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둘째를 낳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by 천천히 한걸음

주말 일정 중 가장 중요한 장보기를 위해 마트에 들렀다.

이것저것 일주일치의 먹거리를 사고 나면 늘 기분이 좋다. 크게 부자가 된 것 같고,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산다는 것에 뿌듯함도 느껴진다.

운 좋게도 집 앞이 대형 마트라 장은 늘 거기서 보는 편이다.

대형 마트답게 소규모 야외 광장이 마련되어 있다.

거기서는 때때로 장터가 열리기도 하고, 홍보 목적의 부스들이 들어서기도 하는데 그날은 승마 체험 부스가 들어와 있었다.

조랑말 두 마리가 보였다.

말의 크기로 보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정도 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것 같았다.

만원을 내면 말을 타고 마트 마당을 몇 바퀴 돌 수 있다고 했다.

평소 사육되는 동물을 보여주는 학습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어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들고 순서를 기다렸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승마용 부츠를 신고 만원을 받아 들었다.

말에게 인사를 시키고(말의 이름은 유정이었다.) , 몇 번 쓰다듬어 보게 한 다음

아이를 말에 태웠다. 말이라고 타긴 했으나 사실상 내 걸음걸이 수준의 속도라 설핏 웃음이 나기도 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몇 바퀴를 아빠와 함께 돌아보라며, 말고삐를 남편에게 전해 주셨다.

평소 동물이라면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는 남편은 아빠라는 감투를 쓰고 용기 내어 말과 아이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 어정쩡한 모습을 지켜보던 아주머니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나눴다.

이런저런 인사 몇 마디가 오고 갔다. 승마가 자폐아동 치료에도 쓰일 만큼 좋은 운동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러다 결국 그 말을 듣고 말았다.


"아이가 하나예요?"

"둘 째는 안 낳아요?"

"꼭 낳아요. 둘이 얼마나 의지가 되는데"


아 아주머니...

그러지 마시지 그러셨어요?

잠시 훈훈했던 분위기는 나의 칼 같은 대답에 금세 살얼음이 끼었다.

"네... 안 낳을 건데요 왜요?"



맙소사 왜요 라니...

참 못난 대답이었다. 그냥 적당히 넘기면 되는 질문이었는데, 나도 참 어지간하다 싶었다.


뒤이어 만원을 든 또 다른 가족이 나타났고 고삐는 넘어갔다.

대충 장거리를 정리하여 차에 싣고 오는 길 , 나는 생각에 잠긴다.

늘 사람들은 저 질문을 참 쉽게 꺼낸다.

대답을 한 뒤에라도 자세하고 상세하게 이유를 물어보기도 한다.

물음 뒤엔 언제나 둘째의 장점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말해준다.

친언니는 2년 터울로 아이가 셋이다.

조카 덕후로 불릴 만큼 아이 세명을 가까이서 보고 아꼈다.

둘째의 장점과 필요성을 모를 리 없는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를 놓지 않기로 결정했다. 쉽지도 짧지도 않은 결정이었으며

결정한 후에도 늘 마음 한편이 묵직했다.

누군가 물어서 자꾸 헤집어 놓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을 일일이 설명해 줄 수는 없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원망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넘기려고 애쓴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질문이 참 불편했다.

못난 대답을 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둘째를 놓아주지 않은 나는 정말 나쁜 엄마일까?

지금 둘째를 놓지 않으면 나는 평생 후회할까?

나와 남편이 죽고 나면 형제가 없는 내 아이는 불행해지고 우리를 원망하게 될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 기분 좋던 주말 오후에 난데없이 먹구름이 끼었다.


나와 남편은 아이를 하나만 낳기로 선택하고 합의하였다.

열거하자면 끊임없이 꼬리를 물 크고 작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있다.

나는 나라는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둘째를 놓으면 그게 안되냐는 물음에 나는 대답한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나 자신을 찾고, 아이의 의식주 비용과 교육비를 내 책값과 기호 용품에 쓰는 비용보다 더 많이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내 시간을 버리고, 아이 둘에게 맞추어 시간을 쪼개고, 둘의 기호에 맞추어 이런저런 엄마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첫째 아이에게 강요되는 무의식적인 양보, 책임감 , 빠른 독립, 동생에 대한 본보기 역할의 강요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물론 이 모든 것은 철저히 나 자신에게 국한된 것으로 여러 아이를 낳아 키우는 많은 사람들이 저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둘째를 낳은 부모들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존경함은 당연하다.


나와 남편은 당연히 둘 때에 대해 고민했고, 많이 흔들렸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선택은 선택하지 않는 면에 대한 포기와 함께 단단해진다.

우리는 우리의 외동아들을 일정한 가치관으로 양육하기에 많은 힘을 쏟기로 했다.

티브이를 없애고, 책의 바다에서 놀게 하고 엄마와 함께 밤새 그림을 그리고

아빠와 함께 밤새 나무젓가락 새총을 만들면서 지내게 하고 있다.


둘째가 생겼을 때의 기쁨과 다시 아기를 키워보고 싶은 아쉬움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아이가 하나라서 생기는 일정량의 여유와 , 한 아이의 부모가 아닌 나라는 존재를 많이 양보하고 포기할 수 없다.

그 행위를 타인의 시선으로 옳고 그르다로 판단받길 원하지 또한 않는다.

겪어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백이면 백 이야기한다.

아이 둘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 아이 하나가 우리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얼마나 잘 들어맞아 적당한지는 잘 안다.


둘째를 안 낳냐는, 둘째가 더 이쁘다는 사람들의 질문과 유도에

아직은 태연하게 대처할 수 없어 가끔씩 이렇게 열변을 토해내는 못난 나는 외친다.


"둘째를 낳으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외동이 외롭다고 단정 짓지 마세요

아이 둘 엄마가 아닌 나라는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택한 삶을 은근히 비난하지 마세요


저는 외동아이를 둔 엄마이고, 적당히 행복하고 온전합니다. 아직까지는요..."

혼자서도잘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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