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에 혼인신고부터 하자고 이선우는 재촉했다.
나는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나도 웨딩 사진이라도 찍고 결혼식은 해줘야 할거 아냐?
-혼인신고만 하고 살자니 너무하잖아.
-그리고 급할게 뭐 있어 어차피 평생 살 건데.
천천히 계획도 세우고 서류정리 한지 얼마 안 됐으니
좀 더 있다 하자고 달랬다.
그리고 나는 무작정 이곳을 나간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뭐든 혼자서도 먹고 살 준비가 필요했다.
"자기야 나 일하고 싶어"
"일? 일은 무슨 일? 네가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 그냥 편하게 집에서 쉬어~ 심심하면 운동도 다니고 그래. 여자들 많이 하는 거 있잖아 필라테스 같은 거 그런 거 어때?"
"아니 나 운동은 싫어. 나 미용 자격증 있잖아. 그거라도 다시 해볼까? 내 나이에 시작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네가 힘들어서 할 수 있겠어?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고 남자 새끼들도 오면 머리도 만지고 감기고 다해야 하잖아
생각만 해도 싫어 네가 딴 놈들 머리 만진다고 생각하면"
"미용실에 무슨 남자들이 그리 많겠어?
그리고 일인데 뭐 어때.
누가 미용실에서 이상한 생각 하겠어 머리나 깎으러 오겠지. 나 너무 답답해. 나 한창 일할 나인데 맨날 집에만 있으니까 진짜 미칠 거 같아.
몇 달 다녀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둘게. 응?
어차피 나 지금 가면 빗자루질만 하지 뭐.
머리 만질 일도 없어. 내용돈이라도 벌면 좋지 머.
돈 벌어서 오빠 옷도 한벌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
응? 아잉~ "
나는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이선우에게 최대한 부드럽게 애교를 떨면서 말하고 있었다.
이선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꺼냈다.
"대신 주말에는 쉬는 데로 알아보고 내가 출퇴근시켜
줄거야. 그리고 회식이나 뭐 일 핑계로 다른 어떤 것도 하지 마. 그거 지킬 수 있어? 그리고 내가 전화하면 무조건 받아야 돼."
"미용실이 주말에 쉬는 데가 어딨어~
그건 좀 빼주라~~"
"안돼 절대로. 내가 주말에 쉬는데 네가 안 쉬면 나 혼자 뭐 해. 무조건 주말에 쉬어. 그리고 집 근처 30분 이내 거리에서 구해 이거 못할 거면 하지 마"
"알았어 고마워 찾아볼게"
그래 그렇게 라도 일단 한발 물러나준 게 어디냐.
나는 그것마저 다행이다 여기고 찾으면 나오겠지
설마 많은 미용실 중에 하나 없겠냐 싶었다.
나는 그의 기분을 맞춰주려 소파에 앉아있는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이선우 고마워 사랑해 나중에 진짜 미용사 되면 돈 많이 벌어서 이선우 편하게 살게 해 줄게"
"나중에 기술 배웠다고 나 버리고 나가지나 마! 너는 그러고도 남을 년이야! 그랬다간 너 죽어!"
뭐야!
내속을 정확히 꿰뚫어 본거 마냥 나는 이렇게 티 안나 보이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네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 소름이 쫙 돋았지만 이내 아무것도 아닌 척
"머야~~ 기술을 어느 세월에 배워서 도망가냐 이 나이에 나도 그땐 늙어서 누구한테 가지도 못해! 오빠 말고 내가 이제 누구랑 살아! 무슨 그런 말을 해?"
예전에 같이 살기 전 가끔 틈이 생기면 무당집을 찾아가 궁합을 보러 다니곤 했었다.
그때 무당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 네 옆에 있는 이놈은 너보다 더쎄. 이놈도 신가물이야. 워낙에 쎄니까 너도 보통이 아닌데 거기 눌려서 기도 못 피고 살 거야. 조심해 이놈은 한다면 하는 놈이라 잘못 건드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무서운 놈이야"
그땐 뭔 개소리야 하고 지나쳤던 말들이 살면서 하나씩 떠올랐던 순간들이 있었다.
엄마한테 간다고 하고 엄마집에 가서 영상 통화까지 하고 이선우를 안심시키고 밤에 몰래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을 때 뜬금없이 전화 와서 " 너 밖이지" 하며 의심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도 뭐 이런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촉이 남다르다 생각은 했다.
