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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Nov 25. 2024

그 남자의 가스라이팅


나는 서울로 출근하면서 내 인생의 가장 지옥 같은 악몽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잠을 잘 때 여전히 그때 그 시절 악몽을 꾼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꿈이다.

억울함과 슬픔.

두려움과 공포.

되돌아간 모든 상황에 좌절해 버리고 꿈에서 하염없이 운다.

그렇게 울다 지쳐 잠에서 깨면 현실에서도 베개가 흠뻑 젖을 만큼 울고 있었고 꿈이라 다행인 현실이 주는 안도감에 또 한바탕 울게 되는데 그때 서울에서의 내 삶은 꿈에서도 마주하기 싫은 지옥 같은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나는 서울로 나를 데려간 그 남자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68년생이었던 남자는 55년생인 우리 엄마가 큰 누나뻘 정도 되는 나이였다. 나와는 그 당시 14살 차이가 났고 30대 중반이었다.

늘 무서운 거 없다던 그 남자는 덩치가 크고 보통의 사람들이 그를 어려워할 정도로 인상이 강했지만 얼굴은 준수한 편이었고 목소리는 두꺼운 저음에 크고 당당했으며 대화를 할 때 사람들 대부분은 그에게 풍겨 나오는 아우라에 압도됐다.

남자답게 생겼고 어린 내가 보기에 약간은 무서워 보였던 그 남자는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거 같았고 아빠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나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 같았다.

그 사람과 나는 점점 가까워지면서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사람은 나에게 노래방 도우미 일을 그만두고 자기와 함께 지내자 했다.

나는 바닥까지 내려갔다고 생각했던 내 삶을 꺼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사람에게 기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좋았다.

힘들게 일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 곁에 있을 수 있었고 내 또래 남자들보다 이미 안정적 이였던 것도 모르는데 없이 내가 가고 싶은 곳 좋은 곳도 척척 어디든 잘 데리고 다니고 어려운 일들도 생기면 잘 해결하는 모습이 듬직했다.


또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무섭게 생긴 그 사람 후배들도 내게 깍듯이 형수 님이라고 부르며 대우해 주었다.

검은색 대형 세단. 그 옆에 타고 다니며 인사를 받고 공주처럼 대해주니 내가 그 순간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 사람은 흔히 우리가 짐작하는 그런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다.

몸에는 온통 문신이었는데, 몸에 칼자국이 유난히 많아서 그 흉터들을 가릴 방법으로 온몸에 두른 문신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첫 번째 말은

"너는 진짜로 무서운 사람하고 살고 있는 거라고......" 그랬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냥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그 시간들이 그저 좋기만 했었다.

내 아무리 학교에서 놀아도 봤고, 다방에서 또 노래방에서 별일 다 겪어도 보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도 보고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 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어렸고 세상물정 모르고 사람 볼 줄 모르는 철없는 약한 아이라는 걸.......

그 사람은 처음과 다르게 함께하는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변해갔고 내게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과거 내가 남자들을 상대로 일 했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나에게 너는 별 볼 일 없는 여자라고......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그나마 자기가 사람 만들어 준 거라고...... 그래서 사람처럼 사는 거라고......

자기를 떠나면 다시 더러운 시궁창 같은 인생 속에 인간쓰레기 같은 양아치 부류의 남자나 만나서 노래방 도우미 하면서 양아치


짓이나 하는 남자 뒷바라지나 하며 평생을 살 거라고......

계속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맞는 말 같았다. 나는 시궁창 같은 삶이 맞지 않은가.


그런 내가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며 먹고살 것이고. 얼마나 괜찮은 남자를 만나 팔자를 피겠나 싶은 게 다 맞는 말 같았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게 자기를 떠나면 당장에 찾아서 가만 안 둘 거다. 어디에 숨어도 우리 같은 사람은 사람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반드시 찾아내서 나를 배신하고 도망간 대가로 고통스럽게 살게 할 거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무서웠다. 왜냐하면 다 맞는 말 같았다. 그 사람을 떠나면 나는 그렇게 될 거 같았다. 별 볼 일 없이 또 남자들에게 웃음이나 팔면서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고 아니면 저 남자가 당장이라도 찾아내서 나를 힘들게 할 거 같았다.


