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별거 아닌 순간처럼 보이는데
나도 모르게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뭔가…
다른 사람이네?
그렇게
그가
나의 어둠 속에
조용히 발을 들여놨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몰랐다.
그 남자가
나를 지옥 끝까지 끌고 갈 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