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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매번 너만 유난이야?(1)

[로미 작가]

by 은나무


왜 매번 너만 유난이냐,

민감한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이야기다.

나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다.

HSP란 영문 그대로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 박사가 도입한 개념이다.



HSP는 선천적인 기질에 속하며 공감 능력과 창의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고,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지친다는 단점도 있다.

육아 관련 유튜브를 보던 오빠가 이거 꼭 너라며 알려준 용어다. 곧장 검색에 돌입. 인터넷에 떠도는 HSP 자가 테스트를 해 본 나는 깜짝 놀랐다. 27문항 중 14문항 이상이면 HSP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로 거짓말처럼 모든 문항이 해당되었다.


나는 나처럼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어릴 때부터 또래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 아이를

어떻게든 잘 키워보겠다고 이런 책, 저런 책들을 참 많이 읽었다. 수순이 이러해서일까.



나는 책 속에서 자연스레 내 어린 날들을 떠올렸다.

내가 HSP여서일까?

나는 어린 시절 ‘너만 유난이다.’라는 말을 엄마로부터

정말 정~말 많이 듣고 자랐다.

그리고 나는 친하게 잘 지내던 엄마와 일부러 멀어졌다.

나는 불효녀였다. 다들 아이를 키워내며 엄마의 힘듦에 공감한다는데, 나는 아니었다.

내가 처음 엄마가 되고, 그동안 힘들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기보다는 나의 문제들을 외면하고 유난스레 여기던 엄마의 모습들만 떠올랐다.


‘나는 안 그런데 니는 왜 그러노.’
‘왜 니만 그러노.’
‘니가 예민한 거다.’
‘그거 내가 물려준 거 아이다~’


무어라 정확하게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늘 유난인 나는 남들처럼 좀 그렇게 지낼 수 없냐는 잔소리를 참 많이도 들어왔고, 결국 나의 모습을 감춰왔다.

나는 유아기의 기억들도 꽤 선명한 편인데,

새벽 2시쯤 아빠가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

엄마가 새벽 6시쯤 일어나 밥 짓는 소리.

곧이어 들리는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소리.

옆집에서 나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소리.

또 무슨 소리. 그리고 또 다른 소리.

나는 매일을 소음으로 힘들어했다.

잠을 자면서도 개운하다고 여겨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불빛이 있으면 눈을 감고 있어도 눈이 부셨다. 갑자기 나는 큰소리나 별거 아닌 한숨에도 심장이 튀어나올 듯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었다. 익숙지 않은 냄새를 맡으면 그 스트레스에 몸이 아픈 날도 많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예쁜 옷을 입고 싶어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사달라 하고도, 불편하고 거칠 거리는 그 질감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매일 면으로 된 운동복을 입었다.


지금도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반복적으로 똑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들려 거슬리거나, 남들에게는 좋은 향인 것들에 코가 아프다 못해 곧 머리가 아픈, 다양한 환경 속에서 그저 그런 일 없는 척, 쿨한 척, 아무것도 아닌 척하며 살아가고 있다.


육아 책을 보니 나 같은 경우엔 이렇게 하라고 하는데,

왜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그저 나를 나로서 인정해 주면 되는 문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가진 이 기질이 아닌 척 없는 척 감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개발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보통 사람보다 민감한 나는 내가 하는 행동 자체를 애써 무시하고 유난한 나를 탓하는 시간들로 채우며 성장했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이 아닌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온 나의 시간들에 나는 슬펐다.


이미 다 지난 시간이지만 나는 뒤늦게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충분히 슬퍼하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어느 정도 단단해질 때까지 지금처럼 엄마에게는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를 두려고 한다.

나에게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나도 안다.

원망의 방향이 엄마에게 가는 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주 양육자인 엄마에게 나는 충분히 서운할 수 있고 아쉬울 수 있다고 외치는 이 마음을 인정하고 안아준다. 엄마를 바꿀 수도, 지나온 시간을 바꿀 수도 없다.

그러니 내가 바뀌어야겠지.



그래서 나는 그저 지나온 그 시절들을 결국

흘려보내 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유난스럽긴 하다.

그런 나를 지금부터라도 온전히 바라보고 사랑하려 한다. 그리고 잘 다독여진 단단한 마음으로 예민함으로 무장한

내 아이에게는 답습하지 않으려 한다.



분명 엄마도 세대를 이어오던 악습을 답습하지 않으려 지금의 나처럼 했을 터이니.



[저자소개]


아들 하나를 양육 중인 30대 엄마.

세 식구가 좌충우돌 제주 일 년 살기 중입니다.


https://brunch.co.kr/@happyyromyy


은나무 : 제주에서 일 년 살기 중인 로미 작가님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늘 지금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전자책 두 권도 출간하신 로미 작가님의 브런치에서 더 깊은 이야기도 읽어 보실 수 있어요!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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