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그들만의 세계와 질서가 있었다.

by 은나무


이곳에도 끼리끼리 어울리는 무리가 각각 있었다.
누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은근한 서열이 보였다.


가장 위에는 40대 언니들.
그들은 말수가 적었고,
대부분 손님에게 먼저 기선을 제압했다.
포스가 있었고,
딱 봐도 범접 불가였다.
나에게는 그저
‘엄마’ 같은 나이였다.


그 아래 이곳의 중심.
30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의 언니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지방 방방곡곡에서 올라온 언니들은
말투 하나만으로도 기세가 느껴졌다.


그들은 손님을 웃기고
달래고
때론 밀어내며
능숙하게 방 분위기를 주물렀다.
여기서 가장 힘 있는 나이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영계.
스무 살 갓 넘긴 아이들.
나도 그 무리에 속했다.
숫자 ‘2’로 시작하는 나이 하나만으로
우리는
당당했다.
서툴고, 어리고,
철없어도 괜찮았다.
그게 바로
‘젊음’의 값이었다.




손님들과의 매칭도
나잇대 별로 거의 정해져 있었다.
20대 우리는 나이트 부킹 같은 분위기.
웃고 떠들고 가볍게 흘러가는 술자리.


하지만 문제는
단체 손님이었다.
서열이 섞이는 순간,
눈이 더 빨라야 했다.


언니가 옆의 남자 때문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그 틈을 눈치채고
몸을 날려 끼어들었다.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
우리 술 마시러 왔잖아!
노래 불러줘요!”


억지웃음과
가벼운 장난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언니들이
앞으로 나가 노래를 부르고 탬버린을 흔들며
방을 달아오르게 만들면
나는 가만히 앉아있으면 안 됐다.


술잔을 채우고
과일을 깎고
안주를 치웠다.


언니들이 기운 빠지면
나는 내 옆의 남자를 데리고
다시 춤추는 자리로 복귀시켰다.

그러다 보면 나를 향해
누가 웃는 게 진짜인지
누가 미소 뒤에서 이빨을 세우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연이는 참 눈치가 빨라.
같이 들어가면 편해. 이뻐 죽겠어.”

나를 챙기는 언니들이 있었고,

“얘랑 들어가면 나만 늙어 보여.
쪼꼼 해서 내가 이모 같잖아.
또 너무 앵앵거려 듣기 싫어”

나를 불편해하는 언니들도 분명 있었다.


어느 쪽이 됐든
나는 미움받지 않기 위해
가식과 애교를 섞어
살아남아야 했다.


퇴근하고 바로 집에 가고 싶은 날에도
언니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해장국에 소주 한 잔 더 하는 자리에
해 뜨는 새벽에도
몸이 무겁게 질질 끌려도
웃으며 따라갔다.


해가 번쩍 뜬 아침에

겨우 집에 들어와 씻지도 못하고
침대 위에 쓰러져
잠들어버리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일상이 되었다는 건
무서운 감각이다.


나는 이제 밤낮 바뀐 이 일상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아니, 그렇지 않으면 나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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