그 사람 곁에 있으면서 내가 본 그는 그럴 만 하기에 충분했다.

한 번은 밤 시간 동네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는데 교복을 입은 남 여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길에서 교복 입고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겁 없는 여학생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저씨가 뭔데 그래요? 상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세요!"


그러면서 담배연기를 그 사람 얼굴에 뱉었다.


나는 속으로 아뿔싸 큰일 났구나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마주 하기 싫어 잠시 그곳을 피해 있다가 돌아왔다.

거기 있던 7-8명 되어 보였던 남 여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유흥업소가 즐비한 번화가였다. 누가 돈을 갚지 않는다며 어느 업소를 찾아갔는데, 내게 차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그는 돈을 받아오겠다고 가게로 찾아갔다.


차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한 곳으로 우르르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차에서 내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점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내 눈에 들어온 건 그 사람이었다. 돈을 받기 위해 그 가게에서 일부러 겁을 주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고 번화가 길거리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보고만 있었다.


아무도 함부로 말리러 다가가지 못했다. 다들 경찰을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 누가 좀 말려보라고 서로에게 떠미는 사이 나 역시 모르는 사람처럼 그 무리 속에 서서 그냥 보고만 있었다.

늘 그랬다. 그 사람이 그럴 때 그런 상황이 생기면 나는 그저 아무 말 못 하고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한 번은 내가 일행인 걸 알게 된 사람이 제발 말려 달라고 내게 사정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외면했다. 내가 나서게 되면 나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1차선 도로에서 뒤차가 빵빵 경적을 울린 적이 있다. 바로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려 뒤 차로 다가갔다. 그로 인해 뒤에 오던 차들이 연이어 줄줄이 멈추게 되었다.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방금 전 자신에게 경적을 울린 사람에게 사과를 받아야 모든 상황은 마무리된다.


상황을 알리 없는 뒤차에 누군가 한마디라도 하게 되면 험한 인상과 폭언으로 아무도 나서지 못하게 하는 참 무례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늘 그랬다. 나뿐만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은 두려워서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사람.


가끔은 사람이 사람처럼 안 보일 때가 있었다. 술을 잔뜩 취하게 마시면 이성을 잃었고, 그 이상을 더 마시면 눈빛이 변해 귀신이 씐 사람처럼 행동했다.


눈이 돌아갔다고 하는 게 뭔지 그때 알았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눈빛. 사람한테 볼 수 없었던 눈빛. 아직까지 본 적 없는 그 눈빛은 나를 굉장한 공포로 몰아갔다.

우리는 그 사람의 형님 되는 사람 그쪽 세계를 정리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 부부를 자주 만났다. 그 형님의 와이프는 내가 만나는 그 사람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거의 이모뻘 되는 나이였다.


가끔 형수와 내가 둘만 있게 되면 이모뻘 되는 그 형수가 내게 말했다. “너를 딸처럼 생각해. 그래서 네가 너무 안쓰러워. 저 인간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야. 나는 나이도 먹고 벗어날 수 없어서 그냥 버티는 거지만 너는 나이가 어린데 저런 인간들 이랑 사는 게 너무 불쌍해 제발 도망가서 살아……”

“네가 지금 나이도 어리고 사리분별이 안되고 눈에 콩깍지 때문에 몰라서 그런 거니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멀리 도망가. 재들은 너를 금방 찾을 거야 그러니까 단단히 준비를 하고 도망가야 해. “

단둘이 있는 기회가 오면 그 형수는 내게 늘 도망가라 했다. 그 말이 그 당시엔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알았어도 도망갈 수 없었다.


이미 나는 그 사람에게 세뇌당하고 있었다. 그 사람을 떠나면 나는 인간쓰레기가 되어 시궁창에서 삶을 살 것이고 양아치 같은 남자를 만나 뒷바라지하며 살 것이고 평생 유흥업소 그것도 저기 밑바닥에서 간신히 먹고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망갈 용기조차 없었다. 나는 이제 그가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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