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로 살아간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멀게 느껴졌던 자유는
결국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숨 쉬는 아침,
잠에서 깨면 들리는 건
남편과 아이의 웃음소리뿐이다.
이 사람을 만나고
나는 사랑이 무섭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나를 바꾸려 하지 않았고,
나의 상처를 함부로 만지지도 않았다.
그저 내 곁에 머물며
묵묵히 내가 스스로 아물어가기를 기다려주었다.
그는 내게 물었다.
“연이야, 지금은 행복해?”
나는 대답했다.
“응, 이제 나는 무섭지 않아.”
그 말이 내게는 고백이었다.
사랑을 고백한 것도,
감사함을 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제는 괜찮다”는 말,
그 한마디가 내 지난 삶의 모든 상처를 덮어주었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장을 보고,
함께 아이의 머리를 말려준다.
그 평범한 일상들이
내게는 기적이었다.
가끔 꿈을 꾼다.
어두운 방,
닫힌 문,
멈춰버린 숨소리.
눈을 뜨면
여전히 가슴이 뛰고 손이 떨린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조용히 나를 안아준다.
“왜 또 무서운 꿈 꿨어? 괜찮아 연이야 내가 옆에 있잖아."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의 품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에 안전한 곳이 있다는 걸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입을 열지 못했다.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하지만 조금씩,
한 문장씩,
내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내 상처를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건 지워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삶의 한 부분으로
품고 살아야 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그저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리고 살아내는 사람이다.
어느 날,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 뭐가 제일 무서웠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무서운 게 없어졌어 기억이 안 나.”
그 대답 속에
내 지난 생의 모든 눈물과 싸움이 다 들어 있었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나도 살아볼 수 있겠구나”
그런 마음이 들면 좋겠다.
그때의 연이는 아직 내 안에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아이는 울지 않는다.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세상과 나를 품는 어른이 되었다.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건 여전히 아름답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가
이토록 눈부신 선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오늘도
아이의 머리카락에 햇살이 비치는 걸 보며
작게 중얼거린다.
“연이야, 고생했어. 이제 그만 아파도 돼.”
그리고 웃는다.
이제 울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눈물이 난다면
그건 더 이상 슬픔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이 이야기는 한 여자의 지난 시간에 대한 고백이었다.
누군가의 사랑이 두려움으로 바뀌고,
그 두려움이 연민으로 남고,
그 연민마저도 결국은 삶의 일부가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든 이야기.
나는 글을 쓰며 나를 돌아봤다.
글을 쓸 때마다 그 시절의 내가
조용히 내 곁으로 와 앉았다.
울고, 미안해하고, 그리고 조금씩 웃었다.
글은 내게 치료였고,
잊지 않으려는 다짐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품어주는 일이라는 걸.
이제 나는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마음을 다해 살아간다.
그 모든 상처와 눈물,
그 모든 밤과 새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나는 지금 이렇게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제,
내가 건넬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괜찮아요,
당신도 언젠가 웃을 수 있어요.
그러니 조금만 더, 살아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