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필사가 나를 살렸다니까요.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온유 작가님은 말씀하셨다.
제목을 먼저 정해 놓고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키워드나 주제를 미리 생각해놓는 것이 아닌 제목부터 미리 정해 놓고 쓰기 시작하면
글이 제목 따라 어긋나 버리기도 하고 더 기발한 제목을 놓치게 되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지금 이 글은 제목부터 과감하게 입력해본다.
책에 대해 이 글 하나만 쓰고 끝내지는 않겠다.
진정하자 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것으로 시작해본다.
사람들과 만나 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지나치게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빨라졌다.
헤어지고 오는 길에 얼마나 부끄럽고 후회가 되었었는지.
책을 좋아한다.
읽는 것을 사랑한다. 책을 고르고 사서 모으고 읽고 옮겨 적고 나누는 행위를 정말 좋아한다.
글에서 너무와 좋아 무척 많이만 빼도 좋은 글이 된다고 (유혹하는 글쓰기_스티븐 킹)해서
저 표현들은 가급적 쓰지 않고 있지만 , 짧은 글 실력에 어쩔 수 있나.
책을 "정말" 좋아한다.
어릴 때 집에 티브이가 끊겼던 적이 있다.
수신료가 많이 밀리면 티브이가 안 나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엄마 없는 빈집의 무서움을 막아줄 유일한 방패인 티브이가 나오지 않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엄마에게 긴급하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주방 그릇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듣다 끊었다.
30년도 넘은 그 장면 하나가 이렇게 선명하다.
급하게 언니 방으로 건너가 보았다. 언니 방이라고 했지만 집에 딱 2개 있던 방중 나머지 하나였다.
책꽂이도 없이 방바닥 한편에 놓여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에선가 얻어온 민음사 문학 전집(?)이 아니었을까 싶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읽을 수준은 당연히 아니었겠지만 하나 집어 들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종이는 누렇고 오래된 냄새가 났고 글씨는 작았다.
그림 동화책을 읽을 나이는 지났지만 그렇다고 문학전집을 읽을 나이도 아니었는데 무작정 펼쳐 들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이걸 읽고 있으면, 이걸 읽고 있으면서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잊어먹고 있으면 어느새 한 순간 팟! 하고 티브이가 다시 켜질 것만 같았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이런 말로 글을 썼구나... 하다가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한 권을 다 읽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싶은 의아함과 동시에 아직 티브이도 켜지지 않은 집에 이 시간까지
혼자 있었다는 뿌듯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렇게 긴 책을 다 읽었다니 스스로가 신기하고 대견했다.
형편이 나아진 고등학교 전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냐고? 당연히 안 읽고 놀았다.
친구들과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돈이 드디어 생겼고, 친구가 이 세상 무엇보다 좋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책을 잠시 멀리하던 시기가 있었으나, 내 해결책은 역시 책이었다.
결혼을 하고 육아서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작은 독서모임도 가져보고, 온라인 독서토론 클럽에도 참여해보고
조금씩 나만의 글도 써보았다.
30년 전 어린아이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책은 나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육아의 끝에서 방황하고 좌절할 때 책 속에 답이 있다고 믿었고 정말로 답이 있었다.
밤에 안 자는 아이 수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유식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요? 와 같은 질문을 찾아 많은 육아서들을 찾아 읽었다.
" 살려주세요 "라는 간청과 함께
사람들과의 관계에 치여 너덜 해진 마음에는 사랑하는 작가들의 글을 갈아 붙였다.
직장 내 A의 한마디에 자존심이 땅끝으로 떨어진 듯 하지만 내색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혼자 입술을 골백번도 더 씹어 먹었을 때,
A를 욕하는 통화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을 때 ,
"적을 만들지 않는 인간관계의 비밀" 같은 책들을 찾아 읽었다.
책은 맞장구를 치며 욕을 해주는 대신 현실적인 해결책과 함께
'너는 그럼 괜찮은 인간이니? '하는 물음도 함께 던져주었다.
책이 옳았다.
숨이 콱콱 막힐 것 같은 하루의 끝에서 책은 숨을 쉴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호흡 곤란이 왔을 때 비닐봉지 같은 것을 입에 대고 천천히 숨을 쉬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걸
어디선가 보았는데 책은 나에게 그 봉투였다.
슬플 때도 책 안에 들어가면 슬픔을 닦아낼 곳이 분명 있었고
기쁠 때 나누어 숨겨 놓을 곳도 책 안에 많았으며
기대고 싶을 때 답을 내어 놓을 책이 두 팔 벌리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말들을 쏟아 내어도 책은 끝까지 다 들은 후 답을 주었다.
혹은 답을 같이 찾자고 손을 내미는 것까지만 하는 명쾌한 친구였다 책은.
휴직하면 책 많이 읽어야지 라고 입밖에 내어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코로 숨을 쉽니다. 와 같은 너무 당연한 말이라 하는 게 더 이상한 말이었다.
오늘도 숨을 쉽니다. 책을 읽습니다.
<오늘의 휴직 단상>
: 내가 가장 사랑해서 보지 않고 그대로 읖을수 있는 문장 하나쓰는 것으로 대신한다.
바다의 기별 _ 김훈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