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별 작가]
올해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사람들은 “이럴 때 떠나야지.” 하며 계획을 세웠고,
나 역시도 여행 생각에 설레었다.
하지만 올해는 일이 더 많아져 매일 퇴근이 늦었고,
머릿속엔 할 일들로 꽉 차 있었다.
바쁜 일정을 끝내고 한숨 돌리고 가까운 곳이라도 찾아봤다.
가격이 너무 비쌌고, 이미 자리도 없었다.
그 순간 계획을 바꿨다.
올해는 여행을 포기하고,
“평범한 일상”을 잘 지내보기로 했다.
연휴 첫 이틀은 집을 정리했다.
미뤄둔 것들에 눈길을 돌려 정리했더니 쓰레기봉투 50리터짜리 한 봉지나 버렸다.
이틀 동안 정리를 끝내지 못했지만 바닥도 조금 넓어지고,
집안 공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일정엔 시댁과 친정을 하루씩 다녀왔다. 나머지 날들은 특별한 계획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눈뜨면 아이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밥 먹고 놀고 쉬고 다시 놀았다.
시계를 보지 않는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그 시간이 소중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는, 아침마다 눈을 떠 슬픈 표정으로 내게 “엄마, 오늘도 출근해?”라고 묻던걸 하지 않았다.
10월 10일은 나만 쉬는 날이었다.
남편은 출근했고, 아이는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에 보내지 말고 오늘은 같이 놀까?’라고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보내기로 했다.
평소에 유치원은 빠지지 않고 매일 가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냥 보냈다.
아이가 가지 않겠다고 했으면 못 이긴 척 보내지 말까도 생각했는데 아이도 유치원에 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이를 보내고 돌아와 현관문을 닫자 집이 고요해졌다. 그날은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쉬었다.
나에게도 그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10일을 보내다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출근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흐릿해진 것이다. 연휴 마지막 밤, 문득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나 직업이 있었어? 출근길이 기억이 안 나네.
네비 켜야 하는 거 아냐?”
농담처럼 말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일의 목록이 아니라 하루의 호흡으로 살아보니,
‘나’의 자리가 잠시 다르게 보였다.
연휴가 끝나면 다시 출근해야 한다.
해야 할 일들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아마 첫날 아침엔 정말로 네비를 켤지도 모른다.
길을 잃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다시 맞추기 위해서. 그래도 이번엔 조금 다르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못 갔어도, 나는 정리하고, 만나고, 함께 있었다.
그게 이번 황금연휴의 전부이자 충분함이었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특별히 반짝였다.
일 년에 한 번쯤,
이렇게 긴 휴가가 모두에게 주어지면 좋겠다.
잊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가끔은 기꺼이 잊어도 괜찮다는 걸 알기 위해서.
그래야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때, 더 잘 서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되뇐다.
“여보, 나 직업이 있었어. 그리고 그 일을 더 잘하려면, 가끔은 이렇게 평범한 일상이 필요해.”
출근날 아침,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손을 흔드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다시 치열한 하루가 시작됐다.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가슴 뛰는 일을 좋아해서 새롭게 배우고 도전하는 일을 즐깁니다.
하지만 뽀로로처럼 노는 게 제일 좋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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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무의 한 줄 소개 : 이번 주 8번째 연재를 맡아 주신 꽃별 작가님입니다. 워킹맘이라 글을 쓸 시간은 충분하지 않지만 그래도 쓰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꽃처럼 예쁜 작가님입니다.
작가님의 수줍은 이름처럼 브런치에서도 아직 어색하고 부끄러워하시고요.. 앞으로도 수줍지만 천천히 써내려 가는 작가님이 되길 바라며 독자님들의 응원도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