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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상담사의 눈으로 바라본 나의 이야기

[은혜 작가]

by 은나무


나는 상담센터에서 일하는 가족상담사다.

7년이란 시간 동안 수많은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사이 어느덧 나도 50이 넘은 중년의 여성이 되었다.



다양한 가족 상담 가운데 나는 특히 모녀 상담에 관심이 많다. 나 역시 엄마의 딸로 살아왔고, 내 딸의 엄마로 살아온 삶이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특히 사이가 멀어진 모녀를 마주할 때면, 내 안의 풀리지 않은 상처받은 내적 아이가 조용히 깨어난다.



그날도 가슴깊이 한 맺힌 누군가의 딸은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자 눈물부터 쏟아내며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엄마 때문이에요.”



왠지 낯설지 않으면서, 내 마음에 자리했던 익숙한 이 말은
나의 오래된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엄마는 늘 아들들 걱정을 먼저 했다.



“네 동생들 학비 대는 일도 벅찬 거 알잖아. 너라도 대학 안 가면 안 되겠니? 여자는 좋은데 시집가면 돼. ”



그 말 한마디로 내 대학진학의 목표는

손바닥에 모래처럼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다.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쪽이 저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늘 바빴다.
새벽까지 일하고, 우릴 위해 밥상을 차려놓고,
“그래도 너는 착해서 내가 믿는다”는 말로,
내게 착하다고 칭찬 같은 말을 했지만 그 말로 엄마의 부족한 사랑을 채우기엔 부족했다. 오히려 착해서 믿는다는 말이 나에게 책임감의 사명을 던져주는 듯 어깨가 무거웠다.



그런데 나도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됐다.

어느새 엄마를 닮아 있었다.



아들에게는

“피곤하지? 좀 쉬어.”
딸에게는

“엄마 좀 도와라.”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는 왜 맨날 나만 시켜? 오빠는 놀고 있어도 아무 말 안 하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그건 오래전에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던 말이었다.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그때 대학 가고 싶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도 늘 너 대학 못 보낸 게 마음에 걸렸어.. 그땐 동생들 학비가 너무 부담스러웠잖니. 남자들은 대학이라도 번듯하게 나와야 직장도 구하고 돈도 벌고 결혼하지. 여자들은 시집만 잘 가도 살 수 있었잖니. 엄마도 열다섯 살 때부터 식모살이 살아가며 버텼어. 미안하다 너까지 힘들게 해서."



그 말이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엄마의 체념 속에는 미안함보다 엄마가 버티며 살아낸 세월이 묻어 있었다.



그게 그 시대의 엄마들이었다.
사랑하지만 여유가 없고,
미안하지만 표현할 줄 몰랐던 세대.



함께 공부하며 같이 상담사 일을 하는 10년 지기 동료는

내게 한 번씩 하소연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미워. 어릴 때부터 ‘바보 같은 년’이라며,. 절대 내가 잘한 건 인정하지 않았거든. 남동생들은 귀하게만 대하면서. 그래서 지금도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사나 봐 “



얼마 전부터는 딸에게 듣는 말이라며,



“그런데 요즘 내 딸이 그래. ‘엄마, 나 바보 같아. 왜 나는 엄마 눈에 드는 게 이렇게 어려워?’ 그 말을 듣는데…

숨이 막히더라. 엄마를 원망하던 내가,. 이젠 내 딸에게 똑같이 원망받고 있는 거야.”



그 울음의 결은 내 안에 있는 상처와 놀랍도록 똑같았다.
우리 안의 엄마는 나에게 그리고 딸에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딸에게 상처를 많은 상처를 줬고 그 상처를

모른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다르게 행동했다.



딸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면
“왜 그래?” 하고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딸이 늦게 일어나도
“언제까지 잘 거야?” 대신
“피곤했구나.”. 그 한마디가 우리 사이의 공기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날 딸이 먼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나 오늘 좀 힘들었어.”



그 말이 내게는 ‘화해하자’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날 이후, 나를 향한 딸의 원망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내가 달라지자, 딸도 마음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은 딸이 먼저 말한다.



“엄마, 오늘은 좀 쉬어.”


그 말이 들릴 때마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의 결핍으로 여전히 자라지 못한 내 안 있는 그때의 어린 내가 조금씩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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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린 상담실의 이야기를 더 깊게 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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