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주문을 현실로 만들었다.
원장님하고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나이차는 있어도
결이 맞아서 이야기가 잘 통했다.
16살 나이차가 났던 인생 선배에게
조금씩 조금씩 내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나의 삶을
다 털어놓고 있었다.
원장님의 삶도 함께 들었다.
서로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과 위로가 됐고 나는 미용실에 취업한 이유까지 말하게 되었다.
원장님은 자신의 교회에서 구역 모임에 구역장이었다. 교회에 작은 소그룹인데 한 번씩 모여 소그룹끼리 교제도 나누고 기도도 함께하는 구역예배라는 것이 있다.
원장님은 늘 구역예배 날이면 구역 식구들을 가게로
모이게 했다.
그날은 조금 빨리 8시에 마무리를 했고 퇴근을 했다.
그중 엄마나이쯤 되시는 그 지역을 담당하는 권사님이 계셨는데 나를 볼 때마다 같이 예배드리자고 했다.
나는 거절을 했다.
그리고 도망가듯 재빨리 가게를 벗어나 이선우가
기다리는 차로 갔다.
권사님은 이제 구역예배 아닐 때도 미용실에 수시로 와서 말씀카드 하나를 준다던지 근황을 물어보는 자연스러운 인사를 한다던지 수시로 방문해 자연스럽게 편안한 관계처럼 변했다.
어느 날.
"내가 연이 씨를 위해 기도 한번 해주고 싶은데 기도는
괜찮지 않아? 이리 와 앉아봐요. 자꾸 기도를 해주라고 하시는 거 같아. 내 마음에 자꾸 그런 마음이 생겨"
매번 거절하고 거리를 두었더니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싶다는 말을 더 이상 외면하기 미안해졌다.
나는 마지못해
"네"
하며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권사님과 마주 앉았다.
권사님은 내 두 손을 모아 붙잡고 기도를 해 주셨다.
기도가 길었다.
처음엔 '아 뭐야 왜 이러고 있어야 돼' 짜증스러웠는데
누군가 내손을 덮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목소리가
점점 내 마음 깊숙이 울렸다.
권사님은 기도를 마치며 눈을 떴는데 눈가가 빨갛게
되어 있었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기도하는 중에 연이 씨가 너무 가엽게 느껴졌어. 연이 씨 위해 기도 많이 해야겠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며 나도 글썽이던 눈물을 참아냈다.
그렇게 권사님과 친해지고 매주 수요일 아침엔 교육대신 1시간 일찍 나와 권사님과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었다.
원장님과 권사님 이렇게 셋이 모여 나를 위해 하나님을 전하고 기도를 해주며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권사님은
이제 그곳을 떠나자며 도움을 주시겠다고 했다.
원장님도 흔쾌히 내가 안전하게 갈 수 있게 도와주기로 하고 나를 대신할 직원도 구해놨다.
첫 번째 계획은 출근하는 척하며 나와서 권사님 차를 타고 다른 도시에 가서 일단 내가 살 방을 구해야 했다.
그렇게 몇 번 원장님의 양해로 근무시간에 권사님과 집을 구해 다녔고 내가 살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사다 놨다.
그리고 내가 없어졌을 때 이선우가 찾아오거나 하면 그때를 대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부터 철저하게 준비까지 마쳐놓고 날짜를 정하고 기다렸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두근거렸지만
최대한 차분하고 냉정하게 마음을 잡았다.
콩이에게 미안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선우 그의 어머니는 강아지는 끔찍이 예뻐했으니 어머니한테 맡기길 바라며 흔들리지 않기로 하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나는 그날 가게로 출근했고 2시간 정도 시간이 지난 뒤 권사님 차를 타고 옷 몇 가지 든 가방만 들고 미리 구해놓은 원룸으로 떠났다.
그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과 헤어짐이 아쉬웠고 이렇게 이선우 손에서 벗어나는 기쁨이 벅차서 눈물이 났다.
나를 위해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했고 지난 시간들이 서러워 눈물이 흘렀다. 나는 권사님 이름으로 개통한 핸드폰으로 엄마에게만 연락을 한 후 내 명의로 된 모든 것들을 삭제하고 해지했다.
내 모든 흔적들을 지웠다.
단지 걱정이 되는 건 이선우가 미용실에 찾아와 행패를 부릴까 진짜 나를 찾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었지만 나는 살아냈다는 안도와 그 시간을 버텨온 내게 뜨거운 눈물로 위로하고 응원했다.
어색하고 낯선 도시.
이선우가 설마 내가 이곳으로 갔을 거라 상상도 못 할
도시 작은 방하나에 도착했다.
권사님은 이것저것을 다시 한번 챙겨 주시고 함께 식사를 하고 기도까지 해주시고 느지막이 떠나셨다.
홀로 남은 낯선 방.
제대로 뭐가 갖추어지지 않은 그냥 허전하기만 한 방.
그리고 옷 몇 가지 들어있는 작은 옷가방....
나는 낯섦과 허탈함, 뭔가 다시 혼자가 된 두려움,
탈출의 기쁨,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기쁨인지 슬픔인지 뜻 모를 눈물이 멈추지 않아
울다 지쳐 바닥에 누웠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