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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Nov 25. 2024

현실도피 온라인 세상


나는 도망갈 마음도 힘도 없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점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무기력 해지고 있었고 삶의 의욕이 없어졌다.


그러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러 피시 방에 가봤다. 그곳에서 나는 이것저것 아무거나 접속을 해보았다. 게임을 잘 몰랐던 나는 일단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

그러다가 그때 한창 유행 중이던 RPG 게임 중 무협을 배경으로 만든  게임을 발견했다. RPG 게임이란 롤플레잉 게임의 약자로 가상세계에 서 모험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게임을 말한다.

짜인 프로그램대로 조작하는 단순한 게임과 달리 내가 주인공이 되어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재미와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질의 사람이었던 나에게 온라인상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협력하는 게임방식이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무협을 배경으로 했던 그 게임은 나에게 신선한 재미와 무료했던 시간에 즐거움을 주었다.

점점 게임에 접속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가상세계에서 친구들도 많이 만들어 갔다. 게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지질하고 시궁창 같던 내 삶을 포장할 수 있었고 지질하고 소심한 성격을 감 출수 있었다. 내가 흙 수저 집에 태어났던 것도 노래방 도우미였던 삶도 다 포장할 수 있었다.

눈치가 빠른 나는 게임을 잘했다.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채팅으로 하는 대화는 내게 부담을 주지 않았고 게임만큼 말도 재미있게 잘했다. 온라인상에서 나는 대화도 게임도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임 캐릭터가 나였고 내가 캐릭터였다. 게임 속 아이디조차 미영이었다. 온라인 친구들이 나에게 미영이라고 불렀다.

현실의 미영이 보다 온라인의 미영이가 나는 더 좋았다. 내가 처음으로 뭔가 잘해보고 싶은 열정이 생긴 첫 번째 일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컴퓨터를 집에 사들였다. 눈을 떠서 세수를 하기도 전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되었고 잠을 잘 때까지 컴퓨터 앞을 지켰다.

열정이라 곤 찾아볼 수 없었던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노력을 온라인 게임에 집중했다.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컴퓨터에 앉아 게임 속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마셨다.


나를 감추고, 포장하는 게 익숙해졌다. 게임 캐릭터 처 럼 싸움도 잘하고 예쁘고 인기도 많은 게임 속 미영이라는 캐릭터가 언제부터 나인 줄 착각하게 되었다.

현실의 미영이는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힘없고 머저리 같이 겁에 질려서 그 사람이 가두어 논 철창 같은 곳에 갇혀 먹고 자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 현실의 미영이는 죽고 싶었다.

그때 나는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셨을지도 모른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고 매일 술에 취해 쓰러지듯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아 가상 세상을 살다가 술을 마시고 취하면 쓰러져 잠드는 생활을 꽉 채워 2년 정도 이어갔다.


그 사람이 컴퓨터를 내 앞에서 산산조각 내기 전까지……

그 남자는 술을 마시거나 화가 나면 살림이건 뭐건 때려 부수는 일을 잘했다.

그날도 눈에 가시 같았던 나의 온라인 생활이 못 마 땅 했던 그 사람은 나에게 인격적으로 말하는 대신 그냥 한순간 모든 걸 부숴 버렸다.


가상 세계라도 붙잡고 살아가고 싶었던 나를 무참히 짓밟았다.

그렇게 2년 동안의 나의 온라인 세상은 끝이 났다. 차라리 잘됐다.


그렇게 현실과 가상세계에서 허우적대며 앞 뒤 분간하지 못하고 살던 나의 모습도 초라하고 비참할 뿐이었다.

게임을 하지 못하게 되자 할 수 있는 게 더 없어졌다. 그 시간 나는 더 술에 의지했다. 점점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갔다.

내가 술이 아니면 살 수 없었던 사연은 또 있었다.

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다. 그 질환의 여러 가지 증상 중 한 가지는 무 배란 증상으로 배란이 잘 되지 않아 생리가 불규칙했다. 나는 거의 생리를 일 년에 한두 번 했었다.


그때도 생리를 안 한지 7개월이 지났다. 무 배란에 생리도 하지 않고 있었으니 당연히 임신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평소 그 문제로 병원을 자주 다녔는데 병원에서도 나는 임신이 어려울 꺼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신체적 민감성이 높아 예민하고 긴장감이 높았던 나는 몸에 이상함을 바로 느꼈다. 내 직감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거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를 해봤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테스트 기엔 임신을 뜻하는 두 줄이 상태 표시줄에 선명했다.

