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이라는 핑계 거리가 없어졌다.
한 1년 쯤 신이 나서 책을 읽었다.
사탕 여러개를 손에 쥔 아이 처럼 신이 나서 책을 읽었다.
옮겨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문장들을 만났다.
내 한 손 크기 만한 수첩에 옮겨쓰고 틈틈이 읽었다.
내 감상이나 느낌은 더하지 않았다. 아니, 더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수첩속 글 귀 들을 다시 읽을 때마다 그 때의 감상이 정확히 떠올랐다.
기쁘고 슬펐고 결심했던 순간들.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는 척 해왔던 것들을 진짜로 알게 되었고
배우는 삶의 자세에 매료되었다,
인간과 진화
나와 타인
개인과 사회
정의와 부패
배움과 단련
그 모든게 종이위에 있었다.
새벽까지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시간과 공간을 뛰어다니는 날이 많아질 수록
삶이 단단해졌다.
절대 다독했다고 말할 수 없는 70여권의 책을 읽고 나자
옮겨쓰는 것이 아닌 내가 쓰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쓰고 싶어지는 마음과 비례해 잘 못 쓸까봐 불안한 마음도 늘어만 갔다.
그래서 핑계를 찾았다. 노트북 이었다.
수정할 수 없는 종이에 쓰는 글은 너무 힘들다... 그러면 노트북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노트북이 없으니 글을 쓸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 엄청난 명제가 성립하는 데 필수요소가 나의 비겁함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도 자꾸 자꾸 뭔가가 쓰고 싶어졌다.
자아 최면은 자꾸 엇나갔고, 밤 마다 불끄고 누워 머릿속에 단편적인 글들을 써보다 잠이 들었다.
이러나 저러나 불편했고, 급기야 노트북을 사러 전자마트에 다녀왔다.
노트북이라는 핑계거리가 없어진 것이다.
글을 쓸 것이다.
써보고 싶었던 글을 쓸 것이고, 잘 못 써도 꾸준히 써볼 것이다.
내 기준 고가의 노트북을 샀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본전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도 드라마도 보지 않아서 노트북을 활용할 일이 글 쓰는 것 외에 없게 때문이다.
다른 의미의 핑계가 생겼다.
나는 노트북이라는 핑계가 없어져 노트북이라는 핑계가 생겼다.
써보자 나의 글