그리고 살다 보니 쎈놈이 맞는구나 했고
이날 정확히 내 마음을 꿰뚫는 이야기에 섬찟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두렵고 무섭다고 뒤로 물러나고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지금 당장 나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내가 나가서 독립하면 먹고 살 준비는 하고 나가야 했다.
1년이든 2년이든 그 긴 시간을 버티려면
서둘러야 했다.
나는 이선우에게 뭐 그런 걱정을 다 하냐며 별일 아니라는 투로 일자리 천천히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그의 곁에 기대서 콩이와 장난을 치며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알아봐야 빨리 알아볼까'
다음날 이선우가 아직 자고 있는 아침.
나는 밖에 나가 구인구직 신문을 찾아왔다.
그리곤 미용실이나 미용 재료상을 찾았다.
그 당시 미용재료상을 통해 취업을 하기도 했다.
나는 몇 군데 찾아놨고 순서대로 조용히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내 조건을 말하니 마땅한 데가 별로 없었다.
주말에 쉬면 거리가 멀거나 가까우면 주말에 일해야 하거나
두 가지 다 만족할만한 이거다 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다른 신문을 펼쳐 꼼꼼히 더 찾아봤다.
광고가 거의 겹치지만 겹치지 않았던 곳을 찾았다.
두어 개 재료상을 찾았고 그중 한 곳에서
딱 맞는 곳이 있다고 했다.
내 나이가 많아 어지간한 데는 스텝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다고 했다. 디자이너들 나이가 대부분 내 또래인대
거기서 보조 맞춰주기 힘들 거 아니냐며
나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부분까지 체크한 그 재료상 사장은 원장님 한분 직원 한 명 있는데 거기가 딱 기술 배우기도 좋고 직원도 성격이 좋아 잘 맞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전화 한 번으로 뭐 그렇게 딱 맞는다고 이야기를 하나 싶었지만 나는 믿어보기로 하고 그날 이선우가 잠에서 깰 때쯤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이선우가 깼다.
외출 준비를 마친 나를 본 선우가 뭐 하냐고 물었다.
나는 미용실 면접 보러 간다고 밥은 차려놨으니 먹고 기다려라 금방 한 군데만 다녀온다 하고 나왔다.
선우의 대답 따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또 어떤 핑계로 나를 붙잡을지 모르니 나는 서둘러 나갔고 재료상 사장을 만나 미용실로 갔다.
미용실 원장은 시원시원하고 활발한 성격에
강사 자격증까지 겸비한 전문가라서 초보인 나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직원은 나이가 나랑 같은데 역시 성격이 좋아서
아마 비슷한 또래 디자이너 보다 배우고 일하기 편할 거라고 소개했다.
나는 뭐 어디든 나이 많은 초보를 써준다면 감사했고
조건도 좋아서 맘에 들었다.
원장이랑 직원도 같이 일해보자며 선뜻 환영해 줬다.
나는 다음날 즉시 일하기로 했고 원장이 교회를 다녀서 일요일은 아예 가게 문을 닫는다고 했다.
미용실 장사는 주말 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예 문을 닫는다고 하니 나만 주말에 쉬게 해달라고
아쉬운 소리 할 것도 없이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배웠다.
누구보다 싹싹하게.
나랑 동갑이어도 나보다 한참 선배인 디자이너에게도 깍듯이 선배 대접을 했고 매장 막내로서 해야 할 모든 일들을 군소리 없이 눈치껏 빠르게 해 나갔다.
곧 원장님과 디자이너와도 친밀해졌고
일과 사적인 선은 구분 지으며 잘 지냈다.
숨통이 틔였고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을 하고
매일 한 시간 일찍 나오거나 퇴근 후 1시간은
원장님이 1:1 강의를 해주셨다.
월급이 작아도 몇 년 전 처음 취업 할 때보단 훨씬 올랐고 이선우와 함께 있으니 그 돈은 거의 쓸 일이 없었다.
나는 힘든 줄고 모르고 사람 사는 맛에 부지런히 다녔다. 통장에 돈도 어느 만큼 모아지고 원룸 월세방 하나 정도는 구할 만큼 모였다. 그동안 나는 남자머리 커트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버텼다.
매일 출퇴근을 이선우와 해야 했고
날마다 핸드폰 검열 그리고 일하다가도 전화 오면
재깍 받기 모든 비위를 맞췄다.
가끔 술 먹고 난리 칠 땐 그냥 조용히 대들지 않고
잠잠해 지길 바라며 일을 키우지 않았다.
그저 그때마다 그 순간이 서러워 소리 없이 울다 잠들었다.
언젠가 나는 너를 벗어난다 벗어난다.
주문을 외우듯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