나는 산부인과를 찾아갔고 임신 4주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증오하던 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 남자는 술에 취하거나 나랑 싸우게 되면 나의 감정은 무시한 체 폭력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며 자신의 화를 풀었다.

그때마다 나는 치욕스러운 기분에 비참했고 처절히 무너져 갔다. 마치 사람도 아닌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생리를 안 하는데 임신이 되나요?"

"그럴 경우도 있어요. 출산을 할 건 지 보호자랑 상의하고 오세요"

그 당시엔 임신중절 수술이 금지되기 전이라 수술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나는 그 사람과의 미래는 상상하기 싫었지만, 내게 생긴 아이는 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임신했다는 소리를 들은 그 남자는 나를 갑자기 잘해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아이를 낳을 여건이 안된다는 것. 그래서 나를 잘 달래서 수술을 시키려는 이유였다.

나는 반대로 그 사람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사람 손에 붙들려 어느새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그날 지금도 씻어내기 힘든 고통과 죄책감이 내 몸과 마음에 새겨졌다.

하염없이 울었고 또 울었다. 수술을 마치고 나서 마취에서 깬 나는 다시 울었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결혼도 안 한 어린 아가씨가 몸간수 잘하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온 나는 창피했고 죄책감이 나를 더없이 짓눌렀다.

몸조리를 할 생각도 해야 할 이유도 몰랐다. 그저 그 상황이 괴로워 회피할 도구가 필요했고 내게 남은 건 술과 담배였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날마다 술을 마시며 무너져 갔다. 내 삶이 희망도 빛도 없어 보였다.

이 남자 손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과 앞으로의 내 삶에 희망도 빛도 없이 무너져 갈 거라는 생각에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었다.

날마다 죽고 싶고 죽고 싶었다. 모든 게 나의 잘못 같았다. 내가 부모를 잘 못 만나 태어난 것도 이 남자를 만나게 된 것도, 내가 살아온 모든 인생은 참 더러운 쓰레기와 같이 느껴졌다.

술을 마시면 죽을 용기가 평소보다 더 생겼다. 날마다 죽는 법을 생각하고 인터넷에 찾아보며 상상했다.

그때마다 나를 붙잡는 단 한 가지 생각이 있었는데 나보다 더 박복하게 살아온 엄마 생각이었다.

엄마의 삶에 세상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딸이자 의지할 내가 엄마를 등져버리면 혼자 남게 될 엄마가 어떻게 될지 충분히 상상이 됐다.

오히려 나는 엄마를 핑계로 더 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끝을 모르는 그 깊고 긴 어둠의 터널에서 보이지 않는 빛을 찾아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나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남자가 나에게 절대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사실 결혼을 했던 남자였다.

자녀가 2명이나 있었고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냥 별거 중이었고 그 상황에서 나를 만나 데리고 살았던걸. 나 모르게 아이들과 전처를 종종 만나고 있었단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나와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난처했기 때문에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그런 몹쓸 선택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더 내 팔자 한번 더럽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형수의 말이 떠올랐다. 저 새끼들은 나쁜 놈들이다. 네가 어려서 몰라서 그런 거다. 어서 저놈에게 도망쳐서 네 인생을 살아라. 창창하게 어린 나이에 뭐 하는 거냐 네가 너무 가엽다.

그저 그냥 남이었던 나를 보며 눈물까지 흘려가며 말해주던 그때 그 형수가 왜 그랬는지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됐다.

나를 보며 자신의 삶에 스스로 연민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지 만 어떻게 벗어난 단 말인가......

내가 어딜 가든 나를 반드시 찾아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매일 같이 세뇌당한 공포는 도무지 나에게 용기가 생기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는 술에 잔뜩 취해 집에 왔다. 아직 이성을 잃은 정도였지 그 이상 귀신이 씐 정도로 마시진 않았다. 눈이 풀려 있었기만 했고 돌아가진 않은 게 분명했다.

술에 취한 그 남자는 내게 어떤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오늘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왔어. 네 년 때문에 처자식을 오늘 완전히 버리고 왔다. 이제 너는 나를 버리고 절대로 떠날 수 없어."

"나는 이제 너와 끝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인생의 지옥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그리고 그 남자가 그날 나를 바라보는 표정과 비난하는 듯한 말투는 내가 여기에서 반드시 벗어나 꼭 살아가겠 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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